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치 Aug 03. 2024

짧은 퇴근 여행

 울퉁불퉁 튀어나온 제멋대로 생긴 돌멩이들을 억지로 끼워 넣은 담벼락을 손끝으로 만지며 걸었다. 튀어나온 돌멩이들의 감촉에 까슬까슬한 느낌이 손이 베일까, 걱정이 됐지만 중간중간 쏟아있는 초록색 풀떼기들을 만지면 기분이 좋아져서 멈출 수가 없다. 아무도 안 걷는 좁은 길목에 왼쪽은 담벼락, 오른쪽은 주택들이 즐비해있는 전형적인 골목마을이다. 어느 집은 밝고 환한 노란색의 철문을, 어느 집을 초록색으로 칠했었던 것 같은 녹슨 갈색을, 또 어느 집은 나무로 된 대문을 가지고 있다. 걸음걸음에 보이는 풍경들이 알록달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천천히 걸어가며 감상하기에는 딱이다. 여름에 더위는 살짝 지나가고, 이제 가을이 시작된 것을 알리듯 하늘은 높고, 구름은 듬성듬성 있다. 걸을 때마다 운동화 밑창에 닿는 보도블록은 깨진 곳도, 바꿔 끼워진 곳도 있다. 보도블록 마저 세월을 품고 있는 이 마을을, 처음 걷는 이 길이 낯설지만 낯설지 않다.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어느 골목 같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 엄마 몰래 학원을 땡땡이치고 돌아오던 골목길 같기도 한 게 익숙하고 친숙하다. 차 소리는 안 들려도 참새인지 무슨 새인지 알 수 없는 새의 짹짹이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고, 살랑이는 바람이 내 머리칼을 춤추게 한다. 퇴근길, 왠지 오늘은 다른 길로 가고 싶어서 그냥 조금 돌아가는 것뿐인데 가을을 타는 건지, 이 동네가 나를 타는 건지, 걸을수록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이 짧은 골목길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고, 간절함까지 생겼다. 아, 더 걷고 싶다. 다시 돌아갈까?


화요일 연재
이전 09화 사랑 고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