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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 Sep 04. 2019

[뮤즈 모임] '호텔'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글들

소재는 호텔

*사진출처: <unsplash.com>




[뮤즈: 유피린 작가]


1. <저녁 연회.>


한 명이 누우면 꽉 차는 침대가 절반을 차지하는 작은 객실.
이래서야 캡슐 호텔하고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남성. 정훈은 캐리어를 내려놓고 짐을 풀었다.
“당분간은 여기에서 지내야 하는 건가.”
호텔의 창으로 밖을 바라보자 황량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절대로 도시라고 부를 수 없는 조그만 규모의 시골 마을.
고작 이런 수준이라고 하여도 호텔이 있는 것은 다행이자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어쨌든 머물 곳이 있다는 사실 하나에 안도하며 정훈은 침대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졸음이 쏟아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

정신없이 잠을 자던 정훈이 깬 것은 갑작스러운 호텔 내부 방송 때문이었다. 경고 방송인 줄 알고 깜짝 놀란 정훈은 별 것 아닌 방송에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반복해서 알려드립니다. 지하 1층에 저녁 연회가 준비되었습니다. 투숙객 여러분은 자유롭게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녁 식사를 알려주는 방송. 시골 호텔 주제에 별 걸 다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저녁 연회라는 말에 호기심이 생긴 정훈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런 시골 호텔의 연회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겠냐 싶겠다가도 어쨌든 저녁밥은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엘리베이터가 가는 것은 1층 까지였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계단을 따로 이용해야 한다. 이런 사소한 불편함에 투덜거리면서도 정훈은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어라, 이건 제법이네?”
시골의 허름한 호텔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꽤나 화려한 연회를 보며 정훈은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서울의 비싼 호텔이라고 생각해도 될 수준이다.
거기에 마침 배도 고팠기에 정훈은 모처럼 찾아온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식사에 집중했다.

*

어느 정도 배가 차오르자 음료수나 디저트를 먹기 시작한 정훈은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다들 이런 것이 익숙한지 딱히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식사에 집중한다. 신기하게도 다들 개인적인 식사에만 집중하지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광경이 어색해서 계속 두리번거리던 정훈은 갈색머리의 여성하고 시선이 마주쳤다.
그 여성이 슬쩍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자 정훈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해서 침을 삼켰다. 아직 타인하고 마주칠 준비가 되지 않은 정훈이다.
“안녕하세요. 실례가 안 된다면 합석해도 되나요?”
“그렇게 하세요.”
여성의 물음에 답하며 정훈이 맞은편 자리를 권하자, 여성은 자신의 쟁반과 음료수를 내려놓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런 호텔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연회인데, 다들 표정이 딱딱해서 심심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아, 저는 캐롤이라고 해요.”
“정훈입니다.”
자신처럼 생각한 사람이 있다고 여기며 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시골 호텔에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연회다.
“저는 302호실에 머물고 있어요.”
“우연이네요. 저는 301호실인데.”
캐롤이 자신이 머무는 객실을 말하자, 정훈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객실을 말했다. 옆 객실의 사람. 조그만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정훈은 무언가의 동질감을 느끼고 금방 캐롤하고 친해질 수 있었다.

*

연회가 끝나고 객실로 올라온 정훈은 TV를 틀어놓고 멍하니 있다가 객실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호텔 매뉴얼을 발견했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잠에 빠졌기에 발견하지 못했던 매뉴얼에 정훈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TV에서 재미있는 것을 하지도 않았기에 다른 심심풀이가 필요한 참이었다.
평범한 호텔의 안내문. 객실 청소, 세탁 서비스, 조식 제공, 와이파이 비밀번호. 이런 것에 집중하던 정훈은 마지막에 붉은 글씨로 새겨진 경고문에 몸이 굳었다.
+이 호텔은 석식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저녁 연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하 1층은 투숙객의 출입을 엄금합니다.
+호텔에서 객실로 하는 방송은 송음관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짧은 경고 문구에 정훈은 시선을 돌렸다. 오래된 호텔이라서 인테리어처럼 존재하는 천장에서 내려오는 파이프. 송음관이라고 불리는 구시대의 장치.
기억을 되살려보니 연회 방송은 이 송음관을 통해서 나왔다.

