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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롱쇼츠 Mar 07. 2017

아이는 원더랜드에 산다

우리 집엔 악어가 삽니다. 잘 쓰지 않는 방 하나에 사는 악어는 아이들만 볼 수 있습니다. 악어는 주로 어두운 밤에 나오죠. 아이들은 악어를 조금 무서워합니다만, 때론 구경하러 가고, 때론 물리치러 갑니다. 나와 아내는 열심히 보이는 척을 할 뿐입니다.


아이의 상상력은 대단합니다. 기저귀를 팔에 끼고, 하나는 머리에 씁니다. 그리고 '나'를 물리치러 달려옵니다. 마치 무기를 들고, 투구를 쓴 양 여기저기에 돌진해 달려갑니다. 나는 그 상상의 무기에 쓰러지고, 벗겨진 투구를 다시 씌워주는 역할을 맡습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림(이라고 하기엔 부족한)을 그립니다. 그저 선과 색일 뿐이지만 아이들의 눈엔 그것이 분명 무엇인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럭저럭 그린 나의 그림에도 아이들은 열광합니다. 아이들에게 나와 아내는 피카소 정도 되나 봅니다. 아내가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아이들은 굉장히 좋아합니다.


놀아준다는 것의 의미


'놀아준다'란 말에는 '나의 시간을 할애해 너를 위해 놀이를 제공한다'라는 느낌을 담고 있는 듯합니다. 여자 친구에게 '놀아줄게'라고 한다면 "이 남자, 재수 없네"라는 반응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어른이 아이와 놀아준다라는 말을 곧잘 쓰는데, 아마도 아이는 놀이에 미숙하고 어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전제 때문일 겁니다.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놀아준다'라는 표현이 조금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의 시선에서 어른은 어떨까요? 잘 노는 어른일까요? 어쩌면 이렇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아빠는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어"

"엄마는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만 해"

"아빠, 엄마는 놀이에 조금 서툴어"

"나는 노는데 몰입하는데, 엄마랑 아빠는 딴생각을 하는 거 같아"

"엄마랑 아빠가 심심해 보이는데 같이 놀아야겠다"


노는 데 아이를 이길 어른이 있을까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이만 생각하는 아이보다 잘 놀 수 있는 어른이 흔할까요? '놀아준다'는 말에는 다소 수동적인 느낌이 담겨 있습니다. 몰입한다기보다 "너의 수준에 맞춰 적당히 상대해줄게"라는 뉘앙스도 담겨있을지 모릅니다.


아이들과 노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때론 피곤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 놀이에 나도 모르게 몰입될 때가 있습니다. 레고를 조립할 때 (남자라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나는 그 작업에 열중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아이와 나는 비로소 놀이에 '함께' 몰입하게 되죠. 그 순간은 '놀아주는' 게 아닌 '같이 논다'가 됩니다. 아이는 그 차이를 느끼나 봅니다. 함께 몰입할 때 아이는 더욱더 놀이를 탐구합니다.


'엄마표 놀이'?


아동 교육 전문가가 '엄마표 놀이'는 피해야 한다고 쓴 칼럼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감독 엄마, 기획 엄마, 연출 엄마'인 놀이는 아이들의 창의력에 좋지 않다는 이야기였죠. 뇌 발달이나 창의력에 좋다는 놀이들, 언어 능력에 좋다는 책들, 키 크게 하는 운동들, 수많은 제안과 솔루션이 제시되고 있고,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도)는 그 속에서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것들을 고릅니다.


엄마표 놀이는 '놀이 - 아이의 흥미'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사이에 하나가 끼어들어 '놀이 - (어른이 판단한) 유용성 - 아이의 흥미'의 상관관계가 구성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정형화된 놀이 패턴을 따라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미 아이는 놀이를 개발하는 데에 있어서 수준급입니다. 굳이 어른의 개입이 없어도 자신이 원하는 놀이 방식을 만들어내고 그 방식에 따라 어른들이 놀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쌍둥이 아들들도 그러한 모습을 보입니다. "아냐"라고 하면서 자신의 방식이 있음을 밝히죠.


정녕 무엇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그리고 주도적인 아이와 피동적인 아이는 어떻게 구분되기 시작할까요?


'왼손은 거들뿐'


나는 아이들의 놀이에 참여하는 '손님'이 되려 합니다. 아이들이 룰을 만들고, 그 룰에 몰입하는 아빠가 되고자 합니다. 슬램덩크의 정대만처럼 '몇만 번의 슛'을 쏘는 게 아이입니다. 놀이의 대가 앞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보단 거드는 왼손이 되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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