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택자지만 나도 드림하우스가 있다
서울에서 쉬지 않고 한 시간 반을 달리면 소똥 냄새 깨나 풍기는 도로가 펼쳐진다. 어릴 적 내 기억 속 그곳은 이렇다. 야생동물 조심. 낙석 조심. 냄새 조심. 그러니까 드라이브 중에 무심코 창문 열기 조심.
강원도 홍천 북방면. 이곳은 푸릇한 나무가 자라고 사방 천지가 산으로 둘러쌓여 웅장한 모양을 하지만 동시에 몹시 고요하다. 간간히 눈에 띄는 집은 인기척이 없고, 길에서는 걷는 사람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해마다 쉽게 가물어 버리고 마는 홍천강. 그러다 한 번 비가 오기 시작하면 계곡이 범람해 둑으로 쌓은 몇몇 비포장도로를 무너트리곤 했다.
어쩌다 발견할 수 있는 이들은 구보 중인 군인들. 이들을 볼 때면 전우들을 위해 수류탄을 온몸으로 막아낸 강재구 소령이 떠오른다. 북방면 어딘가에 위치한 강재구 공원은 나의 여름 방학 중 휴가 단골 코스 중 하나였다. 이모의 별장이 북방면 어디에 있었던 게 그 이유다.
부모님과 친척어른들은 나와 동생, 사촌 아이들을 앞에 두고 교육 차원에서 필요하다며 오발탄을 뒤집어 쓴 그의 살신성인을 강조했다. 그럴 때면 몇몇 어른들은 몸을 바르르 떨곤 했다. 존경심과 경외감이 떨림을 통해 고스라니 전달됐다. 동시에 무언의 떨림은 모성애와 부성애를 전달했다. 희생은 위대하지만 그게 너라면 감당하기 힘들 거라는 말을 차마 입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희생은 위대하지만 이 때문에 나는 살신성인을 떠올리면 숭고함과 부모님의 사랑, 이 모두가 생각나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오르곤 했다.
충만한 기분은 이모의 별장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근처에는 적당하게 관리된 별장이 간간이 있었다. 서울에서 비교적 넉넉한 중산층이 꾸릴 수 있는 하얀 벽, 빨간 지붕의 간이형 세컨드 하우스들. 그 앞에 가지런히 놓인 푸른 파라솔과 바비큐 구이, 흔들 의자...
이 곳 사람들은 주중에는 집을 비워두다 주말이 되면 이곳을 찾아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쉬러왔다. 물론 완벽한 휴식은 아니다. 텃밭에 심어둔 상추, 토마토, 고추 따위에 물을 주어야 했다. 산자락 어딘가에 듬성난 깻잎 나무를 발견하면 비닐 한 가득 털어오곤 했다. 앞서 뿌려둔 더덕씨가 자라 토실한 삼처럼 자라면 "심봤다"라고 외치는 쾌거도 누렸다.
그 곳을 조금 벗어나면 멀리서도 크게 티나는 이층 통나무집이 있었다. 앞에는 마치 강처럼 넓은 폭의 계곡 물이 흐르고, 가끔 때가 맞으면 주인 아저씨와 그 옆에서 잔뜩 신이난 골드리트리버를 볼 수 있었다. 직사각형으로 깊게 파인 마당 한켠 수영장에는 늘 수돗물인지 빗물인지가 꽉 차 넘실거렸다.
한 눈에 반해 곧잘 기웃거리던 그 산골 저택. 어린 날 짧은 생을 통틀어 본 가장 큰 파라다이스. 작은 주택들 사이 속 홀로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던 그 집을 나는 종종 떠올린다. 내가 더 이상 눈망울을 빛내는 초등학생이 아니듯이, 그 집도 나이를 먹었겠지. 가장 살고 싶었고, 잊을 수 없는 나의 드림하우스는 어릴적 추억과 함께 머리속 동화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