*

소스라치게 놀란 정훈은 즉시 옆 객실로 뛰어갔다. 캐롤하고 같이 올라왔기에 그녀가 객실 안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정훈은 문을 두들겼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샤워를 하거나 이미 잠에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호텔의 안내문이 계속 마음에 걸린 정훈은 로비로 내려가서 상황을 설명하자 대기 중이던 호텔 매니저가 창백한 표정으로 마스터키를 들고 올라와서 객실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매니저와 정훈이 본 것은 객실 한가운데에서 목을 매달고 죽어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2. <카메라가 꺼진 뒤.>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캐롤의 시체를 보는 순간. 침착하게 정훈은 천천히 시체에 접근했다.
“절대로 건드리지 마세요!”
“예?”
비명에 가까운 매니저의 외침에 정훈은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매니저는 정훈을 잡더니 최대한 시체에서 떨어지게 할 뿐이다.
“현장 보존은 저도 알고 있어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캐롤 씨? 302호실 손님인 캐롤 씨?”
정훈의 말을 무시하듯 몸을 돌린 매니저는 객실을 훑으면서 캐롤을 부르다가 샤워실을 보더니 천천히 문을 두들겼다.
“캐롤 씨? 이 안에 계시나요?”
매니저의 질문에 정훈은 이게 뭐하는 것인가 싶으면서도 아직 매달려있는 캐롤의 시체를 봤다. 하지만 매니저는 침착하게 샤워실 문을 두들겼다.
“……”
그러자 분명 샤워실 뒤쪽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매니저는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마스터키로 샤워실의 문을 열었다.
“꺄아아악!!!!!!!!”
“진정하세요! 호텔 매니저입니다. 그리고 옆방의 투숙객인 이정훈 님도 왔습니다.”
샤워실 구석에서 공포에 질려서 비명을 지르는 그녀를 보자, 정훈은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려다가 멈추었다.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느낌에 온 몸이 오싹해졌다.
“일단 객실을 나가야 합니다. 절대로 저쪽을 보지 마세요.”
매니저의 말에 캐롤이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훈은 침착하게 캐롤을 부축해서 객실 문을 나온다. 그러자 객실이 천천히 닫힌다.
“컷!”
객실이 닫힌 것까지 찍자, 큰 외침과 동시에 현재 상황에 몰입하고 있던 세 사람이 숨을 몰아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후우, 이번에는 진짜로 끝이지? 또 하라는 것은 아니지?”
“응, 완벽해. 원하는 장면이 나왔어.”
만족스러운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사윤을 보자, 캐롤은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연이은 NG 때문에 벌써 몇 번이고 매달려서 시체를 연기했던 캐롤이다.
“으으, 좀 시체는 특수효과라든지 인형을 쓰면 안 돼? 고작 이런 것 찍자고 호텔도 지었으면서-”
시체 연기를 했던 캐롤이 투덜거리자, 감독을 맡고 있는 사윤을 포함한 다른 두 명은 고개를 저었다.
“캐롤의 시체 연기가 너무 실감 나서 특수 효과가 못 따라가 이건.”
매니저 역할을 맡은 청년. 유진이 혀를 내두르며 말하자 다들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끼리 드라마를 만들어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이 이번에 뽑은 소재는 ‘호텔’이었다.
그리고 감독으로 뽑힌 것은 지난번 드라마에서 진상 커플을 연기한 사윤이었다.
호텔이라는 소재를 맡게 된 사윤은 처음에는 간단하다고 자신하다가, 갑자기 3일 가까이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를 않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와서 보인 각본은 무려 호러 추리물이라는 장르였다.
“진짜 캐롤의 시체 연기는 언제 봐도 섬뜩해.”
“그거야 시체 연기는 이전에도 자주 했으니까.”
“그래서 적임자이지. 다른 것은 둘째치고 시체 연기할 사람이 캐롤뿐이니까.”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옛날 호텔을 무대로 한 각본을 쓴 사윤은 적당한 호텔이 없자, 정훈을 동원해서 호텔을 지었다.
단순히 세트장 수준이 아니라, 진짜 호텔로 써도 되는 건물을 지어버리는 어마어마한 돈 낭비를 해놓고서 정작 초반의 임팩트를 위한 시체는 특수효과나 인형이 아니라 처음에 캐롤이 진짜로 매달려서 시체를 연기한 후에 카메라가 돌아간 이후에 샤워실에 몰래 숨어 들어가게 했다.
