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귀인열전

영양사 K

- 언제나, 여기, 너희의 자리.

by 몽B

2013년, 새로 근무하게 된 학교에서 영양사 K를 알게 되었다. 전교생 1,000명 남짓의 남고생들이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K.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체육대회 때마다 남학생들은 K가 최고라는 등의 문구를 응원카드에 적어와 K에게 감사함을 전했다고 한다. 이 학교에서 급식을 처음 먹던 날을 잊지 못한다. 정성 가득한 밥상을 건네받은 가슴 벅참. 존중받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스스로 귀한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K를 향한 학생들의 전폭적인 사랑과 감사에 대해 100% 공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공부에 지친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에 오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학교 밥이 훌륭하기 때문에 학교에 오는 것이 기대되기까지 한다는 아이들. K는 학생들에게뿐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역할에 완벽하게 충실했을 때, 그것이 미치는 파급효과가 얼마나 찬란한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을 실천하던 영양사 K. 그녀는 아침마다 직접 농산물 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구하고, 후식까지 꼼꼼하게 체크한다고 들었다. 같은 월급을 받으면서 두 배 세 배 노력하는 삶이 가능한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매일 점심 저녁 밥상으로 증명되었고, 학교에 소속된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우리 모두는 존중받았으며, 그녀의 충실한 삶에 대한 행복한 증인이 되었다.


출처 pexels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어떤 교훈이나 책보다 K는 아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나 역시, 삶에 대해서 그리고 나의 역할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이었다. 그때, 그녀의 밥을 먹었던 우리들은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였다. 그러한 생각은 미약하나마 실천으로 옮겨졌다. 2014년, 나는 그때의 아이들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영양사 K를 흉내내고 싶어했다. 존중받는 기분은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했고, 공부하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을 나누었다. 스스로에게뿐 아니라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었다. 학교 생활이 흔들릴 때마다, 영양사 K와 그 시절을 생각한다. 2020년,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면서 역시 나는 그녀를 떠올리곤 하였다.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온라인 수업이 자리를 잡았다. 2020년을 함께한 동료 선생님들에게 전우애 같은 코끝 찡한 우정이 느껴지는 것은 온라인 수업이 자리 잡기까지의 험난했던 여정 때문인 것이 틀림없다. 옳은 길인가 보다 하며 달리다가 막다른 길임을 확인하면,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아이들을 위해, 동료 교사를 위해, 자신을 위해 노력한 시간이었다.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했을 때 교사들은 당번을 정해 등교 시 학생들의 발열 여부를 체크했었다. 2015년 메르스 때는 내가 근무하던 학교 인근 내과 병원에 확진자가 다녀가는 바람에 등교가 중지되는 학생들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그래도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되는 상황은 없었다. 학생들이 없는 학교, 텅 빈 교실에서 수업을 하게 되는 일에 대해서 그 누가 상상이나했을까.


구글 클래스, 이비에스 온라인 클래스, 줌, 네이버 밴드, 네이버 폼 등. 전혀 관심 없던 영역의 기술들이 학교의 일상 속으로 훅하고 들어와 버렸다.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목이 터져라 수업을 하다 보면 머쓱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작은 목소리로 해도 될만한데, 한 반 가득 아이들이 앉아 있을 때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 톤을 유지하며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수업 시간 조용한 복도를 지나다 보면, 빈 교실마다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쨍쨍 울리고 있으니 말이다.


50분 수업은 70분 수업이 되었다. 수업 시작 종이 치기 전에 교실에 입실해서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수업 종료 종이 치면, 학생들의 과제를 체크하고 피드백을 해야 하니 50분 안에 수업이 끝이 나지 않는다. 절대 불가능할 것만 같던 온라인 수업은 가능해진 것을 넘어서서 지식 전달의 효율 면에서 장점마저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학교가 지식 전달의 기능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적어도 내 이해 속의 학교는 참된 우정을 나누고, 한 인간이 자아를 이해하고 확립해갈 수 있는 공동체이다. 그 속에는 경쟁과 갈등 또한 있어서, 학교의 부정적 면모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가 큰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학교는 아이들이 스스로 커 갈 수 있는 안전한 토대를 제공하는 양지바른 언덕이다. 학생들은 존중을 경험하고 존중을 실천하는 역량을 관계 속에서 배워나간다.






