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eer Mar 14. 2020

남에게 미움을 사지 않는 법

본격 친구 칭찬하기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17살 때였다. 그 당시 나는 나름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슈퍼 쭈구리인 나는 지금 같으면 엄두도 못 냈을(내고 싶지도 않지만) 반장을 하고 있었다. 내가 그때는 쭈구리가 아니었던 건 아니다. 똑같이 쭈구리였다.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남들 사이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걸 더 편안해하는 사람인 건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몰랐을 뿐. 남들이 주변에서 부추기기도 했고 그 자리가 좀 있어 보이긴 했다. 그래서 '네가 해봐라' 하는 제안에 선뜻 반장을 하겠다고 나섰다. 앞으로 닥쳐올 후폭풍도 모르고.


  그렇게 나는 나에게 맞지도 않는 반장이라는 옷을 입게 되었다. 나는 원래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그냥 당시에도 가만히 있었지. 그러니까 주변에서는 답답해 미치는 것이었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반장인데 애가 가만히 있으니까 답답하지, 학급 친구들은 반이 시끄럽고 야자시간에 애들이 떠드는데 반장이 가만히 있으니까 답답하지, 모두를 답답하게 만들고 있었다. 사실 난 뭐가 잘못된 건지 몰랐다. 원래 하던 대로 가만히 있었을 뿐. 어떤 반장이 되겠다는 비전이 없이 반장이 된 거였으니까. 하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있으니까 주변에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반장 좀 조용히 시켜, 반장 이것 좀 니가 해야 될 것 같은데. 반장! 반장!!! 반장!!!!! 그런 사람들의 비난들과 요구들이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시키는 것들을 얼른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좀 성격이 급하다. 그런데 통 남들을 이끄는 일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애들을 조용히 시키라는데 원래 말하던 것처럼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카리스마 있게! 엣지있게! 해야 될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조용히 쫌 해!!!", "야아 아 아 조용히 해라!" 이렇게 외쳤다. 나는 원래 하이톤이다. 거기에다가 더 까랑까랑하게 소리를 냈으니 친구들의 귀는 새벽에 울리는 재난 알림 문자처럼 테러를 당했던 거지. 이제 당연한 수순으로 들어간다. 친구들은 나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답답하게 굴던 애가 갑자기 기숙사 사감 선생님처럼 돌변해서는 친구들을 통제하니까 어이없으면서도 짜증 났을 것이다. 그렇게 친구들은 은근히 나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 명 한 명 나쁜 아이들은 아니었는데, 분명 착한 친구들이었는데, 갑자기 나를 안 좋아하는 여론이 형성되자 나에게 쉽게 못되게 굴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비아냥거렸고, 굳이 내 주변에 와서는 쟤 근처에 가면 무슨 냄새가 난다던지하는 못된 말을 해댔고, 내 머리에 지우개 가루를 던지는 등 작은 테러들을 감행했다. 나를 싫어하는 마음을 서로 확인하기 전에는 쉽게 말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들을, 자기들끼리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나서부터는 너무나 쉽게 해댔다. 자기들에게는 같은 편이 있으니까. 그렇게 그들을 똘똘 뭉쳐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많이 힘들었다. 나는 그전까지 매우 평범하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를 가기 싫다던지 죽고 싶다던지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반장이 되고 나서 내가 할 줄 모르는 것들을 억지로 해야 하게 되면서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눈을 뜨면 또 아침이고 학교를 가야 하고 하루 종일 놀 친구는 없고 조별 모임에서 혼자 남게 되고. 이런 일들의 연속이었달까. 눈을 뜨기가 싫었고 이런 게 딱 죽고 싶은 심정이구나라고 느꼈지만 나를 사랑하는 엄마가 있었기 때문에 죽을 수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내 친구 S이다. 그녀는 일단 야자 하기 전에 귀가했기 때문에(얘는 엄청난 집순이이다.) 내가 주로 은따를 당하고 있던 야자시간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여론에 크게 신경 쓰지를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원래 남들이 좋아하건 아니건의 여부도 얘의 큰 관심사는 아닌 듯하다. 수업시간에 어떤 계기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이야기를 해보니 얘가 나를 싫어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그녀와 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고 우리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내 추측으로는 그녀도 나랑 이야기해보니까 애들이 그렇게까지 싫어할만한 애는 아닌데 왜 이렇게 싫어하지 하며 궁금했던 것 아닐까 싶다. 


  얘랑 친해지고 나서 살펴보니, 얘는 남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사람이었다. 당시의 나의 큰 관심사는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법이었기 때문에 참 얘가 부러웠다. 도대체 난 무엇이 잘못되었길래 이토록 미움을 받고 얘는 어떤 점 때문에 미움을 받지 않고 사는 걸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물론 지금의 나는 누군가 나를 미워할 수도 있고 좋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남들의 미움을 사고 싶지 않은 마음때문에 노력하진 않는다. 하지만 당시엔 그게 나에게 죽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했다. 


  그래서 내 친구를 관찰했다. 얘의 행동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 타인과 대화에서 자기를 드러내기보단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거나 조언해준다. 당시에 나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누군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더 오버해서, 더 재밌게 해주려고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못하고 마구 말을 뱉어내는 일이 많았다. 그러고 집에 돌아오면 왜 그런 말까지 했지 싶어서 전전긍긍했다. 또 당연히 그런 오버스러운 말들이 나중에는 나에게 독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그녀는 달랐다. 우아하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짧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고 대화를 마무리지었고, 대화 후에도 찝찝함이 없었다. 그러니 누군가가 얘를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그런 것말고도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여있는 친구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는 '저거구나. 저렇게 대화를 해야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모습들을 많이 따라 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14년이 지난 지금에도 마찬가지이다. 오버하지 않고 자기의 모습을 지키는 정도로 자연스럽게 남을 대하는 모습이 우아하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모습에서 참 많이 배웠다. 내가 나를 잃어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역량보다 더 오버하면서 남을 기쁘게 할 필요가 없구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흘러가는 대로 남을 대하면 남도 나를 자연스럽게 대하는구나. 그런 당연한 듯한 것들을 그녀와의 관계 속에서 배웠다. 그녀와 친해진 후부터 나도 자신감이 붙었고, 그녀와 친했던 친구들이 나에 대한 오해를 풀기 시작하면서 나를 미워했던 친구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그들로부터 사과를 받기도 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이 친구를 잘 들여다보면 얘가 살아가는 방식에는 지혜로움이 있다. 그중 단연 그녀의 '나를 지키며 타인을 대하는 방법'만큼은 나의 삶을 변화시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