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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Jul 07. 2024

우리 가족을 소개합니다_언니

공주와 돼지

 어린 시절부터 내게 언니는 예쁜 공주님이었다. 

언니는 스스로 자신을 ‘공주’라고 불렀고 부모님도 첫째 공주라고 불러주었다. 언니는 여성스러운 취향이 가득했기에 예쁜 공주 인형을 좋아해서 엄마는 언니를 위해 바비인형 같은 공주 인형을 얻어오고는 했다.

언니와 반대로 나는 칼싸움, 총싸움, 딱지치기를 좋아했고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다. 언니와 나는 취향에서부터 반대 성향의 자매였다.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왜소하고 마른 편이었으며 얼굴도 예뻤다. 반면에 나는 통통한 편에 귀여운 상이었다. 어른들은 언니와 나를 비교하며 꼭 이런 말을 했다.

     

“언니 밥을 동생이 다 훔쳐 먹나 보네.”     


그 말 때문이었을까? 언니는 자신은 공주, 나는 돼지라고 별명을 붙여 불렀다. 나는 돼지라고 불리는 것이 너무 싫었다. 언니는 나를 하인, 자신을 공주라고 여겼는데 그 모습이 정말 여우처럼 느껴졌다. 얄밉고 화나는 날이 매 순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언니 말을 듣고 있었다.


언니는 욕심도 많은 편이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본인이 꼭 가져야 하는 성격이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내 것을 빼앗기 선수였다. 언니의 빼앗는 방법은 모두 집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중 가장 악독하고, 당해낼 수 없던 것은 무작위로 떼쓰기이다. 무언가를 갖고 싶다면 논리도 없이 무조건 달라고 수십 번, 수백 번 같은 말을 반복하는 방법이다.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싸워도 보고 울어도 보았지만 같은 말을 반복하고 사람을 질리게 하는 방법에는 통하지 않았다.


“주라고. 주라고. 주라고. 갖고 싶다고!”


언니가 떼쓰기 시작하면 무한반복의 연속이었다.

옆에서 듣던 부모님도 질려 하시며 내게 양보하기를 부탁했다. 부모님에게 언니가 무언가를 요구할 때도 비슷했다. 언니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떼를 써서 얻어내고는 했다.


 또한 본인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여러 번 반복해서 말을 하거나, 전화를 수십 통 걸어 상대방에게 요구하였다. 특히 나에게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욕을 하는 방법으로 마치 내가 잘못한 사람인 것처럼 만들었다.


“너는 그것도 못 줘? 넌 진짜 싸가지 없어.”


 언니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나는 언니와의 싸움에서 몇 번은 싸워 이겼고, 몇 번은 져주었지만 싸움에서 이겨도 기쁨보다는 짜증이 났다. ‘내가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욕을 먹으면서 싸움을 하는 게 맞는 건가?’하고 자주 생각했다. 자라면서 점점 싸우는 횟수는 줄어들고 언니에게 양보 아닌 양보하며 빼앗기는 것에 익숙해졌다.     

나의 어린 시절, 익숙 해지면 안 됐던 것 중 하나는 빼앗기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삼 남매를 키우며 양보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나는 가르침대로 가족들에게 양보했다. 물론 언니와 동생도 양보를 전혀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것을 지키며 양보했고, 나는 내 것을 내어주며 양보했다. 양보가 아닌 빼앗김을 배운 것이다. 나는 커서도 남에게 주는 것이 익숙한 사람으로 자랐다.


보통의 아이들은 자신의 것을 지킬 줄 아는 어른으로 자랐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원해서 양보하고 있는 게 아니라 원치 않으면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살고 있었다. 자신의 것을 내어주다 보면 자신에게 남는 것은 자신만 있을 것 같지만 스스로조차 남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내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최소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싸우고 화내며 내 것을 지킬 것이다.     

      


                            

 ◆  상처받지 않기 위한 나만의 생존법  


 언니는 예쁘고, 여성스러운 면에 첫째 딸이었고, 공부도 잘하는 완벽한 딸이었어요. 반면에 저는 ‘남성적이며 공부도 잘못하는 문제아.’라는 인식이 있었죠. 부모님은 언니의 무논리 집착에도 언니를 혼내거나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저를 나쁜 아이로 만들어가며 ‘양보하지 않는다. 언니한테 줘라.’ 이렇게 자주 이야기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빼앗김이 익숙한 아이로 자라다 보니 나중에는 먼저 내어주는 편이 편하다고 생각했어요.


 남이 말하기도 전에 필요한 무언가를 준비하고, 제 것을 줬어요. 그때 당시 저는 친구들이 제게 고마움을 느끼고, 저를 필요로 하는 것이 좋았어요. 그게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지 인식하지 못했던 거죠. 제 옆에는 항상 나쁜 친구들만 생겼어요. 그들에게 처음에는 선의로 제가 내어주는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주지 않으면 그들이 오히려 저에게 물었어요, “왜 안 줘?” 혹은 허락 없이 제 물건을 가져가 자기 것처럼 사용했어요.


 그들에게 제가 선뜻 내어준 행동은 ‘내게 고마움을 느껴줘’ 가 아닌 ‘나를 함부로 대해도 괜찮아.’ 인걸로 인식된 것이죠. 제 것을 내어준다는 것은 그저 물건을 내어주는 행동이 아니라 나를 내어주고 있는 행동임을 저는 한참 뒤에 알았어요. 그게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임을 그 누구도 제게 가르쳐 준 적이 없었거든요.      

저와 같은 혹은 주는 것을 익숙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보세요.


 선의로 남에게 주고 있는 것이 내 물건인지 나인지. 만약 나를 주고 있다면 멈추세요.


지금 당장.

멈춘다고 떠나가는 사람들이라면 애초에 나쁜 사람일 확률이 높아요.


좋은 사람은 받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오히려 나의 것을 지키라고 말해줍니다.

지금부터라도 좋은 인간관계를 쌓아가고, 나를 지키며 내 것을 챙기는 사람이 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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