둘째와 셋째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 공연을 보러 공연장에 갔을 때, 아장아장 걷는 아기와 손을 잡은 젊은 엄마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내 결혼식에서 교복을 입고 축가를 불러주었던 제자였다. 너무 반가워 두 손을 꼭 쥐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차분한 모습으로 나이들어 있었고, 나의 잔소리나 염려와는 무관하게 한 아이의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어 있었다. 나보다 일곱 살 어린 제자들 앞에서 나는 어떤 선생님이었을까를 생각해본다. 그 당시의 나는 최선을 다해 살라는 말을 자주 했었고, 아주 권위적인 태도로 학생들을 대했다. 그때의 내 모습을 생각하니 부끄러워져 얼굴이 달아오른다.


20년 간 학교에서 내 모습은 계속해서 달라져왔다. 권위적인 태도가 도를 넘어서서 거만했던 시간도 있었다. 무조건 내 말을 따르라는 식의 거만했던 시간 뒤에는 자책하며 학교를 다녔던 시기도 있었다. 학교 가는 일이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마다 하던 시기도 있었고, 주말이 되면 학생들이 보고 싶어서 얼른 월요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다. 학교는 다양한 사건과 사람과 과제들로 나를 단련시켰고, 항상 고민하게 만들었다.


영양사 K를 만난 이후 학교에서의 사건과 사람과 과제들로 인한 고민들은 조금 단순하게 변질되었다. 여전히 괴로울 때가 있고 후회하는 일을 만들어 머리를 쥐어뜯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하지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답임을 항상 생각하게 되었다. 언제나 여기 학교가 아이들의 자리임을 잊지 않는다.





영양사 K가 전해 준 열정은 아이들을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다. 2014년 1학년 담임이었던 나는 아이들과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열일곱 살의 고민과 갈등과 우정은 시가 되거나 그림이 되거나 잔잔한 에세이가 되었다. 일 년간의 성장이 학급문집으로 엮이게 되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 못지않게 나 역시 스스로를 살피고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지금 나는 2학년 담임이다. 지금 우리 반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못내 마음이 불편하다. 열여덟 살의 우리 반 녀석들도 틀림없이 나름의 고민과 갈등과 우정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카카오톡 단톡 방에서, 네이버 밴드에서, 줌이나 구글 클래스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친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서로의 눈빛과 활짝 웃는 미소와 우정의 에너지가 온라인이라는 필터를 거쳐 뻗어나간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배워나가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다양한 관계를 통한 배움으로 서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내 안의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 있게 된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의 교실이나 체육대회의 운동장에서의 설렘과 우정과 열정에 대해 경험하지 못하는 지금의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격주로 등교하는 아이들이 하나같이 마스크를 쓰고 긴장하며 앉아있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아 오른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아이들은 잘 자랄 것이다. 영양사 K와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어른들이 생각 이상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런 어른들로부터 영감을 전해 받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이 또래들에게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실이 꽉 차 있든, 컴퓨터 안으로 들어가든 학교는 양지바른 언덕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글은 변명이나 다짐과 같은 글이다. 나는 늘 K처럼 살지는 못했다. 온라인 수업이 정착되기까지 많은 시간 궁시렁거리고 투덜거렸던 내가 있다. 정착되고 나서도,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든지 접속이 잘 되지 않는 학생이 있으면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내가 있다. 지금도 미뤄둔 일은 셀 수 없이 쌓여 있고, 하기 싫은 마음은 그것보다 더 높고 단단하게 쌓여 있다. 우리 반 아이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미안함에 자꾸만 손톱을 뜯게 되고, 다가오는 일정을 생각하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현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방향을 잃지만 않으면 되지 않을까.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아가는 것은 감동적인 일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을 존중하는 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양사 K가 자신의 역할을 잘 살았던 것처럼, 나는 잘 먹고 잘 살 것이다. 당장 훌훌 털고 일어나, 수행평가를 정리하고 학습지를 새로 만들어야겠다. 영양사 K처럼, 어디 한 번 잘 살아 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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