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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피아 Dec 28. 2023

260만 원을 써서 남편친구 결혼식에 참석했다.

미국 결혼식에 부모님의 지인은 초대하지 않는/못 오는 이유

작년 겨울, 남편의 오랜 친구가 다가오는 여름에 결혼식을 한다고 청첩장을 보내왔다. 어디서 결혼을 하나 보니 사우스다코타 (South Dakota) 주에서 한단다. 사우스다코타라 하면 미국 역대 대통령들 얼굴을 새겨놓은 돌산이 있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 갈 일이 없는 주인데, 아니 꽤 번화한 도시에 살고 있는 커플이 여기에서 결혼을 하다니! 이 느낌은... 대한민국 인천광역시에 사는 커플이 '진안 원촌마을'에서 결혼한다고 하면 나올 리액션이라고나 할까. 알고 보니 신부 가족이 이 주에 산다고 했다. 역시나, 미국 결혼식은 신부가 중심이다.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남편의 친구였지만 청첩장에는 내 이름까지 들어 있었다. 미국 결혼식 하객은 1+n인 경우가 많다. 초대한 하객이 연인, 배우자, 가족이 있다면 그들이 같이 올 거라고 우선 가정한다 (어른만 올 수 있는 결혼식은 미리 청첩장에 고지를 해놓는다). 참가의사가 있는 하객은 미리 몇명이 갈지 신랑, 신부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남편이 가고 싶다 하길래 나도 '콜!'을 외쳤다. 보통 결혼식에 초대받을 정도의 사이인 경우 하객의 연인/배우자도 신랑, 신부를 예전에 한 번은 봤거나 많이 들어는 봤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는 한 ‘너의 친구는 내 친구’라는 마음으로 같이 간다. 비행기 편을 찾아보니 무조건 한 번은 경유를 해야 한다고 나온다. 경유시간까지 합쳐 아무리 빨리 가도 7시간이 걸린다. 같은 미국 땅에 사는데 참으로 멀다. 집에서부터 호텔까지 10시간 정도 걸릴 것을 예상했다. 티켓 값을 보니 한 사람당 $500, 총 $1,000 (130만 원)이 들었다. 왕복 20시간이 걸리니 당연히 호텔에서 자야 한다. 비행기 스케줄 때문에 3박을 머물기로 했다. 보통 미국 청첩장에는 하객을 위해 결혼식장 근처 호텔 정보들을 넣어 놓는다. 청첩장에 쓰여 있는 호텔 방을 예약하니 $900 (116만 원)이 나왔다. 아 렌터카도 예약해야지. 3박 렌트를 하니 또 $100 (13만 원)이 나온다. 예약만 했는데 총금액이 260만 원이 나왔다. 갖고 있는 모든 마일리지를 탈탈탈 털어본다.


여름이 왔고 3박 4일 짐을 꾸려 사우스다코타로 출발. 밤늦게야 호텔에 도착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웨딩 리허설 리셉션은 참석하지 못하고, 다음날 늦은 오후부터 결혼식 일정이 시작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말로만 듣던 남편의 친구들을 처음 만나게 됐다. 다들 비행기를 타고, 운전을 하여 이 사우스다코타에 있는 작은 도시에 모였다. 최소 자신의 2박 3일을 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할애할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다. 그러니 신랑, 신부도 처음부터 부모님의 지인은 초대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과연 이만큼의 시간과 돈을 할애해서 신랑, 신부의 결혼을 축하해주고 싶을까? 초대받는 부모님의 지인도 다 신랑, 신부와 스토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누군가의 결혼식에 참석한다는 것은 같은 동네에 사는 거 아니고는 엄청난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이다. 이 머나먼 거리 때문이라도 결혼식의 주인공은 무조건 신랑, 신부가 될 수밖에 없다.


결혼식은 30분 남짓, 이제 리셉션이 시작되었다. 넓은 땅덩이 때문에 친구들끼리도 쉽게 모이지 못하기에 이런 기회에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남편 친구들은 나를 처음 보지만 자연스럽게 대해준다. 나는 나처럼 플러스 원으로 온 하객들하고도 잡담을 나눈다. 다들 처음 만났지만 모두 다 신랑, 신부를 축하해 주러 왔다는 공통된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걸로 수다가 이어진다. 리셉션은 밤늦게까지 계속된다. 발바닥이 아프고 목이 아플 때까지.


다음날 아침도 신랑, 신부가 미리 하객들을 위해 식당을 예약해 놓았다. K-체력으로는 도저히 이른 아침에 못 일어나겠어서 패스. 비행기는 다음날 새벽 출발이라 한나절이 비는데 이 시골 도시에서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그래서 사우스 다코타에 뭐가 있나 보니 호텔에서 440km 떨어진 곳에 배들랜즈 국립공원 (Badlands National Park)이 있다고 나온다. 왕복 차로 8시간. 어차피 할 게 없으니 한번 가보자 해서 남편과 국립공원으로 출발했다. 도로에 차가 없어도 너무 없다. 그렇게 쉬지 않고 4시간을 달리니 수백만 년의 시간 동안 형성된 바위 봉우리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야생 버펄로와 프레리도그가 뛰어다닌다. 결혼식으로 시작해 대자연으로 끝났다.

배들랜즈 국립공원, 사우스다코타주
미국에서 누군가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건 품이 많이 든다. 결혼식 일정도 참 길다. 하지만 즐겁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어서 기꺼이 이 긴 여정을 감수하고 가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축의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우리는 그 정도의 사이가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돈을 줘야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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