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같은 딸, 그녀를 인정하기까지
-아들 같은 딸과 함께 잘 먹고 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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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 딸을 낳았다. 그렇게 예쁜 아기는 처음이었다. 첫째, 둘째도 그렇게까지 예쁘게 생기진 않았었다. 올망졸망한 얼굴에 조그마한 보조개. 셋째를 보러 온 지인들은 하나같이 딸아이의 생김새를 칭찬하며 아기 모델을 시켜보는 건 어떨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분홍색 모자를 씌어 놓으면 천사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아기는 자꾸만 모자를 벗어버렸다. 답답해서 쓰고 있기 싫나 보다 생각했으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모자가 분홍색이어서 그랬던 것이 틀림없다.
둘째가 돌도 되기 전에 셋째를 가진 것을 알게 되었다. 첫째와 둘째를 제왕절개로 출산하였고 자궁 유착이 심했던 터라, 의사는 아이를 낳을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물어왔다. 계획에 없던 아이. 두 아이의 육아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던 나는 셋째가 생긴 사실에 앞이 막막해져 왔다.
형태가 불분명한 콩알 크기의 초음파 영상 위로 심장 박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아기의 존재를 소리로 확인시켜주며 건네는 의사의 진지한 질문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다. 아니, 심장 박동 소리가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다. 내 심장이 아기의 심장박동과 함께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웃음이 나왔다. 현실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출산에의 본능에 충실한 나. 이 모든 상황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것은 나 자신이었다. 어디서부터 비현실이 시작되었는지, 어떤 지점이 가장 비현실적인지는 딱히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예쁜 아기가 또 내게로 온 것이다.
막내를 출산하고 내게 독한 면모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 번의 제왕절개는 내 몸에 무리였다. 출산 이후 무서울 정도로 많은 양의 피를 쏟았다. 간호사는 울기 직전으로 보였다. 의사는 마음의 준비라는 말까지 내뱉었다. 남편은 울먹거렸다. 나는 한없이 고요해졌다. 그 고요함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떤 두려움도 없었다. 내 운명이 어찌 될지언정, 나는 이 아이를 낳았음에 기뻤다. 숙제를 다 끝낸 느낌이 이런 것일까. 너무나 의연한 내 모습에서, 내가 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모든 엄마들은 독한지 모른다. 독하다는 표현이 부정적으로 들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독하다는 단어는 강인하다는 단어를 넘어선다. 엄마는 강함을 넘어서서 존재한다. 독하다. 지독하게 자식을 지켜내는 것이 엄마라는 사람들이다. 독했기 때문에 고요할 수 있었다. 고요함 속에서 몸은 서서히 회복되었다.
막내는 원래 이렇게 이쁜 것인지. 잠도 잘 잤고, 배만 부르면 칭얼거리지도 않았다. 금이야 옥이야 예쁘게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일인지. 딸아이는 칼싸움, 총놀이를 좋아했다. 딱지치기와 구슬치기 같은 복고풍의 남아 놀이를 선호했다. 파워레인저로 빙의되어 넘어지고 다치고, 부딪치고 찢기고. 온몸으로 인생을 즐기는 딸아이를 낳았다. 막내의 꿈은 야구선수, 축구선수, 육상 선수, 피겨스케이팅 선수, 배구 선수 등이다.
가장 큰 어려움은 신발값이다. 돈도 돈이지만, 돈이 나갈 때마다 화가 난다. 도대체 왜 이래야만 하는지. 새 신발을 사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발뒤축은 닳아 없어져있다. 도대체 얼마나 뛰어다니면 신발이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단발머리에 야구모자. 떨어진 운동화와 구멍 난 바지. 야구방망이를 책가방에 길게 꽂고 자전거를 용맹스럽게 타고 다니는 여자아이.
그 날, 내가 낳은 뽀얗고 예쁜 딸아이는 새카만 얼굴에 한 번 더 쳐다봐지는 차림으로 온 동네를 누비고 다니는 여걸 초딩이 되었다.
