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뮤즈 Apr 10. 2019

[뮤즈 모임] '거품'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글들

소재는 거품

*사진출처:<unsplash.com>




[뮤즈:이노성 작가] 취중 감상

부끄러운 듯 이리저리 휘적이는 물결
어디서 봤더라, 기름때와 퐁퐁
세찬 움직임이 잦아들고 이윽고 다가온 결말

근본으로 돌아가는 순간,
‘아!’ 나직한 탄성을 곱씹는다

짧은 생 돌고 돌아
또 다른 영롱함에 그 감정 잊겠지만,
잠시 내가 있었음을 기억해주오

나도 한때 세상을 휘몰아치던 때가 있었음을
자만에 고개 숙여 뉘우치던 순간이 있었음을
다른 사람을 위해 양보한 자기희생이 있었음을

여기에 담아
디지털로 남아
영원토록 기억되리




[뮤즈:심규락 작가] <일말의 내가>

안녕? 나는 기포라고 해
다른 물질 안에 들어있는 작은 방울이야, 귀엽지?
바다 건너의 누군가는 나를 bubble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내가 뭉치면 거품이라고 불리는 동생이 생긴단다

안녕? 나는 기포라고 해
나는 지금 작디작은 관 안에 들어가 있어, 불운하지?
흰 가운을 입은 분들이 요기를 수액 튜브라고 부르신 걸 들은 적 있어
내가 수액을 타고 혈관에 들어가면 생명에 지장을 줄 수도 있대

그래서 지금 이렇게 조용히 소용돌이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얇은 벽을 붙잡고 버티고 있는 중이지
조오기 내 발밑엔 곰인형만큼이나 작고 귀여운 아이가 미소를 지은 채 코오 코오 자고 있거든
이 친구가 자고 일어나면, 자신의 미소가 얼마나 이쁜지 거울로 확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이 새벽이 지나도 내가 이렇게 열심히 버티고 있다면
어차피 사라질 나지만 이 친구의 미소는 적어도 하루 정도는 더

안녕? 다시 한번 나는 기포라고 해
내 이름을 기억해주길 바라, 그래 줄 거지?
명예로운 기포로 말이야
내가, 일말의 내가 조금의 포기 없이 이 벽에 얹은 손을 놓지 않는다면
이 친구는 창밖의 벚꽃처럼 아주 예쁜 여동생의 얼굴을 더 볼 수 있지
그래서 수액이 아닌, 이 친구의 하루에 녹아들려 해




[뮤즈:김택수 작가] <거품>

거품은 아름답다.
하지만 거품의 속마음은 어떨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의 속은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보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속내는 빈 껍데기인 것일까?
아니면 보는 사람이 그의 속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그가 진실한 것일까?

어쩌면 그것은 거품의 마음이 아닐지도…….







[뮤즈:김 가] 거품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명함을 건네주고 악수를 했을 때, 그야말로 날아갈 것 만 같았다.

 “허허- 내가 뭘 그리 대단하다고...”

 겸연쩍게 말하는 상대는 우리나라 최고의 예술가라 불리는 최성택 교수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이나, 조각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TV 쇼프로에 나와 많은 연예인들과 함께 재미난 말을 많이 하던 최성택 교수의 작품을 보고 그야말로 반해 버렸다.
 동양화, 서양화, 판화, 석고 조각 등 그야말로 손대는 모든 것이 예술작품이 되는 것을 보고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예술계에 첫 발을 내딘 순간, 업계의 우상을 만든 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교수님께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음? 이 친구 할 말이 많은가 보구만. 좋아! 그럼 술이나 한 잔 사시게.”
 “옙! 영광입니다.”

*

 거나하게 취한 최 교수를 태우고 집까지 바래다주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꽤나 비싸게 나왔지만 내 롤모델과의 배움을 얻는 술자리라면 절대 비싼 값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나는 최성택 교수와 잦은 만남을 가졌다.
 나의 개인전 전시를 위해 그림을 그릴 때마다, 어려운 것이 있다면 최 교수에게 수시로 전화를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최 교수는 나에게 술을 사라는 이야기를 했고, 수십만 원의 술값이 나가지만 개의치 않았다. 물론 내 작품에 대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대단하네. 예술계에 모처럼 주목받는 신인이 되겠어.”
 “감사합니다.”