덕분에 카메라에는 안 찍혔지만 끼이익! 같은 문이 열리고 닫히는 효과음이 들어가 버렸지만, 사윤은 오히려 호러 느낌이 잘 난다면서 그냥 넘겼다.
“5분 휴식 후에 다음 장면 들어가자.”
“저기 나 목 아픈데, 고작 5분?”
“죽으면 살려줄 테니까 걱정 마.”
딱 자른 사윤의 말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연기를 하라면 그냥 순한 양이면서도 정작 감독이 되면 폭군인 사윤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모두이지만, 그의 하드한 일정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형, 그런데 이거 내 캐릭터 설정을 좀 바꿔야 하는 것 아니야?”
“뭐가? 폭력단 검거를 도와줬다가 그 잔당에게 목숨을 위험 받아서 인적 없는 시골까지 도망 온 탐정이라는 설정이 마음에 안 드냐?”
3일 동안 고심해서 만들어낸 정훈이 담당한 탐정 캐릭터의 배경 설정을 말하자 사윤이 인상을 찡그리자, 정훈은 슬쩍 뒤로 물러섰다.
“아니 그건 아니고, 내가 탐정이라는 캐릭터에 어울리는 것은 아니잖아?”
솔직히 그런 배경 설정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도입부에서 무능한 여행객 모습만 나오지 않았냐고 투덜거리고 싶은 정훈이었지만, 상대는 사윤이었기에 그냥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젠장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뽑기 방식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 소재가 뽑히고 감독도 뽑는 것이 아니라 밀어주는 소재가 당첨된 사람이 감독되는 방식으로 말이야.”
하지만 정훈의 투덜거림을 듣건 말건, 사윤은 자신의 불만을 나타내었다. 이미 모두와 함께 의논해서 결정한 제작 방식인데, 자신에게 힘든 것이 왔다고 투덜거리는 사윤이다.
“솔직히 나는 태양이 걸릴 줄 알고서 좀 황량하면서도 메시지를 주는 그런 작품을 할 생각했는데, 전혀 생각도 못한 호텔이 걸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건 이미 각본 작업 들어가기 전부터 들었어.”
호텔이라는 소재의 감독으로 당첨된 사윤이 얼마나 불만을 쏟아내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주연 3인방으로 뽑힌 세 사람은 고개를 흔들 정도였다.
좀 누군가 대신 불만을 들어주었으면 하는데, 다들 나 몰라라 하는 태도로 구석에서 분장을 바꾸고 있다.
연회장에서 창백한 귀신을 연기했던 모두가 이제는 각자 배정된 다른 귀신 분장을 하며 자신의 자리로 들어갈 준비를 하며 활짝 웃는다.
이번에는 다들 대사가 없다고 좋아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는 정훈이다. 지난번 드라마에서 자신도 저랬지만 왠지 얄미워지는 정훈이었다.
“콱 진짜 귀신이나 만나라!”
“……귀신이 성불 당하는 쪽에 5만 원.”
“귀신이 시선 피하고 지나가는 쪽에 10만 원 건다.”
“나도 알고 있어. 괜히 해본 소리야.”
귀신 따위가 통하지 않는 인물들이기에 정훈은 고개를 흔들었다. 귀신이 보이면 그 자리에 잡아서 특수 분장 필요 없는 인력이라며 작품에 투입할 괴물들이 여기 있는 인간들이다.
각자 살던 세계나 시간은 다르지만 우연한 사건으로 인하여 모인 인간을 벗어난 초월적인 존재들. 그런 인간들인데 귀신이 통할 이유가 없다.
“투덜거리는 것 보니까 다 쉰 것 같으니까 다음 장면 들어가자. 레디 액션!”
사윤이 큐 사인을 넣으려고 하자, 세 사람은 객실 문에 자리를 잡고 서서 준비하더니 바로 연기에 돌입했다.
“잘 들으세요. 지금부터 302호실을 폐쇄합니다. 그리고 두 분은 어서 호텔 밖으로 나가셨다가-”
매니저 역할의 유진이 대사를 치는 중에 카메라 뒤의 사윤이 어디선가 커다란 종을 꺼내더니 그걸 주먹으로 후려친다.
데-엥!
큰 종소리가 호텔 복도를 울리자, 유진은 순식간에 창백한 표정이 되었다.
“이런. 이미 늦었네. 잘 들으세요. 두 분은 지금부터-”
종소리와 함께 호텔의 문이 잠기고, 본격적인 호러가 시작된다. 로비로 내려가는 중에도 수많은 귀신과 괴기 현상에 마주치며 정훈은 자신의 대본에 따라서 탐정 캐릭터에 어울리는 정보 수집을 한다.
귀신이 얽힌 한 많은 호텔은 결말에 호텔을 빠져나오며 불을 지른 세 사람에 의하여 잿더미가 되어버린다.
“하하하. 이거 짓자고 16억이나 썼는데-”
“돈 따위는 잊어버려. 어차피 돈도 많은 놈이 뭘.”
애당초 유튜브 채널은 실질적인 수입이 아니기에 정훈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다들 뭔가 일다운 것을 하면서도 놀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거 조회수는 잘 나오려나?”
“기껏 지어놓은 호텔 불 지르고서 그런 소리가 나와?”
“뭐, 타는 내 속처럼 잘 타오르기는 하네.”
호텔이라는 소재의 감독을 맡은 사윤의 감상평에 정훈은 이 인간에게 불을 질러버릴까 했지만, 어차피 통하지도 않을 인간이라 그저 혀만 찰뿐이었다.




