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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쇼츠 Jul 15. 2020

명란가족의 탄생

■갑자기 ‘명란?’

명란이라는 대목부터 놀라는 분이 많았어요.
명란과 저를 번갈아 봤을 때 너무 뜬금없다는 표정이었죠.


최인욱 모두싸인 마케팅팀장의 본업은 명란과 매치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명란을 판다는 대목부터

사람의 이목을 끌죠. 사실 그의 커리어는 음식과는 거리가 꽤나 멉니다.


최인욱 마케팅팀장은 대학을 졸업하던 해인 2007년 2월에 첫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IT 서비스의

기획과 영업을 맡았죠. 7년째 되던 해인 2014년, 회사에서 스핀오프 창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4년간 스타트업의 대표로 일했습니다. 그는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고, 이어 스타트업을

매각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회사를 나온 뒤 정부 용역 프로젝트를 하는 법인을 만들어 서너 달

일하기도 했죠.


2017년 말, 다시 인터파크에 입사한 그는 투어 분야에서 사업기획 일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블록체인

열풍이 불자 2018년 여름, 암호화폐 지갑을 운영하는 비트베리의 CMO로 활동했습니다. 암호화폐

시장이 급격한 침체를 겪었고, 비트베리는 매각되었습니다. 그리고 2020년 초, 그는 지금의 직장

모두싸인에 마케팅팀장으로 합류하게 됐습니다.


그의 커리어는 새로운 시도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같은 경험은 그를 빠르게 성장하게 했습니다.

최인욱 마케팅팀장의 커리어는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사업 기획과 스타트업 대표, 개인 사업,

사업개발, 그리고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커리어 라인과 명란은 정말로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쩌다 명란을 팔게 되었을까요?


그의 또 다른 사이드 프로젝트 에어비앤비 사업을 돕는 고모는 명란무침의 대가입니다. 그의 아내도 그

명란무침 맛이 폭 빠졌죠. 사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늘 먹었던 반찬이었습니다. 다른 명란을 먹어볼

일이 없었고요.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명란의 맛이 궁금해 인터넷에서 주문해봤습니다.


“너무 맛이 없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졌죠. 저는 고모의 명란무침을 테스트로

맛볼 사람을 모집했습니다. 반응이 굉장히 좋았죠!”


배달된 명란의 맛은 형편없었습니다. 그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고모의 명란 맛을 볼 사람들을

선착순으로 40명 모았습니다. 맛이란 게 주관적이어서 반응이 어떨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무척 좋았습니다. 탄력을 받은 그는 구글 폼으로 양식을 만든 뒤 가족 먹을 것과 함께 판매할

소량의 명란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명란 사이드 프로젝트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어설픈 구매 페이지를 만들고, 레시피를

개발하고, 주문된 명란을 하나하나 택배로 부쳤죠.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포장부터 홍보까지 다양한

부분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식품이다 보니 포장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먹을 것을 온라인으로

파는 일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2020년 초에는 정식으로 상가를 임대하고, 식품 관련 허가와

사업자 등록까지 마쳤습니다. 그리고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도 입점하게 됐죠.


브랜드명은 ‘명란가족’입니다. 아직 이 명란가족에서 큰 수익이 발생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음식을

만들어 온라인에 올려두고 끊임없이 판매하지 않으면 구매 활동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죠. 음식은

매우 큰 수준의 노력이 투자되어야만 한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강릉에서 에어비앤비 호스트


최인욱 팀장 아버지의 고향은 강릉입니다. 고모 등 친척도 강릉에 삽니다. 명절 때마다 친지가 모이는

그에겐 매우 친숙한 곳이죠.


2017년, 강릉과 평창에선 동계올림픽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고모 댁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스케이트 경기장도 건축되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모 댁 근처에 전셋집을 구해 에어비앤비를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와 아내는 주중엔 직장에 메여있었습니다. 장기간 강릉에서 생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가 머물고 싶은, 동시에 강릉을 찾는 손님에게 가장 편안한 숙소를 제공하고 싶었습니다.

떠나고 싶은 욕구가 모두에게 있지만, 타지에서도 ‘내 집’의 편안한 공간을 그리워한다는 걸 그는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왕이면 아이에게 친화적인 공간을 만들기로 합니다. 두 아들의 아버지인

그는 여행이 노동이 되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지저분했던 18평 아파트에 400만 원을 투자했습니다. 침대, 식탁, 세탁기, TV 등의 집기를 들였고,

폐점하는 커피가게의 테이블과 의자도 사서 베란다를 꾸몄습니다. 영어 실력이 뛰어난 아내 덕분에

에어비앤비 호스트 초기 대부터 올림픽에 온 외국인 가족과 선수 팀을 게스트로 받았습니다. 캐나다

국가대표 스키선수의 부모님도 그의 숙소에 묵었습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그는 어떻게 강릉의 숙소를 운영했을까요? 그는 강릉의 고모와 협력했습니다.

70세가 넘은 고모는 이런저런 소일거리가 생겼다고 좋아했고, 그는 고모에게 적지 않은 용돈을

드리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고모의 이사와 함께 에어비앤비 사업은 끝나게 됐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찾아 집기를 모두

양도하게 됐습니다. 그는 약 1년간 에어비앤비 숙소를 운영하면서 1,000만 원의 이익을 냈습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숙박업을 운영한 값진 경험을 얻게 됐죠. 또 그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근로소득이

아닌 자본소득을 경험했습니다. 일하지 않아도 마련한 공간을 누군가 이용하기만 하면 발생하는

소득이었습니다.


■추가수익의 긍정적 효과


사이드 프로젝트의 공통 전제는 추가수익입니다. 직장에서 근무하는 것 말고 본인의 여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추가수익을 만들어 내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많은 긍정적인 효과를 냅니다.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여러 노력과 가치가 쌓여야 하는데 그런 것이 모여 수익 이상의 자부심과 자신감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죠. 더 나아가 사이드 커리어로 내가 무엇에 더 재능과 관심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소득입니다. 20대와 30대에겐 더욱 큰 소득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부업은 부업처럼 하자’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나하나 배워나가자는 뜻이었죠. 서로의 마음을 살피고, 함께 발을 맞추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일에 매몰되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점이 사이드 프로젝트와 본업의 가장

큰 차이였습니다.


본업과 사이드 프로젝트는 어떤 관계에 놓여있을까요? 회사는 개인이 할 수 없는 어렵고 큰 일을

해내는 집단입니다. 반대로 사이드 프로젝트는 개인의 역량으로 소화할 수 있는 일입니다. 회사의

일과 사이드 프로젝트의 일의 범위는 매우 다릅니다. 우리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관리자는

실무자의 시각을, 실무자는 관리자나 대표의 무게를 느낄 수 있죠. 서로의 위치를 바꿔 생각할 수

있는 기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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