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Decisiom To Love, 2022)(감독: 박찬욱, 출연: 박해일, 탕웨이, 이정현 외)
* 이 글에는 헤어질 결심에 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이 글은 영화의 시간 순서대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는 고전 스릴러의 형식을 지닌 사랑 영화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사랑과 더불어 소통에 관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히 그들의 사랑은 불륜이기에 도덕적이라 할 수 없는데요. 그 역시 사랑의 위대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소통의 엇갈림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는 대각선처럼 엇갈린 그들의 사랑과 더불어 그들이 서로에게 던진 시그널의 송수신과 그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영화를 보면 유독 대각선의 이미지가 많이 나옵니다. 대각선 구도는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주기 때문에 불륜이라는 상황, 그리고 살인사건이라는 영화의 상황을 담아내기에 알맞은 구도처럼 여겨지는데요. 저는 그러한 의미에 더해, 주인공인 서래와 해준의 상황을 대각선이 지닌 특성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1부에서의 서래는 해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해준을 서래 자신이 만든 일종의 심리적 감옥에 가둠으로써 그의 눈과 귀를 막으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영화 내에서 해준을 특정 공간에 가두는 이미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해준이 서래를 지켜보는 잠복근무를 하던 중 해준이 서래가 일하고 있는 가정집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연출을 보여줍니다. 서래가 새장 안에 있는 푸른빛을 띤 새에게 먹이를 주다가 이동하자 그 새장 안에 마치 해준이 갇혀 있는 듯한 모습이라던지, 어항 속의 파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는데 마치 해준을 어항에 가두어놓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모습 등에서 이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 수사 과정에서 옥상으로 용의자를 쫓아간 해준을 지켜보며 도로의 철창 사이로 해준을 바라보는데 마치 간수가 죄수를 바라보는 듯 철창 사이에 서 있는 해준을 비춘 모습에서 역시 이 러한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서래는 점차 해준이라는 인물 자체에 빠져들게 됩니다.
반면, 해준은 서래를 처음 보자마자 사랑의 감정이 일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는 잠복근무를 통해 서래를 지켜보며 점차 그녀에게 빠져듭니다. 그는 일적인 측면에서는 완벽주의자이지만, 자신의 삶은 완벽하지 않기에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그런 그의 불면증을 해소해 주고 완벽한 삶으로 만들어 준 존재는 서래였습니다. 매력적인 그녀의 모습에 그의 눈은 멀게 됩니다. 그는 모든 것을 똑바로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여러 형태로 등장하는 안개의 형상은 그의 시선을 가로막습니다. 처음 자신의 아내인 정안에게 밥을 해줄 때에도 정안과 해준 사이에는 찌개의 김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그가 집으로 돌아올 때의 도로 역시 해안가의 안개로 인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영화 속에서 중요한 순간에 안약을 넣습니다. 명료하게 상황을 보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으로 보입니다. 그랬던 그가 눈을 제대로 뜨기 시작합니다. 여러 증거들을 통해 서래가 본인의 남편 기도수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그럼에도 그는 서래를 사랑했기에 그녀의 범죄 행위를 묵살합니다. 완벽주의자로서의 자신을 ‘붕괴’시켜가면서까지 말이죠.
