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크레바스’는 반드시 온다
회사생활이 정점을 이룰 때 많은 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다. 물론 서로 다른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중년인 40~50대가 느끼는 사회생활은 은퇴를 고민하게 되고 퇴직 후의 생활을 걱정하게 된다. 같은 직종으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등으로 고민 고민하면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대규모 인사발령이라도 나게 되면 안타까움과 탄식 그리고 올 것이 왔다는 자괴감도 갖게 된다. 주변의 선배와 동료들이 뜬금없이 사직서라도 내는 모습을 보면 ‘무슨 준비라도 하고 나가는 건가?’하는 부러움과 그 이후를 걱정해 주면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번 심각하게 고민해 본다.
현 직장에서 퇴직해야 하는 나이를 가늠해보면 대부분 50대 초, 중반이다. 공통적으로 이 시점에는 자녀문제, 부채 문제, 사업 문제, 건강문제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매우 당연한 듯 찾아오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퇴직을 해야 한다면 무슨 일이든 더 해서 수입을 만들어야 한다는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배우자의 마술 같은 짜 맞추기에 힘입어 적은 수입이라도 빠듯하게 맞추며 알콩달콩 살아왔다. 그런데 수입이 정지된 상태라면 문제가 다르다. 무조건 지출만 남는다. 최소 생활비라는 국민연금도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더 기다려야 나온다. 퇴직금으로 조그마한 장사를 하면 생활비라도 벌겠지 하는 생각도 지금으로서는 무리다.
여기저기서 성공보다는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더 많이 들린다. 직장을 다닐 때는 혼자만 일을 하면 되지만 장사를 하면서는 부부뿐만 아니라 가족이 모두 달라붙어야 그나마 생활비라도 남길 수 있다. 가족 모두의 생활패턴도 바뀐다. 평생 웃음꽃만 필 것 같았던 집안도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그나마 남는 것은 주위에서 불러주는 허울 좋은 사장님이란 소리다. 노후는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안갯속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후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아직은 당면한 문제가 아니라고 외면하기에는 주변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래도 외면하고 싶지만 점점 더 내 앞으로 다가오니 마음만 무거워진다.
북극을 탐험하거나 에베레스트를 올라가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크레바스라고 한다. 갑자기 생겨나거나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 갈라지고 틈새가 생긴 공간이다. 한 번 빠지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그래서 최대한 주의를 한다. 인생도 그런 크레바스가 존재한다. 당장 보이면서도 외면하고 싶은 미래, 그 시작이 바로 ‘은퇴 크레바스’다. ‘은퇴 절벽’이라고도 한다.
한두 달 준비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만 겁먹고 포기할 문제도 아니다. 어차피 찾아올 놈이고 견디고 넘어야 할 과제다. 준비가 안된 상황이라도 두려워하지 말자. 가보면 그 안에도 분명 길이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