 주변에서 찬사가 이어졌고, 모두가 나에 대해 인정을 해 주고 있었다. 유독 한 명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것 봐! 그게 아니지!”
 “네? 어떤 문제라도 있습니까? 교수님?”
 “자네의 그림은 말이야. 화려하기는 하지만, 선이 부족해! 좀 더 힘차게! 자 봐봐! 이렇게!”

 완성을 앞두고 있는 나의 수채화를 보고 얼굴이 벌게진 최 교수는 술을 들이키며 붓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사정없이 붉은색으로 그림에 색을 거침없이 그어나갔다.

 “이렇게! 그리고 이렇게! 쫙쫙! 이런 식으로 나가야 된 단 말일세!”
 “오, 오오-”

 미친 듯이 덧칠을 하는 최 교수의 손놀림에 나의 그림은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하- 뭘 이런 걸 가지고...자~ 2차 갈까? 2차?”
 “교수님 아직 제 작품이...”
 “아! 이 사람, 예술은 자고로 취해야 제대로 나오는 거야!”

 결국 나는 그날도 고급 위스키와 함께 2차의 자리를 가졌다. 집에 돌아와 비틀거리면서 그림을 봤을 때, 이미 나의 색은 사라져 있는 그림을 유심히 바라봤다.

 “괜찮아. 최고의 예술가가 손대 준 거니까…….”
 
*

 “세상에 이게 뭐야? 너 열 받아서 그림 망친 거냐?”
 “무슨 소리야? 힘이 부족해 보여서 좀 더 색감을 준 건데!”
 “힘이라니...부드러운 수채화에 이런 식으로 줄을 쫙 쫙 그을 필요가 어딨어?”
 “음?”

 예술가 동기들이 모여 그 좋았던 그림을 왜 망친 거냐고 한 소리씩 했지만, 나는 거기에 대해 하나하나 대답했다.

 “이거 내 스승과도 같은 분이 손대주신 거라고!”
 “뭐? 최성택 화백?”
 “그래! 이제 좀 다르게 보이냐?”

 나의 말에 친구들은 다시 한번 그 그림을 유심히 살펴봤다. 아직도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기로 했다.
 그 뒤로도 나는 최 교수에게 많은 대접을 하며 좋은 말씀을 많이 받았다. 직접적인 예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인생의 썰이나 진로 같은 것에 대한 말이 더 많았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나의 전시전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언론에서는 ‘천재 예술가의 탄생’이라는 헤드라인과 동시에 나의 그림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국내의 이름난 대학들이 나에게 강연을 해 달라며 초청했고, TV에도 나와 문화/교양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정말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와 동시에 나의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뒤따라왔고, 자연스럽게 최 교수와의 만남은 줄어들게 되었다.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여느 때와 같이 예술에 대한 이야기로 파티를 하고 있을 때, 문화계의 저명한 기자 한 명이 나에게 말했다.

 “최성택 교수 이야기 말이야.”
 “음?”
 “그 양반 이번에 경찰에 고소당했어.”
 “뭐....?!”

 갑작스런 이야기에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최성택 교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나와 말했다.

 “제자들한테 수업료 갈취하고 제대로 된 교육은 없다고, 사기 혐의로 피소됐지.”
 “그 양반 예전에 퇴물 됐잖아? 10년 전 이후로 제대로 된 작품 내놓긴 했나?”
 “완전히 과거에 묻혀 사는 사람이야. 아직도 자기가 말 한마디 하면 국내 예술계가 난리 난다고 상황 파악 못하고...”

 나는 여기저기에서 최 교수에 대한 후려치기를 듣고서 머리가 멍해졌다. 그동안 나의 예술작품 전시를 위해 이야기했을 때를 생각했다. 언제나 수많은 술자리와 값비싼 와인과 위스키를 요구하던 나의 우상...

 “젊었을 때나 반짝했지. 예술계에 그런 일이 좀 흔해?”
 “거품이야, 거품. 한때 그런 예술가가 늙다리 되면 묻히는 게 정상이지.”

