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감정은 이성을 배신한다
다시 개인의 문제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왜 합리적이지 못할까? 먼저 우리의 인지능력이 생각보다 훌륭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지적 오류(Cognitive Errors)는 바로 ‘신념’ 때문이다. 신념보존현상(beliefperseverance phenomenon)이라고 하는 이 인지적 오류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내 생각은 안 바꿔! - 보수적편향
한국증권의 김 과장은 수 년 동안 바이오 주식의 변동을 연구했다. 그는 연구 결과, 해외에서 전염병이 돌 때마다 바이오 기업의 가치가단계적으로 상승한다는 결론을 냈다. 그는 이 룰을 바탕으로 세계 질병 추이를 계속해서 관찰했고, 1년의 투자 기간 동안 상당한 수익을 냈다. 그런데 얼마 후 같은회사의 리서치 팀에서 전염병과 바이오 기업 간 상관관계가 유의미한 수준이 아니라는 데이터 분석 자료를 김 과장에게 전달했다. 김 과장은 고민 끝에 그 자료를 무시하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기로마음먹었다.
김 과장의 사례는 ‘보수적 편향(Conservatism bias)’이다. 처음에는 합리적인 관점을 수립했지만, 그 신념에 대한 확신으로 새로운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실패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아들이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서 얻어낸 결과에 오류가 있다는 지적은 특히 더 그럴 것이다.
이 성향은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먼저 자신이 시장을 보는 시각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바이오 기업의 주식을 산 김 과장은 그 주식을 쉽게 처분하지 못하고 오래 들고 있을 가능성이높다.
내 말 맞지? - 확증 편향
보수적 편향과 비슷한 오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bias)다. 나의 관점에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것들은 버려버린다. 일종의 ‘선택편향’이다.
이 현상은 주식 관련 게시판에 가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침몰하는 기업의 주식 게시판엔 수 많은 기업 옹호자들을볼 수 있다. 이들은 기업 주가를 올릴 수 있는 호재에 대해선 높은 점수를 주고, 반대의 정보는 무시하게 된다.
이러한 투자자들의 심리를 이용해 장난을 치는 기업의 경영자나 세력들도 존재한다. 이들은 중국 시장 진출 소식, 신사업 계획, 투자 유치 계획 등 아직 성사되지 않은 정보들을 흘려회사 주가를 높이는 데 이용한다. 확증편향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이 투자한 자산을 오래 보유하고, 기업의 재무제표는 투자에 가장 기본이 되는 지표들을 눈 여겨 보지 않는다.
딱 떠오르는 게 답이야! - 대표성편향
대표성 편향(Representativebias)은 철저한 분석 없이 과거 경험이나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보를 다룬다. 우리는 대표성 편향에 자주 빠지게되는데, 이 편향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는 한 번 성장주로 분류된 주식을 상당기간 시간이 지난 후에도 성장주로만 본다. 회사는 시간과 환경에 따라계속해서 변화함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분류 체계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다. 만약 이미 성장 속도가 더뎌진회사의 주식을 성장주로 인식하고 투자했다면,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했을 가능성이 크다.
언론들도 대표성 편향에 빠진다. 예를들어보자.
오늘 A라는 주식이 5% 급등했다. 그리고 그날 A사는신제품을 시장에 새롭게 선보였다. 신문들은 이를 두고 ‘A사급등, 신제품 출시 영향’ 등으로 제목을 뽑는다. 하지만 그날 중국의 호황, 외국인 매수세 유입 등으로 유가증권시장은3% 급등했고, A사가 속한 산업은 평균주가는 6% 상승했다.
그렇다면 A사는 과연 신제품 발표로 인해 주가가 오른 것일까. 이를두고 다른 더 큰 이유나 가능성을 배제하는 기저율 무시(base-rate neglect)라고 한다.
개인 투자자들이 잘 빠지는 대표성 편향 중 하나가 표본 무시(sample-size neglect)다. 이를테면 한 분기의 실적을 두고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성장주라고생각하고 투자했는데 그 다음 분기 실적을 보니 EPS 성장세가 매우 낮게 나올 수 있다. 즉, 충분한 검토 없이 이익 성장률이 둔화됐다고 판단, 성장주에서 해당 주식을 제외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를 두고 ‘충분한표본 없이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렸다’라고 판단할 수 있다.
대표성 편향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정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잦은 빈도로 투자와 회수를 반복하게 된다. 반짝뜨는 주식을 사고, 변화가 없는 주식을 팔게 된다. 또는새롭게 나온 투자상품을 검토 없이 사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결정을 내리지 않고, 쉽게 쉽게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다 할 수 있어! - 통제 착각편향
물론 초보투자자뿐 아니라 베테랑 투자자들도 심리 함정에 빠진다. 통제 착각 편향(Illusion ofcontrol bias)이대표적이다. 실제로 통제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를 말한다.
주식투자방송을 보면 나름 전문가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종목을 추천한다. 그들의 추천에는 그야말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추천종목이 급락하게 되면 오히려 기회라고 부추긴다. 추격매수를 추천하게 된다. 하지만 시장은 그들의 통제 밖이며 언제든지 그들의 기대와 다르게 움직인다.
이 통제 착각 편향은 우리의 감정에서 비롯되는 편향과도 관련돼 있다. 잘 알지 못하지만 알고 있다고 착각할 때, 실제 내가 미친 영향이없지만 영향을 끼쳤다고 착각할 때, 내가 옳다고 과신할 때, 우리는그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것 봐, 그럴 줄 알았어 - 사후설명편향
“그럴 줄 알았어”, “그때 내가 그 주식 사랬잖아. 봐! 이렇게 올랐잖아”, “거봐, 집사라고 했잖아”
우리가 얼마나 많이 듣고, 하는 말일까? 이른바 사후설명편향(Hindsight bias) 혹은 사후 과잉 확신 편향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수 없이 뱉었던 말들 가운데 유리한 것들만 모아서 자신이 옳았음을 주장하곤 한다. 반대로 틀린 추정이나 주장은 머리 속에서 지워버린다.
사후설명편향은 ‘자신에 대한 과신’으로 이어진다. 자신이 정말 잘 판단하는 훌륭한 투자자가 된 마냥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기 시작한다. 하지만 대부분 성공적인 투자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손실 국면에접어든 이후에서야 자신을 뒤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