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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Apr 03. 2019

[뮤즈 모임] '국물'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글들

소재는 국물

*사진출처:<unsplash.com>





[뮤즈:구수진 작가] 국물


지금은 지났지만, 겨울만 되면, 생각나는 것이 국물이다. 곰탕, 어묵 국물, 우동 등 따뜻한 국물이 생각이 난다. 어릴 적 나는 국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파스타, 스테이크, 돈까스 등 어린이들이 좋아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겨울이 되면 국물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부모님은 '너도 이제 나이가 들고 있나 보다'라고 답하였다.

그러고 보니, 국물과 인생은 비슷한 것 같다. 이런 말을 듣고 있는 당신은 '왜?'라고 말할 것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곰탕, 사골 같은 국물은 푹 끓어내어 만드는 국물이다. 즉, 10대, 20대 초반, 아무것도 모를 때는 이제 막 만들기 시작한 국물이기에 맛은 싱거울지 몰라도.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20대 후반 이후는 조금씩 끓어지는 단계이기에 맛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또 맛에 익숙해졌기에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재미를 느끼기보다는, 인내심을 더 많이 느낀다. 우리는 매번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그 삶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인생을 국물에 비유하고 싶다. 또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시각이 다르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 어린 왕자를 어렸을 때 보았을 때는 그냥 동화책처럼 읽었다. 하지만 나이가 든 지금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때, 만약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어린 왕자가 그곳을 떠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될까? 만약 어린 왕자가 나이가 들면 어떻게 될까? 등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뭐 지금도 어린데 무슨 이야기냐'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내 나이 중 지금이 가장 어린 나이이면서 가장 많은 나이이다. 앞으로 어떻게 내 시각이 바뀌고, 어떤 생활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계속하여 우려낸

 국물처럼 더 진해질 것이다. 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를 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뮤즈:도현 작가] 국물에도 다름이 있다.


어릴 적 외갓집에 갈 때마다 본능적으로 기다리던 것이 있었다. 직접 키우신 닭으로 요리하신 백숙이다. 지금이야 본능에 잠식당한 의식으로 몸에 좋은 것을 찾아다니지만 그 당시에 그 꼬마가 뭘 안다고 그 요리를 애타게 기다렸을까. 가마솥에서 몸에 좋은 재료들을 넣고 오랜 시간 동안 고아낸 그 요리의 향은 여태 내 기억 속에 배어 있다. 내 존재만으로 누렸던 특권 중 하나는 커다란 닭다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닭다리를 집었을 때 외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물을 마셔! 이게 몸에 좋은 것이야!"

"재료에서 우러나온 몸에 좋은 것들이 국물에 이게 진국이지!"


진국이라는 단어가 주는 신빙성과 따뜻함은 그 요리에 대한 가장 큰 칭찬일 거라고 생각한다.

맛에 거짓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물은 무엇으로 우려냈는지에 따라 맛과 영양이 달라진다.

사람도 얼마만큼 거짓 없이 참되게 살았느냐에 따라 분위기와 인상이 달라진다.


"저 사람 참 진국이네."





[뮤즈:이승재 작가] <국물>


고향을 향한 멸치의

들끓는 그리움

이 얼마나 짠한가





[뮤즈:심규락 작가] <대신 추는 춤> 


그렇게 바다 건너의 신기루를 향한 걸음이 수천수만 번째

단풍의 나라, 캐나다에 그는 그렇게 자발적으로 좌초되었다

빨간 루비 보석인지 붉은 피눈물인지 정체 모를 단풍잎에 파묻혔음에

그는 Yonge Street 가 아닌 동작 대로를 향해 고개를 푹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꾸던 꿈은 현실에서 악몽의 모습으로 등장할 것인지 아닌지는 영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중요한 건 어제의 그도, 오늘의 그도, 내일의 그도 모두 생존해 있을 거라는 것

세 명의 그가 삼자대면을 할 땐 모두가 서로의 등을 사포처럼 훑어줄 것이라는 것


그렇게 바다 건너에 뿌리내린 단풍나무의 싸늘한 가지를 닮은 손가락질 혹은 무관심이 수천수만 번째

여러 번 겪었지만, 캐나다에 그는 그렇게 타의적으로 익숙해졌다

빨간 칼바람 때문인지 붉은 홍조 때문인지 아무튼 거친 뺨이 상기되어 있음에

두 주먹과 얼굴은 항상 화가 나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꾸던 꿈은 밤하늘 아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또 누군가에겐 막연한 기다림을 주기에

중요한 건 과거의 누군가도, 오늘의 누군가도, 내일의 누군가도 모두 그를 필히 기다려 줄 거라는 것

내일이 오늘이 되어도, 오늘이 과거가 되어도 그 긴 시간이 인내의 사포에 닿아 부서져 없어질 것이라는 것


그렇게 바다 건너의 성공을 선언하고 표류한 시간이 벌써 몇 해가 지나고

단풍잎의 쫙 펴진 다섯 손가락으로 그는 몇 번이고 따귀를 맞았다

그 빨간색이 냉소적인 단풍잎인지 부어버린 뺨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왠지 모르게 따뜻한 기운을 삼키고 싶었다, 냄비에 차가운 대서양이 아닌 고온의 한강을 담아서

이제껏 품어왔던 꿈에 대한 변명과 낙심을 실토하지 않고 오히려 끓여내 증발시키고 싶었다

중요한 건 어제도, 내일도 아닌 지금의 그가 사포와 가쓰오부시를 그 부은 손으로 들었다는 것

한강의 유품은 아니지만 현재 그의 주변엔 바로 그 물고기 주검이 유일한 윌슨이라는 것


그렇게 가쓰오부시는 갈려진다

그렇게 갈려진 가쓰오부시는 상승하는 열기와 습기를 타고 춤을 춘다

그렇게 춤을 춘다, 그를 대신하여

그렇게 위로한다, 죽은 물고기가 아직은 숨을 쉬고 있는 그를

그렇게, 그렇게…… 그토록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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