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모두 아빠를 무서워했다. 심지어 아내인 엄마까지도.
가까운 남편에게조차 마음을 편히 가지지 못해서일까. 엄마는 자녀 중에 의지할 사람을 찾았던 것 같다.
그 타깃은 세 남매 중 내가 되었다. 엄마는 내게 자주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들이 정말 내가 착해서 그런 줄 알았고, 한편으로 무서운 아빠와 함께 사는 엄마가 불쌍하기도 했다. 엄마는 아빠의 욕을 내게 와서 하기도 하고, 얼마나 본인이 힘든지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내가 아빠 때문에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도 힘들어. 엄마도 참고 살잖아. 엄마보다 네가 나아.”
엄마는 항상 자기가 더 힘들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의 힘듦을 자신의 힘듦으로 덮어버렸다. 엄마가 힘들다는 말에 반박이라도 할 때면 엄마는 더 화를 냈다.
“아빠가 돈 벌어다 주잖아. 네가 먹고 자고 하는 거 다 네 아빠가 벌어다 준 돈으로 사는 건데, 너 돈 있어?”
14살-당연히 돈이 없었고, 그 말을 들으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들으면 내가 무능력하다는 것을 자책하고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그저 착한 딸을 원하던 엄마의 요구로 인해 나는 더 착한 딸의 일들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내가 중학생 때 엄마는 유독 몸이 자주 아팠는데, 그럴 때면 내게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했다. 특이한 것은 동생을 돌보는 일도 내가 맡게 되었는데, 이유는 엄마가 늦둥이를 낳아서 젊은 엄마들을 따라가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나를 동생 친구 엄마들 모임에 끼워 여행을 자주 다녔다. 주로 과학박물관, 역사박물관 등을 여행했는데, 엄마는 동생을 돌보는 것 때문에 내가 따라다닌 것이 아닌 “너도 공부하는 거니까 좋잖아.”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6살 7살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14살이 보기에는 너무나 유치했다. 실질적인 나의 역할은 아줌마들 사이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보모였다.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고, 그 시간에 나는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돌보았다. 대여섯의 아이들은 꺅꺅 소리 지르면서 뛰어다니고, 노래를 불렀으며 끊임없이 궁금한 것을 질문했다. 내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착한 딸 덕분에 엄마가 너무 편했어. 고마워.”
칭찬을 받으면 그날 내가 힘들었어도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점점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6살 남자아이를 키우는 육아를 담당하는 착한 딸. 마치 내게 막냇동생이 아닌 막내아들이 생긴 것 같았다. 지금도 나는 내 동생에게 “내가 너를 키운 거야.”라고 말한다.
“동생 수학 좀 가르쳐줘. 채점도 해주고.”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부탁하지 않고, 명령했다.
언젠가부터 “싫어. 안 해.”라는 단어를 내뱉을 수 없게 되었다.
그저 “알겠어. 할게.” 그리고 시키지 않아도 이제는 자동으로 남동생을 놀아주고, 한글을 가르치고,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당연하지 않은 것이 당연해져 있었다.
공부 열심히 하는 첫째 딸. 엄마 말 잘 듣고 동생도 돌보는 둘째 딸, 귀엽고 사랑스러운 막내, 다정한 엄마와 열심히 돈을 벌어다 주는 아빠였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었다.
아빠가 화가 나지 않는 날은 정말 그렇게 행복한 가정처럼 느껴졌다. 서로 장난도 치고, 웃고 여행도 종종 갔다. 생일이면 케이크도 하고 가족끼리 모여 노래를 불러주었다. 웃으며 장난치는 일도 일상이었다. 그저 퇴근하는 아빠의 기분이 오늘은 좋을까? 눈치를 살피는 것이 당연했던 것을 나를 제외하면 내 눈에 우리 가족은 화목해 보였다.
◆ 상처받지 않기 위한 나만의 생존법 ◆
사춘기 시절 스스로가 어떤지 알아가야 하는 시기에 나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자 동생의 보모로 살았어요.
그래서일까요?
성인이 되고도 아이들의 울음소리 나, 노랫소리가 들릴 때면 기분이 좋지 않아요. 아이들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꼬여버린 마음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죠.
저는 일종의 질투였다고 봐요. 사춘기도 관심을 받아야 할 나이였는데, 어린아이들에게 관심을 빼앗겼다는 사실에 질투한 거였죠. 오랜 시간 동안 제 가슴 깊은 곳 어딘가에 떠돌아다닌 기억은 사라지고, 어린아이들만 보면 ‘싫어!’라고 말하고 싶은 감정만 남은 거죠. 이런 식으로 기억은 망각되어도 감정은 사라지지 않을 때가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만약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라면, 과거를 회상하시면서 스스로 점검해 보시는 게 좋을 듯해요.
◎ 상황에 따른 감정을 인지한다.
- 나는 어떤 상황이나 무언가를 보면 기분이 안 좋아. 그렇지만 이유를 모르겠어.
◎ 제삼자의 시선으로 과거에 비슷한 사건을 경험했는지 기억해 본다.
- 왜지? 내가 어린 시절이나 과거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나?
◎ 과거를 인지하고, 현재의 문제에 대해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대처한다.
- 아, 내가 이런 경험 때문에 이 상황이 불편했구나.
이렇게 인지하게 되면 같은 상황이나 상태가 되었을 때, 나의 약점을 알고 그 상황을 피하거나 인정하게 될 수 있어요. 자신을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과거에서부터 벗어나고, 자존감을 올릴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죠? 먼저 나를 받아들이고 알아가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