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롱쇼츠 Mar 06. 2017

쌍둥이의 호형호제

쌍둥이 아빠는 대답할 게 많습니다. 쌍둥이를 임신할 확률은 약 3%. 흔하지 않은 일이다 보니 쌍둥이는 관심의 대상입니다. 우선 똑같은 옷을 입은 두 명의 아이의 귀여움은 대단합니다. 


쌍둥이 유모차를 타고 길을 나서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누가 형이오?"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나는 대답합니다.


"따로 형, 동생은 없어요"


그러면 둘에 하나는 이런 답이 돌아옵니다.


"그래도 형, 동생은 있어야지"


이 답엔 딱히 응대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렇죠"라고 말을 흐리며 자리를 떠납니다. 누가 형이냐는 질문을 이해합니다. 아버지도 "형, 동생은 있어야지"라고 조언을 하셨습니다. 유교문화의 영향권 아래의 우리나라에서 특정한 장자가 있어야 한다는 의식은 쉽게 없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형, 동생의 호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그것이 가져오는 역할의 분리가 생기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문화가 형이던 동생이던 전혀 개의치 않았더라면, 먼저 태어난 아이를 형으로, 뒤따라 태어난 아이를 동생으로 하는 데 무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형의 역할, 동생의 역할이 구분돼 있는 문화 속에서 자칫 '호칭'이 아이들의 성격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몇 분 차이로 태어났다고 해서 역할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과연 합리적일까요?


우리와 같은 고민은 그리 드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문제점도 없지 않았다. 형-동생 서열은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쌍둥이 아이가 이를 인지하지 못해 형은 동생을 동생 취급하고, 동생은 형을 형 취급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쌍둥이 간 형-동생이 일반적인 형-동생과 다른 특수한 관계란 점을 인지해야 하는데 어린이에게는 쉽지 않을 일입니다. 상하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관계임을 알려줘야 하는데 '형-동생'의 호칭을 사용하면서 알려주기란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아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릅니다. 나는 그 모습이 좋습니다. 정감 있고 귀엽죠.


다만 걱정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컸을 때 내가 받던 질문을 받게 되는 게 걱정입니다. "누가 형이니?"라는 질문에 아이들이 당황하거나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을까 걱정입니다. "그런 거 없어요"라는 아이들의 답변에, 어른들이 "그래도 있어야지"라고 되묻는 게 걱정입니다. "그렇구나, 형, 동생이 없구나"라고 쉽게 인정하고 아이들을 쓰다듬어 줄 어른이 많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쌍둥이가 서로를 부르는 호칭 정도는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않을까요? 마치 형, 동생처럼 말이죠. 친구보다는 더 깊고, 형-동생보다는 수평적인 그런 호칭. 100명 중 4명이 쌍둥이인 시대에 그리 무리한 기대는 아니라고 봅니다. 


미래의 어느 날, 나의 걱정이 소소한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쌍둥이와 고양이의 아름다운 만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