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유한하다. 시간이 넘칠 땐 귀한 줄 모른다. 나이가 들면 금보다 귀한 게 시간이란 걸 안다. 그리고선 시간에 조바심이 난다.
아이 둘이 태어났다. 그들은 아이는 어른의 시간을 먹고 자랐다. 아빠와 엄마,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시간은 아이들을 위해 쓰였다. 우선순위는 일대 혼란을 겪더니 단숨에 정리됐다. 아이가 1순위요, 시간의 쓰임 역시 그들의 차지였다.
어른에게서 빠져나간 시간이 그들의 피와 살과 언어와 사고로 변환되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시간 속에서 어른의 시간을 자양분 삼았다. 아직 시간이 차고 넘치는 아이들은 시간을 대체로 자고 노는 데만 썼다. 놀고 싸고 자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었으므로 나는 노동에 더 이상은 차고 넘치지 못하는 시간을 썼다.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는다. 시간의 문제라는 게 내 시각이다. 우리는 그 어떤 세대보다 시간이 유한함을 안다. 시간과 노동이 투입돼 돈이 된다. 그리고 사랑과 방치 둘을 모두 경험한 우리 세대는 아이가 더 많은 어른의 시간을 독차지해야만 한다는 사실도 안다. 어른들의 시간을 따내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아이는 어른의 시간을 떼내어 갖지만, 육아의 기적은 이 부분에서 비롯된다. 빼앗긴 줄 알았던 그 시간은 아이의 몸속에 남는다. 나는 아이의 시간을 함께 누린다. 아이의 기쁨과 슬픔과 성장과 좌절, 그리고 이야기가 마치 나의 것처럼 여겨지며, 서른 후반에 여섯 살 아이의 삶을 조금 공유하게 된다.
난 그래서 아이가 그저 어른의 시간을 침범하는 존재가 아니란 걸 안다. 아이들은 생각 이상으로 관대해 더 많은 것을 다양한 형태로 주위에 흩뿌린다. 어른은 시간을 내어 준 대신 아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고양이 털과도 같은 보이지 않는 만족과 기쁨을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