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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eer Mar 18. 2020

남자 친구의 이상한 개그

본격 남자 친구 칭찬하기 두 번째

  누군가 나한테 어떤 이성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나는 웃긴 사람이 좋아'라고 대답했다.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남자 친구와 나는 미묘하게 개그코드가 다르다. 나는 허를 찌르는 개그를 좋아하는 편이다. 예상치 못하게 이야기의 핵심을 관통하며 파박 찔러주는 그런 개그. 예를 들자면 약간 김구라나 장동민 식의 못된 개그에 깔깔 웃는다.

  

  반면 남자 친구는 잔잔하고도 이상한 개그들을 잘하는 편이다. 그의 개그 패턴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첫 번째는 신체를 활용한 개그이다. 주로 어린아이한테 장난꾸러기 삼촌이 해대는 개그 같은 거다. 장난치다가 결국에 애는 울고 난리 나는 그런 거 말이다. 눈알을 빼서 흔들고 다시 집어넣는다던지. 혹은 쭉 뻗은 손 위로 잘린 손가락이 왔다 갔다 한다던지. 그중에 가장 특이하면서도 신기했던 건 입을 꽉 다물고 뻐끔뻐끔 거리다가 입 밖으로 연기를 뿜는 거였다. 입안과 바깥의 기압 차 같은 걸 활용한 방법인 것 같긴 한데, 태어나서 보도 듣지도 못한 그런 모습이어서 신기하긴 했다. 그래서 남자 친구와 함께 주변 사람을 만날 때면 남자 친구보고 "자기 빨리 그거 해봐. 그거, 뻐끔거리는 거." 이렇게 장기자랑 아닌 장기자랑을 시키곤 했다. 신체를 활용한 장기(臟器:내장의 여러 기관)를 자랑한 거니 장기자랑은 맞는 건가. 어쨌건 간에 다들 신기해하긴 한다. 남자 친구랑 있으면, 그가 하도 이런 것들을 다양하게 해대서 나도 엉뚱한 생각이 들곤 한다. 몇십 년 뒤에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이런 장난들을 모두 정리해서 '이상하고 하찮지만 신기한 장난 사전'을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 혼자 생각하고 혼자 웃었다.  


  두 번째는 언어유희를 활용한 개그이다. 이건 남자 친구가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개그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 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차에서 fun의 we are young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올 때였다. 남자 친구 왈, "아 we are young 할 때 그 young자가 젊을 영 嬰 이거 쓰는 거지?" 이런 식이다. 또 우리 지역의 교육감이 부정부패로 구속되었을 때 일이다. 그분은 '김복만'이라는 성함을 가진 교육감이었는데 남자 친구는 당시 그 교육감의 부정부패에 굉장히 분개해있었다. 그래서 자기 카톡 프로필에 '복만이 받으세요'라고 한동안 해두었다. 그 시기가 연말 연초였기 때문에 아무도 남자 친구만의 풍자 개그를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식이다.


   나는 이런 개그들에 혹평을 하곤 하는데 어이없는 건 그렇게 혹평을 해놓고는, 같이 놀다 보면 나도 덩달아 그런 말장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시답지 않은 말장난에 대해 남자 친구가 혹평을 한다. "개그란 건 말이야. 그렇게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니라고." 그는 나름 자신의 개그에 자부심이 있다. 자신의 말장난엔 다 원칙이 있다는 것이다. 그 원칙은 이렇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뻔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 말장난에 웃음이 터지려면 타이밍이 중요하다.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도 그 원칙을 잘 따르고 있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개그를 하는 남자랑 6년 동안 놀고 있다. 하루는 친구가 "야. 너는 그렇게 웃긴 남자 타령을 하더니 어떻게 그런 식의 개그를 몇 년간 듣고 놀고 있어? 웃음 코드가 안 맞아서 별로지 않아?"라고 물었다. 나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이 들 수 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남자 친구를 왜 좋아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봤다.

  그는 내가 우울해 있거나 속상해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카톡으로 이렇게 말한다. "만나자. 웃게 해 줄게." 그렇게 해서 또 만나면 그의 어이없는 개그를 듣고 '풉'하고 웃고 만다.


   또 난 이곳저곳 차를 타고 돌아다는 걸 참 좋아하는데, 내가 장시간 운전을 할 때면 그는 폰을 꺼내 들어 검색을 한다. 그러고는 '최불암 시리즈'랑 '만득이 시리즈'를 읊어준다. "불암이가 말했다." 언제 적 최불암 시리즈냐고. 진짜 특이해. 그런데도 그 마음이 고마워 피식 웃는다. 또 최불암 시리즈와 만득이 시리즈도 오랜만에 들으면 웃기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 같다. 그의 이상한 개그가 따뜻하고 다정해서. 그래서 엄청 오랫동안 같이 잘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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