[뮤즈: 김다빈 작가]


<호텔에서 건진 것>

1.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여기저기 다니던 중이었다.
오늘 일할 곳은 강남에 위치한 한 호텔이었다.
“자! 여러분들이 오늘 할 일은 각 방마다 있는 매트리스를 모두 꺼내서 지하실로 옮기는 겁니다.”
“20층짜리 호텔에 매트리스를 전부 다....”
나는 큰 규모의 호텔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야리끼리로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은 일이었다.
2인 1조로 움직여 20층으로 올라간 나는 곧바로 맨 끝의 방부터 들어갔다.

“2015호 매트리스 옮깁니다!”
“형님! 살살해요!”
오늘 처음 만난 친구는 부사수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며, 같이 매트리스를 들어 올려 엘리베이터 앞까지 올리는데 호흡을 맞췄다.
“어? 동전이다.”
폐업한 지 얼마나 오래된 호텔인지 모르겠지만, 각 호에서 매트리스를 들춰 올릴 때마다 백 원, 5백 원의 동전들이 나오고 그것들은 짭짤한 부수입이 되었다.
“20층까지 다 돌면 만원은 나올걸요?”
“담뱃값은 추가로 벌 수 있겠네.”
생각지도 못한 수익에 신이 나서 매트리스를 들어 올리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하지만 동전만 나오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웩! 미친! 이 호텔 청소 한 번도 안했냐?”
“누가 쓰다 버린 콘돔을 이렇게 침대 밑에 놓는 건지. 손대지 마요. 드럽게 다 묻을라.”
오래전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콘돔이 나오던가, 아니면 주사기 모양으로 생긴 괴상한 젤(호텔에서 주는 성인용 러브젤이라 한다.)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 것들은 그나마 이 장소가 호텔이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노트와 포스트잇 뭉치들, 목걸이라도 뜯은 건지 구멍이 뚫린 진주 구슬, 심지어는 카지노에서 쓰인다는 룰렛 동전과 이제는 추억이 된 피처폰 케이블 같은 것들도 나왔다.

