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우리 집에는 절대적 왕이 존재했다.
나는 세 명의 자녀 중에 둘째 딸로 자랐다. 엄마는 서로 양보하라고 가르치셨고, 언니가 물러서지 않을 테면 나를 불러 내게 양보할 것을 부탁했다. 나 또한 당연히 욕심이 있는 아이였기에 물러서지 않았다.
그 결과, 늘 언니와 나는 싸우게 되는 거였다. 물론 싸움으로 이어지면 엄마는 둘이 알아서 하라는 편이었다.
문제는 아빠가 있을 때 싸우는 순간이었다.
아빠는 우리가 언성이 높아지면 자기가 더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애새끼들이 시끄럽게 뭐 하는 거야? 부모 복 없는 놈은 자식 복도 없다고 조용히 안 해?”
강압적인 말투, 폭언을 자주 했다. 그것이 잘못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본인이 말하기를 눈이 뒤집히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아빠는 눈이 뒤집히면 보이는 어떤 물건이든 집어던졌고, 다리를 부러뜨린다거나 죽인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어느 날은 아빠가 주방에서 칼을 들고 오려는 것을 엄마가 말린 적도 있다.
아빠가 화가 날 때면 우리는 죽을힘을 다해 방으로 도망쳤다. 방으로 들어가 온몸으로 문을 닫고 잠갔다. 그 문을 아빠가 힘으로 열려고 하거나 방문을 발로 찼기 때문이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쾅쾅거리는 소리와 어린 남동생의 놀란 울음소리, 떨리는 목소리로 사과하는 나의 음성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 아빠가 조용해지길 바라며 방 안에서 울면서 빌었다. 우리가 들어가면 엄마는 씩씩거리는 아빠를 진정시켰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말리는데, 온몸을 써야 했다.
아빠가 화를 낼 때면 집안은 살얼음판이 되었다. 발걸음이라도 크게 냈다가는 또다시 아빠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심장이 머릿속에서 뛰는 것처럼 느껴졌다. 쿵쾅쿵쾅 -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언니와 내가 싸운 이유는 고작 이어폰이 누구 거냐?라는 문제였다. 그런 작은 문제의 원인은 아빠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큰소리가 나고, 자신의 신경을 거슬렀다는 이유 하나로 물건을 집어던지고 화를 냈다. 그렇게 아빠가 화를 내면 엄마는 우리를 보호해 주기보다 아빠에게 잘못했다고 빌라고 했다. 아빠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하라면서.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손가락부터 파르르 소름이 돋았다. 언제 분노할지 모를 아빠 앞에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사죄하였다. 아빠는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며 아침밥을 먹었다.
“나는 뒤끝이 없어. 기억도 안 나.”
상처를 받은 건 아빠를 제외한 모두였다. 아빠는 밖에서 안 좋은 일이 있으면 똑같아졌고 그런 날은 아빠의 기분에 맞춰 방 안에서 속닥이거나 공부를 하는 척을 해야 했다. 아빠에게 쉽사리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은 우리 가족 중에 그 누구도 없었다. 당연히 아빠는 살면서 한 번도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우리 아빠는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였어요. 나르시시스트가 뭘까요.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애성 성격 특성이 있는 사람 혹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훌륭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뜻하는 용어인데요. 이해가 잘되도록 나르시시스트의 특징 몇 가지를 말해볼게요.
첫째,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의 능력과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고 오만함을 느껴요. 자신이 독특하며 특별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어요. 또한 과도한 자기애로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요.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기를 원하기에 자신의 업적이나 능력을 과대평가받기를 바라요. 그렇기에 오만한 태도로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어요.
둘째, 인정과 칭찬을 늘 갈망하고, 자존감이 낮다.
자신의 성취나 능력을 늘 과시하고자 하기에 타인에게 지속적인 관심이나 칭찬을 갈망해요. 타인의 인정이 없으면 자신의 가치가 없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인의 검증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자신이 외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비판을 받거나 거절을 당하면 쉽게 자신감이 떨어지는 낮은 자존감을 지니고 있죠. 따라서 자존심이 상하면 분노하며 공격적으로 반응할 수 있어요.
셋째,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경험과 감정을 공감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로 마무리하려는 특징이 있어요. 자신의 업적에 대해 말하고 자신의 재능을 과장하여 대화를 독차지하려고 하죠.
넷째, 책임을 떠넘기고, 죄책감이 없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원한대로 일이 진행될 때만 책임을 져요.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였고 완벽하다는 이미지를 유지하려 해요. 따라서 자기 뜻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부정적인 생각이나 행동은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반면, 긍정적이거나 좋은 일이 생기면 자신의 공으로 돌리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거나 사과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갈등을 해결하기 어려워요.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의로움을 굳게 믿기 때문에 죄책감을 거의 느끼지 않아요.
다섯째, 의사소통이 어렵고, 가스라이팅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의사소통과 팀워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으로 인해 효과적으로 소통하거나 팀의 일원으로 일하기가 어려워요. 또한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이 없기에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타인을 착취할 수도 있어요.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미칠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사람들을 조정해요. 가스라이팅은 나르시시스트가 흔하게 사용하는 전술이에요. 다른 사람의 현실 인식을 통제하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고, 거짓말을 하여 다른 사람을 거짓으로 비난하고, 진실을 왜곡하죠.
이 밖에도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특징들을 나열해 봤어요.
그렇다면 아빠를 왜 나르시시스트라고 했을까요?
아빠는 “자신은 완벽하지만,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내면에 깔린 사람이었어요. 끊임없이 자신이 해왔던 극복 경험담을 자랑했고, 대화하기 시작하면 본인 이야기로 모든 이야기를 끌고 갔죠. 항상 대화를 시작하면 자신의 경험담을 1시간을 넘게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물어보았죠.
“이 정도면 네 아빠 할 만큼 했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가 매기고, 자신은 충분히 했다. 잘했다.라고 하며, 자식에게 인정받기를 바랐어요.
또한 자신의 하는 말이 옳아야 했고 옳다고 자부했어요. 그래서 남들이 하는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았고, 반대로 가스라이팅을 해서라도 자신의 의견이 맞아야만 했어요. 즉, 아빠는 살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적이 없어요. 과연 아빠가 정말 한 번도 잘못한 적이 없어서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아빠는 단, 한 번도 ‘미안하거나 잘못했다. ’라는 단어를 말한 적이 없어요. 본인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주변에서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인 죄책감이나 공감 능력이 부족했어요. 우리 가족이 본인 때문에 살얼음판을 걸어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거나 감정을 공감하지 못했어요. 가족들이 자신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도 알지 못했죠.
가족 희생양이 발생하는 가족 안 구성원에는 나르시시스트가 존재할 수 있다고 해요. 가족 중에 나르시시스트가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혹은 내가 나르시시스트는 아닐까? 궁금하실 수도 있는데요.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세요.
1.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관대한 느낌이 있음
2. 무한한 성공, 명석함, 이상적인 사랑, 권력, 아름다움과 같은 공상을 몰두
3. 자신이 특별하며 독특한 존재라고 굳게 믿음
4. 과도한 숭배를 요구함
5. 특별한 자격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짐
6. 대인관계에서 착취적이며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함
7. 타인의 감정과 욕구를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
8.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다른 사람이 자신을 시기한다고 믿음
9. 오만하고 건방진 행동 및 태도
이 중 5가지 혹은 그 이상이 나오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