그리고 1부에서 그들의 엇갈림을 표현하는 장치는 심문 씬에서 드러납니다. 이때 해준과 서래는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화면은 의도적으로 해준과 서래가 각자 다른 곳을 보는 듯한 연출을 보여줍니다. 즉 해준이 서래를 바라보는 모습은 그대로 보여주면서 해준의 뒤편에 위치한 CCTV를 통해 서래의 얼굴을 보여주어 그들이 실제로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나 심리적으로는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심문의 과정에서 보통 형사는 자신을 감추고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는 입장입니다만, 이 장면에서의 형사인 해준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면서 서래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데 성공합니다. 이는 중간에 초밥을 먹는 장면에서도 드러나는데요. 해준은 동봉된 물고기 모양의 간장 병을 다 비움으로써 속내를 보입니다. 반면 서래는 간장 병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물고기의 속이 보이지 않는, 검은 모양의 상태로 두고 있습니다. 그들의 심리상태를 은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해준의 사랑은 홍산오 사건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납니다. 홍산오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결과조차 피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후술 할 예정입니다만, 영화 속 나무는 사랑하는 사람 혹은 그 사람의 감정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데요. 홍산오가 형사인 수완에게서 도망칠 때 나무에 부딪히는 표현을 통해 그 역시 사랑하는 사람임을 암시합니다. 그런 그의 모습은 형사로서의 완벽한 커리어에 스스로 흠집을 내면서 붕괴해 간 해준의 사랑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2부에 들어 서래는 해준에 대한 애착이 강해진 상태로 보입니다. 서래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원전 ‘붕괴’와 관련된 드라마를 봅니다. 서래는 아마도 헤어질 당시에 해준 자신이 붕괴되었다는 표현을 듣고, 해준이 자기 자신마저 버릴 만큼 서래 본인을 사랑했다고 이해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드라마 속 대사를 해준에게 그대로 읊조리죠. 그녀가 자신의 집에서 해준이 그녀에게 대접한 초밥을 먹으며 간장통을 다 비운 모습에서 그녀의 마음가짐이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투자 사기 가해자인 임호신이란 남자와 결혼한 상태입니다. 그런 그녀가 부산에서 이포로 이사 간 해준을 따라가기 위해 자신의 남편에게 이포로 이사를 가자는 제안을 합니다. 이후 그녀의 남편 임호신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해준은 서래를 찾아가 의심하고 따지기 시작합니다. 그녀의 혐의가 벗어진 후 그들은 산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지만, 결국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완결’ 짓기 위해 역설적으로 스스로 ‘미결’ 사건으로 남게 되는 것을 선택합니다. 해준의 마음이 사랑으로 인해 붕괴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스스로를 붕괴시킴으로써 해준의 마음에 영원히 남고자 한 것이죠. 그리고 그런 그녀의 붕괴는 자살을 위해 쌓아 놓은 모래 언덕이 파도에 붕괴되는 씬을 통해 은유됩니다.
반면 해준의 마음은 1부 마지막에서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한번 붕괴된 그는 2부에서 유독 눈에 안약을 많이 넣습니다. 그의 시야가 안개에 싸인 것처럼 더욱 흐릿해진 것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일적으로 완벽주의자였던 그가 붕괴된 것은 그가 운동화 대신 구두를, 스마트 워치 대신 일반 시계를 찬 부분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항상 안개에 싸인 동네 이포에서 생활하며 점점 시들어갑니다. 여전히 불면증에 시달리며 말이죠. 그렇지만 서래의 남편 살인사건을 통해 서래와 함께 차로 이동하던 그는 깊은 잠에 빠집니다. 그의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듯 말이죠. 그렇지만 그는 계속 서래를 의심합니다. 서래와 함께 산에 오른 후 그는 뒤늦게 서래를 찾아 헤매게 되지만, 서래는 이미 ‘헤어질 결심’을 한 이후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진 해안가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처럼 울부짖는 그의 모습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이러한 해준의 사랑을 자라 도난 사건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는 잃어버린 자라(사랑)를 다시 되찾으려 했지만, 그가 자라를 찾은 순간은 너무 늦은 후였습니다. 자라가 몸에 좋다는 부인 정안의 말에 따라 자라를 구해오긴 했지만, 정안은 이미 그 순간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한 이후였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서래에 대한 사랑을 뒤늦게 되찾으려 했지만, 결국 그는 그녀가 사라진 모래사장 위에서 그녀를 보지 못한 채 이리저리 헤맬 뿐입니다.