"엄마, 어떤 아줌마가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묻더라?"
밖에 나갔다 돌아온 아이의 질문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나 같아도 궁금하겠다.'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날도 운동화 밑창이 달아나서였을까. 땀범벅이 된 머리카락에 모래가 묻어 있어서였을까. 목마르다며 집어 든 컵에 맺힌 물방울이 더러운 손으로 검정색으로 변했기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고 싶은 말들이 뱃속 가득 쌓여서 부글부글 끓었다.
"들어가서, 씻어!"
소리를 질렀다. 아이가 하는 이야기에 대꾸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자는 어떠해야 한다고 여성성에 대해 규정하는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가 화를 내니 아이는 서럽게 울었다. 눈물을 닦을 때마다 구정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울지 마, 뚝 해!!!"
구정물을 보니 참을 수가 없었다. 더 크게 화를 내며, 욕실로 아이를 밀고 갔다. 그런다고 고분고분 씻으러 갈 녀석이 아니다.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는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냈다.
"엄마도 여자면서 왜 여자를 차별하는 건지 모르겠어."
"엄마는 엄마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엄마는 내 말은 안 들어주고, 내 꿈도 인정해주지 않고."
"내가 달리기 잘하고, 운동 잘하는데. 왜 여자는 그러면 안돼?"
"그 아줌마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물어서 내가 얼마나 속상했는지 알아?"
아이의 말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여자라서,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내가 내 생각을 강요하는 건 아닐까? 조그만 마음에 상처가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 엄마에게 마음 무거운 질문들을 던져놓고, 정작 이 녀석은 무슨 마음인 건지. 샤워를 하는 중에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려진 밥상을 보며 눈을 반짝였고, 미역국이 맛있다며 조금 더 달라고 했다. 언니 오빠와 <흔한 남매>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깔깔 웃었다. 서러웠던 기억은 전혀 없어 보였다.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낮동안 있었던 축구경기 이야기를 조잘거렸다. 자기 전에는 좀 더 옆에 누워 있어 달라며, 품에 꼭 안겼다.
"엄마가 아까 화내서 미안해. 그 아줌마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물어서 많이 속상했어?"
"아니."
"뭐야, 아까 속상하다 했었잖아."
"그냥 그 질문이 재미있었어."
"그럼 아까 진짜 속상했던 건 뭐 때문이었어?"
"오늘 달리기를 졌어."
아이의 진짜 마음은 뭘까. 잠든 아이 얼굴을 들여다본다. 이마의 솜털이 너무 귀엽다. 통통한 볼살이 사랑스럽다. 아들같은 우리 딸. 나로 하여금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 생각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아이가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십여년 전, 산부인과에서 확인했던 그 심장이 지금 여기 여전히 뛰고 있다. 그 심장이 원하는 것은 온 힘을 다해 달리는 것이다. 그래, 정답은 없다. 네가 내 앞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고, 내가 너를 쓰다듬는 지금 이 순간 자체가 정답이란다. 딸아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들 같은 딸. 그녀를 인정하겠노라 결심하며, 잠든 아이를 살피고 살며시 아이 방을 나온다. 거실 구석에 딸아이가 던져놓은 헬멧이 보인다. 여기저기 찍혀있는 헬멧을 보니 심장이 쿵쾅 거린다. 헬멧을 제 자리에 두러 현관으로 향한다. 뒤꿈치가 닳아 없어진 신발 두 짝이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벗어져 있다. 좀 얌전한 녀석이면 얼마나 좋을까.
핸드폰을 집어 들고 쇼핑몰에 접속한다. 늘 주문하던 운동화가 있다. 장바구니에 넣을 겨를도 없다. <즉시 구매>를 클릭한다. 카드 결제 문자가 온다.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다. 나는 그녀를 인정할 수 있을까. 정작 엄마의 마음은 무슨 마음인 건지... 화는 치밀어 오르는데, 피식 웃음이 난다. 이런~ 이런 와중에 웃음이 나는 걸 보면,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것이 확실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