“보물 찾기가 따로 없네...”
“계속 뒤져보다 보면 뭐 좋은 거 나오지 않을까요?”
20층부터 내려오며 시작했던 매트리스 운반이 어느새 15층까지 내려와 양쪽 끝에서부터 혼자 짐을 날라도 될 정도로 숙련된 상황이었다.
“형, 이번엔 제가 오른쪽 끝으로 갈게요. 형이 왼쪽부터 시작해서 중간에서 만나죠.”
“알았어.”
각자 맡은 방에서 나온 물건은 가지기로 하면서 내건 룰이었다.
바로 위층에서 쏠쏠하게 동전들을 건져낸 뒤로 이쪽에는 뭐가 있을까? 봤을 때 나는 첫 호실부터 보물을 찾게 되었다.
“오~ 외국 동전!”
‘Dime’이라고 쓰인 외국 동전을 세 개나 발견한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물론 원래의 일인 매트리스를 엘리베이터로 옮겨 지하로 보내는 일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게 순조롭게 출발을 해서 이제 한 층만이 남은 순간이었다.
“예상보다 빨리 끝나겠는데? 여기는 일찍 끝난다고 시급 깎고 그러진 않지?”
“네! 일당제니까 일찍 끝나면 그냥 바로 갈 수 있대요.”
“그럼 마지막 층 빡세게 가 보자고! 이번엔 내가 오른쪽!”
예상 퇴근시간보다 2시간이나 더 빨리 끝나는 통에 나는 신이 나서 움직였다.
거기에 바지 주머니 한쪽이 묵직하면서, 짤그랑 거리는 금속 소리가 날 정도로 푸짐하게 동전도 긁어모았으니 담배값에 음료수 값도 추가로 챙긴 것이었다.
“폐업하는 호텔들 많았으면 좋겠네. 동전 좀 쓸어 담게...”
혼잣말을 하면서 흥얼거리던 나는 마지막 층에서는 그닥 동전 수익이 부족해서 아쉬운 대로 매트리스만 나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였다.
“어?”
마지막 객실 안에서 발견한 것은 은빛이 반짝이는 손목시계였다.
크기로 보아 여성용으로 보이는 시계는 파란 바탕에 시간대로 보석이 박혀있고, 라틴어로 숫자가 쓰여진 시계였다.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시계에 글자가 써진 대로 [A. Lange & Sohne]라고 쓰인 브랜드 이름을 하나하나 검색해봤다.
“이거 뭐라고 읽는 거야? 아... 랑게... 운트... 죄네? 어느 나라 말이야?”
검색을 해 보니 꽤나 이름난 유럽의 명품 브랜드 시계라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름값 보다도 ‘네X버 쇼핑’에 나온 그 시계였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이 생긴 시계가 중고 명품샾에서 온라인으로 파는데 그 가격은 대략....
“힉!?” 폐업한 호텔에서 쓰레기 치우다 주운 시계치고는 어마어마한 값어치를 가진 녀석이었다.
순간적으로 심장이 떨려 이걸 어떡해야 하나? 하는 순간 저 밖에서 부사수 친구의 소리가 들렸다.
“형! 아직 안 끝났어요? 몇 호실이에요?!”
“어, 어! 여기만 빼면 돼! 금방 나갈게!”
나는 반사적으로 뒷주머니에 그 시계를 찔러 넣은 채 마지막 매트리스를 치우고, 그 날 도망치듯 호텔을 빠져나왔다.   


2.


“그럼 그렇지. 천만 원의 가치는 개뿔...”
모든 진실이 밝혀지자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짝퉁 명품 시계가 뭐라고, 지난 일주일 동안 두려움에 떨었던 걸까?
오히려 짝퉁이라는 확정을 받자마자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차라리 다행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 시계를 올리고, 사진을 몇 방 찍은 다음에 그 커뮤니티로 들어갔다.
[아, 망했다!]
그동안 매일같이 올렸던 ‘주운 시계 썰’에 대한 댓글은 어느덧 원본 글이 200개가 넘는 댓글과 다른 커뮤니티와 SNS에도 퍼진 상태였다.
이제 이 글도 마무리가 될 순간, 나는 차분하게 키보드를 두들기고 마지막 글을 올렸다.
[예상대로 시계는 짝퉁, 1000만 원 가치? 응 아니야. 그런 거 없고, 그냥 폐업 호텔에서 버린 거였어.]
댓글은 순식간에 달리기 시작했다.
ㄴ역시나ㅋㅋㅋㅋㅋㅋㅋ
ㄴ그럼 그렇지. 그걸 누가 버리냐? 그 호텔 뒤져서라도 찾지.
ㄴㄴ그런 말 많이 나왔는데 저 호텔 접근 금지라 못 갔을 수도 있었다고 함.
ㄴ저기 ㅈㄴ유명하잖아. 그때 그 마약이랑 도박 사고로...
순식간에 원본 글이 커뮤니티에 불타고 1시간이 되지 않아 다른 곳에 여기저기 퍼지고, SNS까지 글이 올라온 것을 확인한 나는 조용히 침대에 누웠다.
침대 위에서 스마트폰을 깨작거리며, 오늘은 그냥 이 짝퉁 시계에 대한 스캔들에 대한 글만 보고 잘 생각이었다.
그때 갑자기 휴대폰에 메일이 한 통 도착했다.
“뭐야 이거?”

3일 뒤 내가 도착한 곳은 강남에 위치한 한 카페였다.
재킷에 안주머니를 뒤져 그 시계를 꺼내 들고는 유심히 살펴봤다.
그날 각 종 커뮤니티에 폐업한 호텔에서 주운 명품시계 썰을 풀며 수많은 쪽지를 받았지만, 직접 자신의 이메일을 찾아 보낸 한 통의 메일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된 것이었다. 
[아랑드 시계의 주인입니다. 지난날 그 호텔에 있다가 제가 잃어버린 시계인데,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고 긴가민가하다가 사진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귀중한 물건이니 돌려주신다면 사례하겠습니다.]
나에겐 오히려 땡큐였다.
쓰레기통에 집어넣느니 지하철 몇 정거장 가서 짝퉁 시계 돌려주고 사례까지 한다니 얼마나 좋은가?
“짝퉁인데 사례까지 할 정도라니... 뭔가 사연이 있는 물건인가?”
숫자 부분의 12개의 보석 중 한 개가 떨어져 나가 수리가 필요한 물건, 거기에 전문 시계점에서는 뜯어볼 필요도 없이 가짜라고 판단해 버린 이 물건.
그것을 보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정장 차림의 여성이 나타났다.