이처럼, 해준과 서래의 서로에 대한 마음은 대각선과 같은 모양새를 보입니다. 극 중 서래의 대사처럼, 해준의 사랑이 끝날 때 서래의 사랑이 시작된 것이죠. 대각선을 이루는 두 직선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시작하여 다른 방향으로 향하지만, 그 둘은 단 한 지점에서 교차합니다. 해준과 서래의 마음 역시 1부가 마무리되는 그 시점에는 같은 사랑을 공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지점이 바로 두 대각선의 교차점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송신
이 영화는 시그널과 관련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보통 언어라는 시그널로 소통합니다. 영화 내에서는 그 외에도 위치추적 장치나 각종 데이터, 혹은 휴대전화 등으로 소통하기도 합니다. 이때의 시그널, 특히 언어라는 시그널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극 중 서래와 해준이 쓰는 언어가 각각 다르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데요. 그들은 서로 소통함에 있어 한국어를 사용하지만, 특히 서래의 경우 모국어가 아니기에 소통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비단 서래만 어려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준 역시 휴대전화 문자로 소통함에 있어 빠르게 오는 서래의 문자에 대답하지 못해 쫓아가다 마지막에 단답형의 대답만을 합니다.
극 중에서 해준은 서래의 혼잣말을 녹음하고 이를 번역하는데요. 서래가 “해준의 심장을 갖고 싶다”라고 번역한 말은 실은 “해준의 마음을 갖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해준이 1부의 마지막에 “나는 붕괴되었다”는 말을 듣고 서래는 해준의 사랑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해준은 2부 마지막 즈음, 자신이 언제 사랑한다고 말했냐고 되묻습니다. 이렇듯 언어로 인한 송신은 한계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언어의 구체적인 의미나 상황에 따른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는 그 언어를 수신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언어적 장벽에도 불구하고 서래와 해준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주고받습니다. 즉 언어가 태생적으로 지닌 한계를 넘어서 서로의 마음 깊숙한 곳을 알아볼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죠. 그렇지만 그들의 사랑은 역시 언어의 한계로 인해 끝까지 어긋나게 됩니다.
수신
우리는 시그널을 언어적인 것뿐 아니라 다양한 감각기관을 통해 수신, 즉 감지할 수 있는데요. 이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를 통해 상대방을 향한 시그널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시각 정보는 영화의 가장 처음부터 등장합니다. 영화에서는 해준의 눈, 그리고 죽은 기도수와 임호신의 눈, 수산시장의 생선의 눈 등 다양한 눈을 보여줍니다. 특히 해준의 눈은 앞서 설명했든 여러 안개들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해준은 보는 것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극 중 특히 서래와 관련된 일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는데 실패합니다. 심지어 극 후반에는 정안의 외도 역시 보지 못하였고, 서래가 죽은 장소에서 서래를 제대로 보지도 못합니다.
이때 본다는 것은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일단 어떤 사물을 본다는 것은 내 시선이 그 사물을 향하고 있다, 즉 그 사물을 원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준이 처음 서래를 마주했을 때 영화는 서래의 모습이 아닌 서래를 바라보는 해준의 눈을 비춥니다. 즉 해준이 서래를 욕구하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또한 그는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에 미결된 사건에 대해 집착하는데요. 미결 사건에 대한 그의 집착은 그의 자취방 벽에 박혀있는 미결 사건의 사진들을 계속 바라보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해준은 잠복근무를 하며 서래를 몰래 지켜봅니다. 이때의 본다는 것은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가 어떤 행동을, 왜 그렇게 하는지 질문을 던지며 점차 그녀를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그의 시각적 시그널을 방해하는 존재는 서래입니다. 해준이 잠자리에 들어도 잠에 들지 못하자 그녀는 그를 재워줍니다. 그러면서 방의 불을 서서히 끄게 되는데요. 방의 전구는 점점 어두워지며 그 둘이 데이트를 한 절에 있는 사천왕상 중 한 명의 눈으로 디졸브 됩니다. 전구를 해준의 눈이라고 한다면, 서래는 해준의 시야를 어둡게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서래 역시 해준과 마찬가지로 듣는 것보다는 보는 것을 더욱 좋아합니다. 기도수의 죽음에 대해 설명을 들을 것인지 사진을 볼 것인지 묻는 해준의 질문에 서래는 보는 것을 택합니다. 그러면서 해준은 서래가 자신과 같은 종족이라며 동질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둘은 마침내 절에서 마주 봅니다. 