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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Jul 14. 2024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_남동생

 내게는 남동생이 있다. 8살 차이의 남동생인데, 부모님이 원하고 원하던 늦둥이 아들이다. 동생이 태어날 때 가족 중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찬성한 동생의 탄생이었다. 내가 8살이 되어 초등학교를 입학하자마자 엄마는 내게 물었다. 


“동생 가지고 싶지?”


나는 그 말의 뜻을 몰랐다. 정말 물어보는 것으로 생각했고, 나는 우리 가족의 막내를 계속하고 싶었기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싫어.”


 그러나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엄마의 뱃속에는 남동생이 자라고 있었다. 할머니의 아들을 낳으라는 성화에 못 이겨 늦둥이로 아이를 가지신 것이었다. 그렇게 남동생이 태어나고, 할머니는 남동생이 있는 산부인과로 달려오셨다. 그리고 남자아이인 것을 확인하시고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웃으셨다. 잠시 후 옆에 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남자다워서 남자아이가 태어났어! 장하다.” 


 내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는 둘째가 딸이라고 하자, 병원에 찾아오지도 않았었다고 했다. 그런 내가 그저 남자아이들과 잘 놀고 인형이 아닌 칼싸움을 했다는 이유로 막내가 남자아이로 태어났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말이나 하신 것 같다.


 그렇게 나를 뺀 온 가족의 사랑을 받는 막내가 태어났다. 


 남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명절에 할머니 댁에 갈 때면 나와 언니가 엄마를 도와 일을 할 때, 막내는 남자이자 장남이라는 타이틀로 가만히 앉아서 핸드폰 게임을 했다. 동생이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고, 숟가락을 들 수 있을 때부터는 남자 식탁, 여자 식탁이 따로 분리된 남자 식탁에 한자리를 맡아 밥을 먹었다. 


 또한 어린 시절 가난했던 나의 유년기와는 다르게 유복하게 자란 점도 한몫하는 듯했다. 가지고 싶은 것은 다 가졌고, 학교에서 유행하는 것들도 모두 부모님이 사줄 수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는 우리 집이 가난했어 서버스비도 못 받고 걸어 다녔었는데, 동생이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100만 원 언저리의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당연히 교육에 대한 부분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같은 집안의 남매지만 남동생은 중고등학교 때 꾸준히 매달 1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 학원에 다녔고, 나는 고등학교 때 과외 한 개를 겨우 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꾸준히 할 수는 없었다. 그런 형편에도 나는 대학을 갔다. 그리 좋은 대학교는 아니었지만 혼자서 해낸 성취였다.


아빠는 그런 성취를 깔보며 남동생과 비교했다.


“야, 네 누나보다는 좋은 대학 가야지? 저딴 쓰레기 같은데 갈건 아니잖아?”


아빠가 저녁밥을 먹는 중에 남동생에게 말했다. 그리고 동생은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당연하지. 나는 인 서울 할 거야.”


 당시 나는 아빠의 말에 상처받은 것은 당연했고, 남동생의 반응에도 상처받았었다. 그 이후로 동생은 공부에 관해서 무시하는 발언들을 했다. 


“누나 수포자라 이거 모르지?”


 내가 모른다고 하면 이것도 모른다며, 아빠에게 쪼르르 달려가 그 말을 전했다. 나와 비교하여 자신은 칭찬받고, 누나가 혼나는 것이 재미있었던 남동생의 행동이었다.  

    

 남동생은 사랑받는 것이 당연했던 삶을 살아서였는지, 사랑받기 위해 거짓말을 잘했다. 주로 엄마를 속였는데, 나이 든 엄마는 능구렁이 같은 남동생의 거짓말을 알아채는 것에 소질이 없었다. 그리고 거짓말이 들켜도 엄마는 동생을 심하게 혼내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는 다음에, 다음에는이라는 말로 봐주었고, 혹여나 심하게 혼내면 남동생이 나쁘게 변할까 봐 전전긍긍하였다.


  남동생은 점점 더 영악해졌고, 거짓말의 빈도와 강도가 세지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거짓말이 있었지만 가장 큰 사건은 그의 성적표 위조 사건이다. 아빠에게 인 서울 대학을 가겠다며 호언장담하고, 누나를 무시한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서였을까? 그는 모의고사 성적표를 위조해서 가져왔다. 거짓말을 한 남동생을 엄마는 감싸주며 이렇게 말했다.


“아빠한테는 말하지 마. 얘도 얼마나 무서우면 그런 거짓말을 했겠어. 다음에는 안 할 거야. 애한테 그만 닦달해. 엄마가 알아서 할 테니까.”


 엄마의 사랑 방식이었다. 

 "다음에는 하지 않겠지. "를 고등학교 3년을 반복하고, 수능날이 되었다. 당연히 수능은 엉망이었다. 예견된 결과였다. 3년간 잘하고 있다며 누나를 깔보고, 아빠를 속인 남동생은 수능 점수로 모두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남동생은 방관자에 가까웠다. 자신이 사랑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내 인생을 건들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주목받아야 했고, 사랑받아야 했다. 동생은 아직도 자신이 남자이고, 아들이기에 부모님에게 더 많은 것을 물려받고, 혜택 받고, 사랑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상처받지 않기 위한 나만의 생존법      

 

 한국의 남아선호사상이 남아있던 그 시절 당연한 차별이 제게도 있었어요.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제 어릴 때는 남아있었어요. 어린 시절의 기억인데, 할머니의 반응이 강렬하게 남아있다는 것은 아마 상처받았던 것이겠죠. 남동생이 태어나기 전과 후의 할머니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변했고, 자라면서도 꾸준히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차별도 있었죠.  어린 시절에 저는 종종 남자아이로 태어날 걸 그랬는데,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물론, 지금은 여자로 살아가는 것도 좋아요.


그렇지만 저는 남동생에게 남자로 태어난 사실 보다 더 부러웠던 것은 모두에게 사랑받으며 자랐다는 사실입니다. 늦둥이 장남이라는 타이틀과 맞물린 가정형편이 사랑받는 막냇동생의 입지를 단단하게 굳혀주면서 동생의 성격은 정말 유하고, 누구에게난 친절한 성격으로 자랐어요. 반면에 저는 불안전한 가정형편에서 둘째라는 타이틀로 희생을 강요당하며 사랑을 덜 받고 자랐어요. 그래서 일까요? 제 성격은 늘 불안감을 가지고, 우울함과 사랑받지 못하거나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서 이은 지 예민한 사람으로 자랐어요. 


사랑을 듬뿍 받은 아이와 사랑을 덜 받고 아이가 한가정에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사실이죠.  


 인간의 성격형성은 보통 19세, 성인이 되기 전에 80프로 이상 만들어진다고 해요. 즉, 가정에서 어떻게 아이를 대했느냐에 따라서 그 아이의 성격이 거의 확정된다고 보는 거죠. 그러나 아직 20프로가 남았어요. 성인이 돼서도 성격형성이 되긴 한다는 거죠. 


'사랑받지 못했다, 나는 가족들에게 사랑을 덜 받고 컸다.'  해도 다른 곳에서 사랑을 채우고 좋은 것을 보고, 좋은 방법을 취하고 배워가면 나의 성격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거예요.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행복한 것들로 인생을 적금 붓듯이 천천히 쌓아가다 보면 본래의 80프로 형성된 성격을 20프로가 바꿔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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