“맞네요! 드디어 찾았다.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내가 건네준 시계를 확인하더니 두 손으로 꼭 쥔 채, 안도의 한숨을 쉬는 여성이었다.
“중요한 물건인가 봐요?”
“네? 아, 네....”
“그거 가짜라고 하던데.”
“네, 이미테이션이에요. 그래도 저한테는 정말 소중한 물건이에요.” 
“그렇군요.”
그리고 그녀는 핸드백에서 봉투를 꺼내 나에게 건네줬다.
“감사합니다. 이렇게까지 안 주셔도 되는데...”
“그럼 이만 가 볼게요. 수고하셨어요. 아, 그리고 부탁이 하나 있는데, 지금까지 올라온 글들 전부 지워 주실 수 있나요?”
“네? 그런데 여기저기 퍼져서 이미...”
“커뮤니티의 원본 글만이라도 지워주세요.”
사례금까지 받았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네 그럴게요.”
그렇게 그녀와 인사를 한 뒤에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오늘은 왠지 치킨에 맥주 거하게 먹어야 될 것 같은 날이었다.

"자- 그런 의미로 이제 이 글들은 삭제합니다. 시계 썰은 이제 안녕..."
집에 돌아와 커뮤니티에 글을 모두 지우던 나는 포털 사이트 뉴스에서 최근 시끄러운 강남의 카지노와 마약 스캔들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마약, 도박, 난교파티, 그 속에서 벌어지는 높으신 분들의 은폐 등등 더러운 내용이 한가득인 기사를 보면서 맥주를 마시던 중 무심코 중얼거리게 되었다.
“저것도 다 돈 있는 놈들이나 엮이지. 나하고는 상관이 있나....”

그날 밤,
철거를 앞둔 호텔에는 외벽에 수많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악덕사장 조만식은 자폭하라!]
[A호텔 주주들 피눈물 흘린다!]
[파라다이스 관광지라면서, 경찰 조사 나 몰라라?]
A호텔과 사장을 욕하는 낙서가 가득한 그 곳에서 검은 옷의 여성은 아 랑게 운트 죄네 시계를 가지고 그 내부를 따기 시작했다.
소형 드라이버와 맥가이버 칼로 거칠게 뜯어낸 순간 그 안에는 원래 있어야 할 시계 쿼츠가 아닌 작은 반지와 그 안에 담긴 하얀 봉지가 있었다.
“정말 큰일 날뻔했어. 이게 경찰 손에 들어갔으면 다 끝나는 거였는데...”
엄지손톱 하나 크기의 작은 봉지를 꺼낸 여성은 묵혀뒀던 깊은 숨을 이제야 내쉴 수 있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마지막 샘플도 수거 완료했습니다. 사장님]
그녀는 품 안에 반지와 흰 가루 봉지를 품 안에 넣고서는 내부가 뜯긴 시계를 폐업한 호텔 안으로 집어던졌다.




[뮤즈: ㅎㅈㅇ 작가]