그렇지만 그 둘 사이에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 둘이 사이에 두고 있는 북의 존재가 꽤나 크게 그려집니다. 북과 북 사이,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은 그 둘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간극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청각 정보 역시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시각적으로는 안개를 지속적으로 노출시켰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음악은 정훈희의 ‘안개’입니다. 안갯속의 여러 사람들은 서로를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을 명료하게 보기 어렵습니다. 마치 사람들의 마음 사이사이에 안개가 껴있는 것같이 말입니다. ‘안개’의 가사 역시 안갯속에서 길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해 메는 한 사람의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서로의 마음에 대한 의심의 기류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해준과 서래는 극 중 음성 메모를 통해 서로의 속마음을 공유합니다. 음성 메모는 자신이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혼자만의 생각을 메모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음성 메모를 통해 녹음된 목소리는 상대방에 대해 자신이 진실로 생각하는 바를 솔직하게 나타냅니다. 1부에서는 해준이, 2부에서는 서래가 자신의 속마음을 음성 메모의 형태로 공유합니다. 그러나 가장 마지막 순간, 1부의 끝자락에 해준이 서래에게 했던 마지막 말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라 결국 그들은 각자의 사랑을 끝내 미결로 남겨놓게 됩니다.
이해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동일한 시그널들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모두의 관점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그 시그널에 대한 이해 역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마치 2부에서 서래가 입은 청록색의 드레스처럼 말이죠. 같은 음성 메모를 듣고도 서래는 그 안에서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읽었고, 해준은 자신의 그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죠. 특히 극 중 서래는 영화 내에서 가장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요. 그런 서래의 모습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1부에서 해준은 서래가 지닌 인간다운 면모에 집중합니다. 해준은 잠복근무를 통해 그녀가 매일 다른 할머니들을 자신의 어머니처럼 보살피고, 길 잃은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등, 그녀가 지닌 따뜻한 모습만을 관찰합니다. 반면, 동료 형사인 수완은 처음부터 그녀가 남편 기도수를 살인했다고 의심합니다. 이러한 입장차는 처음 그녀를 만난 후 계단에서 둘이 나눈 대화 씬을 통해 알 수 있는데요. 해준은 계단의 위쪽에서 수완을 내려다보면서 서래의 입장과 자신의 입장을 대입하고 그녀와 공감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수완은 계단의 아래쪽에서 해준을 올려다보며 사건 자체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즉 두 형사가 같은 인물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서래를 심문하는 장면에서 수완이 들어오자마자 서래는 안감이 붉은 천으로 덧대어진 푸른 상의를 벗습니다. 마치 수완이 겉과 속이 다른 서래의 모습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리창 건너의 서래의 얼굴과 유리창에 비친 수완의 얼굴이 미묘하게 겹친 구도를 통해 보여줍니다. 즉 두 형사가 한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도는 2부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번에는 해준과 동료 형사가 반대의 관점을 지닙니다. 이미 서래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해준은 이번 남편 살인에 서래가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합니다. 반면, 후배 형사 연수는 살인범인 철성이 이미 범행을 자백했으므로, 피해자의 가족이자 남편을 잃은 가여운 그녀를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서래라는 동일한 인물에 대한 형사들의 관점이 다른 것처럼,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서로가 주고받는 시그널에 대한 이해, 즉 해석의 차이로 인해 서로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마치 이포 바닷가에서 커다란 섬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서래와 해준처럼 서로의 마음 사이에는 ‘관점’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산과 바다
