차별의 이유
내게는 3살 터울의 언니와 8살 어린 막내 남동생이 있다.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를 포함하여 5명의 식구가 살았다. 내가 14살이었을 때 우리 가족의 재정 상태는 좋지 않았다. 아빠의 사업이 기울어지고, 엄마가 아는 지인에게 사기를 당했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전업주부로 있던 엄마가 공장에 나가서 일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자신들의 철학인 "자식 교육에 돈을 아끼지 말자."라는 것을 힘든 그 시절에도 꿋꿋이 지켜내셨다. 집안 사정이 안 좋은 와중에도 6살 남동생을 동네의 유명한 영어유치원에 보냈다. 우리 집 생활비에 1/3을 차지하는 비용이었다. 언니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부모님은 역시 언니의 교육에도 돈을 아끼시지 않았다. 언니를 좋은 학원 좋은 강사가 있는 서울의 학원에 무리해서 보내주었다. 우리 집 생활비의 1/3의 해당하는 비용이었다. 언니와 동생의 교육비로 우리 집의 생활비 2/3가 사라졌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다면서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6살 아이를 영어유치원까지 보낸다는 것이 이해 가지 않았다. 언니와 동생의 교육비로 생활비의 2/3가 다 사라지자 엄마는 내게 이 사실을 모두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당시 내가 다니던 동네의 작은 영어학원을 그만두는 것을 권유했다.
엄마의 권유는 당당한 사유가 있었다.
“너 공부하는 거 싫어했잖아. 집에서 놀아. 좋잖아.
동생 보면서 엄마 좀 도와줘, 착한 딸.”
설득 아닌 설득을 당한 나는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엄마의 역할을 했다.
부모님의 처지에서는 나만 학원을 보내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는 그저 공부하기 싫어해서 학원에 가지 않은 ‘사춘기 문제아’라는 타이틀이었다.
나는 공부를 좋아하던 아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영어학원만큼은 자발적으로 보내달라고 했었다. 영어를 좋아했던 평범한 학생이었을 뿐, 사춘기 문제아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나마 다니던 영어학원을 끊으면서 평범한 아이들처럼 학원에서 친구들을 만나서 놀거나 땡땡이를 치고,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논다는 생각보다는 갇혀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부모님은 일하고 오셨기에 늘 늦게 집에 오셨고, 언니 또한 야간자율학습으로 마찬가지였다. 나와 동생 둘이 집을 지키는 것이었다.
엄마의 칭찬을 들으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언가 잘못된 로봇처럼 느껴졌다. 정확히는 집을 지키는 강아지 로봇 같았다. 그 와중에도 관심받기 위해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잠을 자지 않았었다. 하루 동안 내가 얼마나 열심히 집을 지켰고, 동생을 어떻게 돌보았는지 말하고, 칭찬을 들어야 하루를 잘 보냈다고 안심했다.
어른이 되고, 부모님에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왜 그때 나만 학원을 보내주지 않았어?” 이야기했고, 부모님은 정말로 “네가 공부하기 싫어했으니까.”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게는 차별이었고, 상처였던 그 일이 부모님에게는 다른 기억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이 제일 무서웠다. 학원에 가지 못하면서도 부모님을 이해하고, 도와달라던 엄마의 마음을 헤아렸던 나의 어린 마음이 부서졌다. 나는, 그저 한 가정의 소중한 딸이 되고 싶었던 나는, 언니와 동생에게 하는 것처럼 똑같은 관심이 필요했던 아이였을 뿐이었다.
◆ 상처받지 않기 위한 나만의 생존법 ◆
‘착한 딸’이라는 단어가 정말 착해서 그렇게 말한 게 맞을까요?
저는 아마도 착한 딸이 필요했을 것 같아서 그런 말을 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요.
계획적으로 내가 착하다고 말하면 착해지겠지?라고 말한 것은 아니겠죠. 하지만 부모님은 본능적으로 착한 딸이 필요했고, 그 딸은 잘 져주고, 평소에 의견을 쉽게 얘기하지 않았던 제가 선택받았던 것 같아요.
저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제가 가족 희생양이 되었다고 봐요.
가족 희생양이란, 가족의 평화를 위해 가장 쉬운 방법인 한 명의 희생자를 찾아 긴장과 불안을 희생자에게 해소하는 거예요.
심리학자 브래드쇼(Bradshaw)는 역기능 가족 체계 속에서 가족 희생양의 역할을 하는 자녀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열거했어요. 부모의 부모 역할, 어머니 아버지의 친구, 가족 상담사, 어머니의 우상, 아버지의 우상, 완벽한 아이, 성자, 어머니 아버지에게 용기를 주는 아이, 악당, 귀염둥이, 운동선수, 가족 내 평화주의자, 가족 중재자, 실패자, 순교자, 어머니의 배우자, 아버지의 배우자, 광대, 문제아 등이 있다고 해요.
특히 가족 희생양의 역할 중 가장 우세한 역할이 바로 ‘문제아’ 역할이라고 합니다. 저 또한 가족의 희생양의 역할 중 하나인 문제아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죠.
내가 과연 가족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정말 딸, 아들 그 정도의 역할만 하고 있는 게 맞는지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만약 심사숙고하게 생각해 본 결과, 본인이 가족 희생양이라면 질문이 떠오를 거예요.
“내가 가족 희생양이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요?” 하는. 막막하고 걱정스러울 수 있어요. 걱정 말고, 이제부터 제 이야기를 따라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