‘이쯤이면 나와야 하는데.’ 남자는 네비가 길을 제대로 안내하는지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며 길을 밟았다. 남자가 찾아가는 곳은 산과 맞닿은 오래된 호텔이다. 남자는 어린 시절 딱 한번 이 호텔에 오고 거의 40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때는 이렇게 풀이 무성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느새 이곳은 풀에 정복당한 느낌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네비가 친절히 안내했고 남자는 도착했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두려움을 느꼈다.
 트렁크를 열자 작은 캐리어가 나왔고 남자는 자갈길을 걷기 시작했다.
 남자는 자신처럼 이 호텔도 늙고 추해졌다는 사실에 슬픈 감정이 생겼다. 한옥으로 꾸며진 이 호텔은 한때 대궐 같은 분위기가 났지만 지금은 보수작업에 신경을 쓰지 않는지 여기저기 금이 가고 색이 바랜 모습이었다.
 남자가 체크인을 하는 동안 할머니가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아무리 장사가 안돼도 유니폼도 지급 안 한단 말인가?’ 그는 할머니의 초라한 행색과 굽어질 대로 굽어진 허리를 보며 동정심과 경멸, 놀라움을 동시에 느꼈다.
 남자는 방에 들어섰고 한동안 침대에 앉아 통유리창에 보이는 풍경을 감상했다. 남자가 묵은 방은 프레지던셜 스위트룸으로 어린 시절 묵었던 방과 일치했다.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좋았다. 남자의 가족은 돈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으며 부모님도 사이가 좋았다.
 남자는 점점 씁쓸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제 그에게는 모든 눈물과 감정이 메말라버린 것 같았다. 남자는 이내 이 사실을 무시하며 미리 가지고 온 스카치와 미니바의 모든 술을 꺼내 놓았다.
 남자는 한잔 두 잔 기울이며 자신의 지난날들을 회상해보았다. 아버지처럼 자신 또한 사업에 실패했고 이혼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아이들을 보는 날은 이주일에 한 번이다. 남자는 아이들이 예전처럼 남자를 좋아하지 않고 의무감에 만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빠, 다음 달엔 모의고사 때문에 만나기 힘들 것 같아요.”/
 남자는 더 이상 용돈을 넉넉히 주지도 항상 여유가 있는 미소를 흘리지도 않는 무능력한 중년 남자였다. 항상 어깨는 쳐져서 전처의 눈치를 보고 같이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울함을 전염시키는 벌레 같은 존재였다.
 남자는 이제 모든 준비를 끝냈다.




[뮤즈: 류재은 작가]


여름이면 딸애는 돈 오십을 들여 호캉스를 간다
호캉스가 뭔데 하고 물으면
호텔에서 노는 바캉스란다

나는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해 주눅 든 호텔 로비를
딸애는 성큼성큼 걸어갈 것이다

나의 반도 채 살지 못한 딸애는
나보다 많은 세상을 보고

나의 시간 속 계집애가 감히 누리지도 못한 것들을
딸애는 누리고 산다

나 대신 누리는 딸애가 자랑스러웠다가
그 애만 누리는 세상이 싫어졌다가
그 애가 미워졌다가
또 딸애가 뿌듯하다

올해 쉰넷이 되는 나에게 호텔은 사치인데
내년에도 서른이 채 안 되는 딸애에게 호텔은 휴가란다

호텔로 놀러 간다는 딸애에게
다음번엔 나도 데려가달라는 말을 삼키고 말한다
재밌게 놀다 와-

딸애는 웃으며 대답한다
응!

오늘도 그 애는 날 잊은 것 같다




[뮤즈: 허상범 작가]