영화에서 산은 여러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선 사건의 발단이 된 구소산을 매개로 해준과 서래가 만나게 됩니다. 즉 산은 해준과 서래의 연을 이어준 공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극의 후반에서 해준과 서래는 호미산에서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 두 산들 위에는 모두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구소산에 솟아 있는 한 그루의 나무는 아마도 서래에 대한 해준의 사랑처럼 보입니다. 해준은 그 산에 올랐을 때, 화면상 유독 그 나무 아래에 위치한 느낌을 줍니다. 마치 그 나무가 해준 본인인 듯 말이죠.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서래의 진실된 모습을 그녀의 감정에 이입하여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호미산에서는 그것이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1부에서의 사건 이후, 해준은 붕괴된 채 살아갑니다. 반면 해준에 대한 서래의 사랑은 보다 커졌습니다. 그 둘이 호미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키스를 나눌 때 잠시나마 그 둘은 서로의 사랑을 완전히 이해하였는데요. 카메라가 해준 쪽을 비추자 그의 뒤에 나뭇가지가 없는 나무가 화면에 걸립니다. 그리고 카메라가 이동하여 서래 쪽을 비추자, 그녀의 뒤에는 나뭇가지가 무성한 나무 숲이 나타납니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사랑의 위치에 있는 두 사람의 입장을 나무를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래의 마지막 순간 그녀는 나무가 무성하게 자란 바위산 사이로 지나갑니다. 그녀의 사랑은 그곳 바닷속에서 뿌리내릴 것입니다.
또한, 산은 솔직함의 공간입니다. 서래는 자신의 남편 기도수에게 학대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이 지닌 분노를 적나라하게 표출한 공간이 바로 구소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서래의 이와 같은 면모를 해준이 깨닫게 된 곳 역시 구소산이었습니다. 그리고 극의 마지막,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장소 역시 호미산, 즉 산이었습니다. 서래는 극 중에서 산을 무서워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녀가 산을 무서워하는 것은 자신의 과오로 인해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 자체가 두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던 서래는 해준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기는 안개 없어요.” 안개는 그동안 해준이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도록 그의 시야를 가린 상징입니다. 그런 안개가 없다는 것은, 서래가 해준에게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겠다는 선언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준이 좇던 홍산오 역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을 옥상(산과 유사한)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했는데요. 이것 역시 산이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공간적 장치였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바다는 사랑이 완결되는 혹은 미결되는 공간입니다. 서래는 바다를 통해 한국으로 왔고, 바다 배경의 벽지를 등지고 있으며, 바다에서 자신의 사랑을 완결 짓습니다. 해준 역시 서래와 마찬가지로 산 보다는 바다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서래와 바다가 동일시되는 느낌이라면, 해준은 그러한 서래를 욕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서래는 해준에게 지속적으로 바다의 형상으로 다가옵니다. 해준이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숨소리와 해준의 숨소리를 맞추며 전등불을 끕니다. 그때 해준의 침실은 마치 바닷속인 것처럼 묘사됩니다. 그리고 해준은 그 속에서 자신의 부족함, 즉 불면증이 해소되는 경험을 합니다. 이때 숨소리를 맞춘다는 설정은 둘이 하나가 되어 함께 숨을 쉰다, 즉 둘의 사랑이 실현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서래는 극의 마지막에 스스로를 바닷속에 가둠으로써 해준의 미결 사건이 되었고, 그렇게 그녀의 사랑은 완결되었습니다.
서래와 해준의 사랑은 바다와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묘사되는 바다는,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하여 모든 과오를 덮는 모습을 보입니다. 1부의 마지막에서 해준이 서래의 사건을 덮으면서,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휴대전화를 바다에 버리라고 한 것 역시 그녀를 위해 모든 사건을 덮으려 한 해준의 사랑을 보여준 단면입니다. 이 대목에서 서래는 해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신하게 되죠. 또한 바다는 파도가 계속 몰아치기 때문에 그 경계 또한 모호합니다. 마치 서래의 마음처럼 말이죠. 그녀가 복합적인 모습을 지녔다는 것은 그녀의 성격 자체가 모호하다는 반증일 수 있습니다. 뚜렷한 경계가 없는 바다처럼 말이죠.
