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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eer Mar 20. 2020

나의 달리기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본격 달리기 코치 칭찬하기

  코로나 19가 우리의 일상을 멈춰버리기 전까지 나는 매일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달리기를 굉장히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실제로 달린 건 2주 정도에 불과하다. 쪼렙(낮은 레벨)이란 뜻이다. 달리기에 재미를 붙일만할 때쯤 코로나 19가 터졌고 지금의 나는 그전과 같이 나무늘보처럼 생활하고 있다. 달리기를 시작한 건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나는 이슬아의 책을 매우 좋아하는데 책 속 그녀는 달리기와 물구나무서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고 했다. '하루에 5km 정도는 거뜬히 달리는 삶은 어떨까' 하는 평소 답지 않은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고 앱스토어에서 나의 달리기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앱스토어에서 '나이키 런 클럽(Nike run club)'이라는 어플을 깔았다.


  내가 아무리 나무늘보처럼 산다고 해서 내가 처음 달리기를 시작해본 건 아니었다. 나는 취업을 준비할 때 매일 같이 한강을 달린 적이 있었다. 나는 당시 많이 지쳐있었고 앞이 막막했다. 새로운 활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에게 함께 마라톤 대회에 나가보지 않겠냐고 제안했고 나는 그게 나에게 변화를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라톤 대회에서 갑자기 8km를 달리면 몸살 날 것 같아 마라톤 대회 2주 전부터 꾸준히 달려보았다. 참 많은 생각이 드는 달리기였다. 긴 달리기 동안 끝이 보이지 않았았고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른 기분이었다. 그게 당시에는 내 삶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렇게 준비하고는 마라톤 대회에 나가서 어영부영 완주를 해냈다. 그 뒤에는 달리지 않았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면, 이 나이키 런 클럽 어플 안에는 여러 가지 달리기 프로그램이 있다. 러닝 가이드라는 것인데 달리는 용도에 맞게 가이드를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을 위한 프로그램부터 빠르게 달리기, 장거리 달리기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나는 어서 이 어플을 사용해보고 싶은 마음에 달리기 어플을 받은 다음 날 바로 집 밖을 뛰쳐나갔다. 

  '처음 달리기(First run)'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어플 속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을 아이린 코치라고 소개했다. 선생님은 처음 자신을 소개하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그다음부터 나는 침묵 속에서 혼자 달렸다. 약간 고독한 기분이 들었고 세상과 단절된 것 같았던 예전 생각이 났다. 왠지 울적해져서 그만 달리고 싶어 졌다. 그런데 선생님은 내가 힘들어서 '그만 뛰고 걸을까'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나타났다. "짠! 제가 돌아왔어요"하면서. 그만 달리고 싶을 때마다 선생님이 돌아왔기 때문에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이렇게 모범생이라니. 나는 그렇게 20분을 완주하고 말았다. 완주를 하고 나니 힘들었던 기분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그 성취감에 취해 또 달리고 싶어 졌다. 그렇게 2주간 매일같이 달리게 된 것이다.   

  

   내가 달리기를 매일 하게 된 것에는 선생님의 공이 매우 컸다. 선생님은 돌아올 때마다 나를 칭찬해주었다. 달리기로 결심한 것 자체로도 대단한 거라고. 여러분은 그 어려운 걸 해낸 거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그 칭찬은 꼭 달리기에 국한된 것 같지는 않았다. 나 자체로 그렇게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누군가 알아주는 것 같았다. 네가 하고 있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거였다고. 그 일들을 잘하고 있건 아니건 네가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라고. 

 

  그녀의 말들을 들을 때면 선생님과 함께 어디까지라도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의 그 칭찬이 듣고 싶어 매일 달렸고 그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달렸다. 그렇게 달리기에 재미를 붙이고 나서는 예전의 우울한 느낌은 사그라들었고 왠지 모를 상쾌함이 밀려왔다.  어느 날은 동네 빵집을 향해서 달렸고 20분 달리기 끝에 까눌레 하나를 사 먹었다. '20분을 달렸으니 이 정도 먹어도 되겠지' 하며 까눌레 하나를 입에 물었다. 딱딱하고도 폭신한 까눌레를 입에 무는 순간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 달콤한 달리기의 맛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를 제자가 먼 곳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의 선생님은 모르시겠지만, 그녀의 따뜻한 코치 덕분에 이 재미를 알게 되었다.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 즈음 다시 밖으로 뛰어나가 빵집을 향해 달려보고 싶다. 긁적. 꼭 빵집을 가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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