<그것의 이름>


 “어서 오십시…”
 “어디로 가면 되지?”
 호텔 안내데스크 직원의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여자는 자신의 용건을 말했다. 데스크에 올린 여자의 오른손에는 호텔 카드 키가 쥐어져있었다. 직원은 여자의 손을 알아채지 못하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녀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직원은 여자의 눈빛을 읽을 수 없었다. 그야 당연히 여자의 얼굴 반을 가린 커다란 선글라스 때문이었다.
 여자는 한심하다는 듯이 입가에 냉소를 띠우고는 남은 손으로 자신의 눈이 보이도록 선글라스를 살짝 내렸다. 그러자 여자와 눈이 마주친 직원은 얼어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날카롭고 예리한 눈빛보다는 눈동자의 색 때문이었다. 아니, 눈동자의 색이 아니다. 그녀의 눈동자의 색 자체는 그저 평범한 갈색이었다. 푸른빛 때문이었다. 그녀의 동공 전체가 서리와도 같은 푸른빛으로 둘러싸여 일렁이고 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손으로 눈짓했다. 직원은 가까스로 그녀의 눈이 향하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헉!’ 직원은 여자의 눈빛과 마주했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한눈에 여자가 가지고 있는 카드가 자신이 근무하는 호텔의 카드임을 알아차렸지만 그가 놀란 것은 호텔 카드가 가리키는 숫자 때문이었다. 1408.
 “소, 손님이 어떻게 이 방 카드를…!”
 직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1408호는 지금까지 10년 동안 호텔의 금지구역이었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안내 데스크 직원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었다. 어느 고요한 밤, 1408호에 머물던 어떤 남자가 영문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한 적이 있었다. 당시 직원들의 말에 따르면 죽은 남자는 새장보다는 조금 더 큰 철장을 들고 있었다고 했다. 검은 천막에 둘러싸여 안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분명 동물 같았다고 한다. 그때 당시 호텔 규정에는 애완동물 반입이 가능했었다. 방 열쇠를 받은 남자는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듯 부리나케 자신의 방으로 향했고, 다음날 남자는 사지가 반으로 찢어져 죽어있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남자가 수많은 금괴에 둘러싸여 죽어있었다는 것이다. 방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많은 금괴를 넣을 만한 가방을 갖고 있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혹시나 남자가 가지고 온 철장을 열어봤지만 그곳에도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남자의 죽음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후로도 그 방에 묵은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지가 찢어져 방을 나왔다. 재미있는 것은 죽음이 있을 때마다 나오는 것이 달랐다. 첫 번째 남자처럼 수많은 금괴가 있는 반면에, 돈, 다이아몬드 등 죽은 사람들의 곁에는 엄청난 재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호텔은 그 사건들로 한 때 난리가 났었다. 분명 타살의 흔적으로 의심되지만 살인을 저지른 자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경찰 수사는 난항을 겪었고, 당시 호텔 사장은 이 미스터리한 연쇄살인 때문에 밤낮을 경찰서로 들락날락거렸기 때문이었다. 미스터리 연쇄살인으로 유명세를 탄 호텔에 사람들의 발길은 잦아졌지만, 1408호를 폐쇄하고 나서야 연쇄살인은 막을 내렸다고 한다. 호텔에서 발견된 주인 없는 의문의 재물들은 하룻밤 사이에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그러나 호텔도, 피살자의 소유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던 터라 그 또한 미스터리라며 사람들은 또 한 번 호텔에 열광하게 된다.
 “잠시만!!”
 직원이 더 이상 할 말을 잃고 창백해져 있는 사이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호텔 지배인이 두 사람을 향해 달려왔다.
 “죄, 죄송합니다. 마중이 늦었습니다.
 지배인은 죄송스러운 마음에 여자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어디로 가면 되는 거죠?”
 여자는 지배인의 모습을 확인하곤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미안하네. 자네들에게 얘기를 해줘야 했는데 미처 그러질 못했구만. 나중에 얘기 합세. 자, 이쪽으로.”
 지배인은 여자를 정중히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여기가 맞나요?”
 “네, 여기가 예전에 그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가 맞습니다.”
 여자는 1408호의 문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10년 동안 폐쇄되었던 1408호였지만 문만큼은 리모델링되어 외관상으로는 여느 방들과 다를 바 없었다.
 “좋아요. 이제 가셔도 돼요. 여기서부터는 내가 알아서 해요.”
 지배인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아닙니다. 저는 오래전 그 참상을 본 적 있습니다. 제가 안내해드린 손님이 다시는 해를 입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그저 무사히 나오실 때까지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여자는 그의 말에 가벼운 한숨을 내뱉었다.
 “금방 끝나요. 뭐, 알아서 하세요.”
 여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카드로 거침없이 1408호의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사이로 오래된 세월의 냄새가 지배인의 코를 스쳤다. 지긋한 나이만큼 얼굴에도 주름이 많아 어지간해서는 표정을 읽기 힘든 그였지만, 오랫동안 묵혀뒀던 1408호의 공기가 코를 찌르자 그는 전율하고 말았다. 오래된 먼지 냄새, 그리고 그곳에서 죽은 사람들의 피 비린내가 섞여 오묘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자가 들어가고 1분이 1년 같은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배인은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그러나 그녀가 나온 것은 채 3분도 되지 않아서였다.
 “버, 벌써 끝나셨습니까?!”
 들어갈 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으로 걸어 나오는 여자의 모습에 지배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역시나 였어요,”
 여자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여자는 자신의 선글라스를 완전히 벗었다. 데스크에서처럼 그녀의 두 눈은 서늘한 푸른빛으로 일렁거렸다.
 “난 모든 것들의 이름을 알 수 있어요. 사람도 그리고 사람이 아닌 것도 이 두 눈으로 보기만 하면 그들의 이름이 다 보여요.”
 “네?”
 “저 방에 있던 것의 이름은 ‘룸펠슈틸츠헨’. 그게 다예요. 그럼 이만.”
 여자는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났고, 지배인은 자신의 두 눈으로 방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보았다. 아이의 형상 같은 모습이 반으로 절단되어 바닥에 널브러진 채 칠흑과 같은 어두운 재가 되어 날아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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