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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십자가를 마주하는 일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by 몽B

지금 내 책상 주변은 엉망진창입니다. 노트북 두 대와 태블릿, 핸드폰이 풀 가동되고 있습니다. 기말고사 출제 기간이라 시험 문제를 열심히 내고 있는 일요일입니다. 다음 주는 수능을 치러야 하는 일도 있고, 학교가 매우 바쁩니다. 다음 주에 해야 할 일을 주말에 준비해 두어야, 바쁨 속에서 실수가 없습니다.


해야만 하는 일이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요일 오후가 주는 나른함은 집중력을 흐리게 만듭니다. 한 시간 만에 할 일을 오늘 오전 내도록 주물럭 거리고 있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창문 너머 보이는 가을 하늘은 쾌청하고, 내 머릿속은 엉망입니다. 자꾸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게 되고, 짧은 유튜브 영상이나 인스타그램에 한 눈을 팔게 됩니다. 한 눈을 팔다가 우연히 읽게 된 글 때문에 브런치 글쓰기에 접속해 보았습니다. 지금의 감동을 글로 남겨두고 싶기 때문입니다.


모래내 성당 이용현 베드로 신부님이 쓰신 글입니다. 쉴 휴(休) 자를 설명하신 글이었습니다. 인간이 나무에 기대어 있는 형상의 글자인데, 신부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그리스도로 보이신다는 글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쉼이란 기도하는 모습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고통이 찾아오면 그 뜻을 찾고 십자가 옆에 머물지 않으며, 친구나 인터넷, 잠을 쉼으로 여기고 십자가를 피하려 한다고 설명하십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마태복음 16장 24절은 예전부터 읽고 또 알고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이 말씀이 눈물 나도록 감동적입니다. 신부님 글을 좀 더 옮겨 보겠습니다.


<우리의 머릿속에 고통은 나쁜 것이고, 행복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그러기에 고통이 찾아오면 그 안에서 주님의 뜻을 찾고 십자가 옆에 머물지 않고 십자가를 피하려 한다. 주님께서는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참 쉼을 찾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냉담 중인 가톨릭 신자입니다. 내가 명리학을 공부한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반종교적 행위인 것만 같이 여겨졌습니다. 명리 공부가 혹세무민 하는 허무맹랑함이 아니며, 미신의 영역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해가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에 나 역시 그런 기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인가 봅니다.


창광 김성태 선생님과 만나 뵈었을 때, 월지를 이해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셨습니다. 나라는 일간을 버리고 월지를 따르는 삶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때 선생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신부님의 글을 읽고 나 역시 눈물이 흐릅니다. 월지라는 환경,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 우주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모든 진리 역시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월지에 맞게 살기 위한 기도는 내가 짊어진 십자가를 마주하는 일입니다. 아직까지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글을 마무리하고 잠시 기도를 하며 나의 십자가와 마주해야겠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커피를 한 잔 내려야겠습니다. 일단은 코 앞에 닥친 십자가를 짊어지고 열심히 시험문제를 내야겠습니다. 청소를 하고,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저녁을 준비해야겠습니다. 태블릿과 핸드폰을 저 멀리 두고, 이제 브런치 글쓰기에서도 로그아웃 하겠습니다. 아이고. 갑자기 마음이 급해집니다. 이 글 읽으시는 모든 분, 평화를 빕니다. 평화를 빕니다.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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