헤어질 결심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상대방과 헤어질 결심을 합니다. 해준의 부인인 정안은 해준과의 결혼생활을 어떤 식으로든 지켜보려 했지만, 제 생각에는 극 초반부터 이주임이라는 사람과 어느 정도 내연관계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상에는 등장하지 않는 중학생 딸 때문에 억지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완전히 통제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해준에 대한 통제는 해준이 서래를 만나기 전까지는 잘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그러한 통제로 인해 해준은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지만 말이죠. 그러나 서래를 만나면서 그녀는 이제 해준이 자신의 통제하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상황을 눈치챈 그녀는 주저 없이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실행에 옮깁니다.
해준은 서래를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그의 공허한 빈자리를 서래가 채워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그녀의 배신은 그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1부의 마지막에 그녀와 ‘헤어질 결심’을 합니다. 물론 그는 실질적으로 그녀와 헤어졌습니다만, 그런 그의 결심은 완결되지 못합니다. 한편으로는 서래를 다시 마주하게 되면서 그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느끼게 됨으로써 그 결심은 무너집니다. 한편으로는 서래의 ‘헤어질 결심’으로 인해 그는 헤어짐을 당하게 되어 그의 결심을 끝을 맺지 못하게 되죠.
서래는 해준을 이용할 목적으로 해준에게 접근합니다. 그렇지만 해준이 자신을 대하는 모습을 통해 점차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해준과의 사랑이 삶 속에서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해준이 완전히 붕괴됨으로써 영원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녀는 해준이 자신과 헤어질 결심을 했을 때 직감했던 겁니다. 그와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가 집착하는 미결 사건이 되는 것이라고 말이죠. 따라서 그녀의 ‘헤어질 결심’은 해준과 현생에서 헤어질 결심임과 동시에 미결 사건으로 남아 영원히 해준과 함께할 수 있는 결심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 위대한 소통의 힘
사랑이라는 감정은 개인만의 관점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작은 우주라고 보았을 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은 다른 차원의 공간과 같아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화 속에서 서래와 해준이 서로에게 보내는 사랑에 관한 시그널이 자꾸 어그러지고 오해를 사는 것은 그 둘이 완전히 다른 우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인간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가능케 하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일 것입니다. 극 중 서래와 해준은 상대방에 대한 다른 시그널을 보내고, 방향도 어그러졌으며, 그에 대한 해석도 잘못되었지만, 그들이 함께 느낀 행복은 진실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 사이의 수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자신만을 바라볼 때 나타날 수 있는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상대를 보았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기적인 마음에서 벗어나 아득한 마음의 심연을 넘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단순히 상대방 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기존에 알고 있던 세상마저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됩니다. 심지어 자신이 옳다고 여겼던 가치관이 붕괴되고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사랑을 통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동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사랑을 통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서로의 삶에 스며들며 서로의 다름에서 조화를 이루게 된다고 믿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의미의 소통은 사랑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서래의 사랑을 본다면, 그녀의 사랑은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사랑입니다. 동시에 역설적인 사랑이죠. 그녀는 해준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존재를 지워버립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완결시키기 위해 해준에게 미결로 남는 것을 선택합니다. 해준의 붕괴는 사랑을 위해 자신의 중요한 가치관을 포기한 사건이므로, 서래가 그것을 사랑으로 느낀 것은 이해됩니다. 그렇지만 만약 그녀가 해준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녀는 해준의 행복을 바랐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해준에게 평생의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과연 이것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너무 흔한 단어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했을 때 그 가치는 더욱 빛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정안의 사랑, 상대방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기도수의 사랑, 혹은 상대방에게 영원히 남아 있기 위해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는 서래의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며 사랑하는 모든 이와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의 진정한 사랑이 이뤄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