 나에 대해 최 교수에 대해 이야기를 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말로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날 밤 나는 집에 돌아와 나의 소중한 그림들을 둘러봤다. 수많은 작품들이 전시회에 전시되어 압도적인 찬사를 받았지만, 단 하나의 그림. 화룡점정을 실패했다고 왜 덧칠을 심하게 했냐며 악평을 받은 ‘그때의 그 수채화’였다. 

 

나는 계속해서 성공해 나갔다. 초신성 예술가라는 칭호로 나의 이름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그것에 대해 예전의 대가들은 점점 나의 명성에 묻혀져 가는 순간이었다. 돈, 명예, 업적 등 뭣 하나 빠질 수 없는 황금과도 같은 몇 년이 지났을 때 나는 지금의 성공에 대해 취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최성택 그 양반은 요새 뭐한대? 한때 네 우상 말이야.”
 “으음?”

 나는 최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휴대폰을 열어봤다.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가 2년 전 명절 안부 인사가 전부였다. 나는 휴대폰을 닫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몰라, 이제는 연락도 없네.”
 “그래도 네 우상이었잖아?
 “한 때였지...한때 우상..”

*


 그 뒤로 조금 힘에 부치지만, 예술 활동에 대해서는 열정이 넘친다고 생각했다. 다섯 번째쯤 전시전을 열었을 때, 점점 시들해지는 인기에 나는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점점 내 그림이 진부해진다는 거겠지? 그럼 새로운 시도를 해 볼 수도 있잖아?”

 그런 식으로 나는 좀 더 다양한 시도를 해 봤다. 하지만 평론가들 녀석은 냉담했다. 초심을 잃었다느니, 심경의 변화가 느껴진다느니 하는 식으로 오히려 더욱더 악화가 되는 느낌이었다. 강연도 줄어들고, 나의 그림이 회랑에서 1/10도 안 되는 가격으로 후려쳐질 때,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홀로 술을 마시러 갔다.
 나는 잘 못 한 게 없다. 모든 것은 배에 기름 찬 평론가란 놈들의 농간이다. 그렇게 나에 대해 이야기가 나올 때, 나의 앞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힘들지?”
 “음?! 아....”

 다름 아닌 최성택 교수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했을 때 최 교수는 여전히 술에 절어 있는 상태였다.

 “사람 참, 예술은 그런 게 아니라고 했잖아.”
 “아, 그렇죠. 그렇게 말하셨었죠.”
 “술 한 잔 사주겠나? 내가 자네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데 말이야.”

 나는 초라한 늙은이가 되어있는 최 교수를 향해 그 정도쯤이야... 하며 술을 대접했다. 역시나 거나하게 취하고 인생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던 최 교수를 보고 그저 쓴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내 인생에서 한 때 최고의 예술가로 나의 우상이었던 대가는 사라지고, 과거에 명성에 취한 거품 속의 늙은 화가만이 보일 뿐이었다.

 “교수님 집에 도착했습니다.”
 “음...으음...어? 다 왔어?”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는 교수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문을 열면서 나를 안내해주는 최 교수였다.

 “차 한 잔 들고 가게!”
 “...네? 아, 네...”

 여느 때와 같이 들어가서 차를 마시고 인생 잘 살아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고 하는 그 교수의 잔소리를 몇 마디 듣겠구나 싶어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방 안에는 천에 감싸져 있는 그림 한 폭이 보였다.

 “내가 이번에 새 전시전을 열 생각이야.”
 “아, 그렇군요. 잘 되실 겁니다.”
 “하하- 이것 보게. 난 그런 형식적인 칭찬 안 좋아해. 이젠 자네가 나보다 더 유명하잖아?”
 “당치 않습니다...”

 최 교수는 자신의 마지막 전시전이라면서 천막을 주섬주섬 걷기 시작했다. 나는 이 사람이 과연 다 늙어서 마지막으로 연다는 이 그림이 궁금했다. 그리고 천막이 열린 순간 나는 그 그림을 보면서 눈이 커졌다.

 “어떤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네.”
 “아....”

 나는 그 그림을 보며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상을 향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뮤즈:허상범 작가] 비눗방울


거센 바람에 자꾸만

움츠러들었던 모진 하루.

집으로 불어가던 길

동네 아이들이 부는 비눗방울

둥실둥실 바람을 놀려대니

나의 하루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내일은 비눗방울이 되리라 굳게 다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뮤즈 모임] '국물'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글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