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귀인열전

요양보호사 J

- 행동개시, 잘 먹고 잘 사는 일의 시작

by 몽B


요양보호사 J가 나무를 후려칠 때마다 대추들이 후드득 마당 여기저기로 떨어져 내렸다. 발아래 떨어진 통통한 대추를 집어 든 김 노인의 얼굴에 환희가 깃든다. J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혀 있다. 기다란 작대기는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짤 딱 만한 키에 어디서 저런 깡다구가 나오는 것인지. 이제 그만 됐다며 J를 말리는 김 노인의 목소리가 소녀들의 재잘거림마냥 신이 나있다.


대추나무가 있는 다세대 주택에 세 가구가 세 들어 살고 있다. 젊은 부부와 50대 남자 그리고 김 노인이다. 85세의 김 노인은 이 집에 10년째 거주 중인 홀로 사는 할머니이다. 김 노인이 이웃의 50대 남자와 3년 간 본체만체 지내게 된 것은 집주인이 관여하지 않는 대추나무 때문이었다. 매년 어김없이 대추나무에는 대추가 주렁주렁 열렸다. 옥상으로 난 계단을 몇 발짝 오르면, 손에 닿이는 대추들을 조금 딸 수 있었다. 가을이 되면 한 움큼 정도 대추를 수확할 수 있었고, 김 노인은 그런 가을이 기뻤다.


3년 전 가을, 김 노인이 외출한 사이 주렁주렁 열려있던 대추들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완벽하게 감쪽같지는 않았다. 옥상에 돗자리가 펼쳐져 있었고, 대추를 말리는 이웃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소소한 수확의 기쁨을 빼앗긴 것에 속이 상하긴 했어도, 뭐라 할 수 없는 일이라 웃고 말았다. 가을 햇살 아래 대추는 잘 말라갔다. 김 노인은 옥상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대추 말리는 일을 도왔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옥상의 대추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 움큼도 맛보라며 나누지 않은 이웃 남자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그 날 이후로 김 노인은 이웃 남자도 대추나무도 쳐다보지 않으며 살게 되었다.



J는 오랜 세월 신장 투석을 받는 남편과 치매를 앓는 시고모의 뒷바라지를 하였다. 그 와중에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으니, 직장에 나가는 딸들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까지 도맡아 했다. 그런 J의 생활을 아는 이웃 여자가 J에게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 어떻겠느냐 제안했다. 보살펴야 하는 중증 환자가 둘이나 있으니, 자격증을 받아두면 나중에 쓰임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J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교육을 받았고 공부했으며, 실습에 참여했다. 그 결과, 늦은 나이에 자신의 이름이 떡 하니 세겨진 자격증을 받아 들게 되었다. 10년 전의 일이다.


2020년, J는 남편을 하늘로 떠나보냈다. 남편의 49재 다음 날, 시고모 역시 떠났다. 혹독한 세월과 그보다 더 가혹한 이별의 아픔을 견뎌야 했다. 그녀는 '쉼'의 행위를 잊어버린 것일까. '희생'하는 것이 삶 자체가 되어버린 것일까. 몇 개월만이라도 몸과 마음을 '쉼'의 영역 안에 두면 좋으련만, J는 잠시도 몸을 가만 두지 않았다. 장롱 깊숙이 넣어 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꺼내 든 J는 시청과 노인복지센터를 방문하며 자신이 돌봐야 할 '할머니'를 찾아다녔다.






대추나무가 있는 다세대 주택 1층. 요양보호사 J는 김 노인과 인연이 되었다. 약을 챙겨주고, 반찬을 챙겨주고, 청소를 도와주어도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잠시도 몸을 가만 둘 줄 모르는 J는 앞마당에 버려진 작은 화단을 발견하고 상추를 심고, 파를 심었다. 김 노인은 파랗게 돋아나는 새싹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상추나 파는 김 노인의 밥상에 올라왔고, 노인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기분이었다.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김 노인과 J는 친구가 되어갔다.



대추가 가득 열린 가을. J는 대추나무에 대한 노인의 사연을 듣게 되었고, 일전에 보아둔 기다란 작대기를 들고 대추나무를 후려쳐서 대추들을 탈탈 털어냈다. 집주인이 대추나무에 대해 관여하지 않았으므로 먼저 수확하는 사람이 임자인 상황이었다. 수확량이 지나치게 많았던 관계로 김 노인은 함께 거주하는 젊은 부부와 3년 간 대면하게 지낸 이웃 남자에게도 한 봉지씩 대추를 나누어 주었다. 그날, J 역시 대추가 가득 담긴 커다란 봉지를 선물 받았다.




예순 넷의 우리 엄마는 그렇게 요양보호사가 되었다. 스무 살에 나를 낳은 엄마는 그렇게 평생 희생만 하며 살고 있다. 우리 엄마가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은 스스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라 말한다. 본인 한 몸이 움직이면,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해지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 엄마 삶의 철학이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여기저기를 쓸고 닦는다. 작은 화분을 정성을 다해 가꾼다. 안부를 묻고 마음을 살핀다. 상추를 심고, 대추를 털어낸다.


2020년 엄마는 남편을 잃었다. 나는 우리 아빠를 떠나보냈다. 그 상실의 아픔은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무 아파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밥도 하기 싫었고, 청소도 하기 싫었다. 아빠를 잃은 슬픔에 내 자식들을 살뜰하게 돌볼 여력이 생기지 않았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빠의 죽음은 나를 너무나 공허하게 만들었다.


엄마는 달랐다. 충분히 슬퍼한 이후에는, 감정이 개입할 틈을 만들지 못하게 몸을 움직였다. 귀찮다고 미루고, 슬프다고 쓰러지면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힘들어진다. 엄마는 그냥 그렇게 나를 가르친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내 몸이 움직이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에 대해 보여준다. 나도 우리 엄마처럼 잘 먹고 잘 살겠다, 다짐한다. 상추를 심고, 대추를 털어내는 마음으로 행동개시. 신발을 정리하고 화분에 물을 주어야겠다. 잘 먹고 잘 사는 일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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