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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말았거나, 아침은온다.

- 불안과 마주하기

by 몽B



새벽 5시. 빗소리에 잠이 깼다. 아침잠이 많은 내게 5시는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다. 하지만 요즘은 한 번 잠에서 깨면 도통 다시 잠드는 일이 쉽지 않다. 비를 뿌리는 먹구름의 틈새로 하늘이 보인다. 하늘이 온통 비구름에 가려있어도 아침이 보인다. 구멍 난 것 마냥 비를 뿌려대도 밤은 밤이고 아침은 아침이다.


아이가 아팠던 이후로 지난 일 년은 내게 있어 가혹하고 혹독한 시간이었다. 불면의 날들과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휩싸였던 시간들. 나는 불안을 조절하는 약을 자기 전에 복용하기 시작하였다. 리보트릴 한 알이었다. 수면에 다소 도움이 되기는 하였으나 내 불안에 이 약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되지 않았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약을 복용하였다.


사흘 전. 처방받아온 약이 떨어졌다. 폭염을 뚫고 병원에 가는 일도 귀찮고, 나 스스로를 돌이켜 보았을 때 불안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믿었다. 나는 너무 불안했기 때문에 아이에 관한 일 말고,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었다. 명리 공부에 더욱 매진하였으며 유튜브에 강의를 만들어 올리며 내 공부를 공유하였다. 그 과정에서 내 불안은 아주 조금씩 옅어졌고, 내 삶의 주도권을 단단하게 부여잡고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불안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의사와 상의 없이 과감하게 약을 중단해 버렸다. 이틀 정도 약을 중단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어제 아침. 눈을 떴을 때 다른 세상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가 고통스러워하던 시간들이 다시 온몸으로 기억되었으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심장이 마음대로 뛰기 시작했다. 초조함으로 신체 내부가 꽉 채워지는 느낌, 장기들이 심장을 압박하는 듯한 느낌. 미칠 것 같은 불안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이들 앞에서는 애써 태연한 척하였지만,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침대에 누워 숨을 가다듬었다.


명리 유튜브 강의 중 나는 명리 공부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었다. 내 마음이 평화로웠기에 할 수 있었던 말인 것 같다. 불안에 휩싸이게 되자 나와 우리 가족들의 팔자 속에서 다가오는 운의 흐름들은 망상이 되어 불안을 무한대로 부풀려 나갔다. 그것이 30년 40년 후에 펼쳐질 일일지라도 말이다. 온몸이 불안으로 빵빵하게 차올라와서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게는 세 아이가 있다. 움직일 수밖에 없고, 웃을 수밖에 없다. 번뜩 정신이 들어 몇 가지 집안일을 하였고 스스로를 계속 관찰하게 되었다. 그리고, 병원을 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갑작스럽게 단약 하는 것에는 부작용이 따르므로, 서서히 용량을 줄여가며 단약 할 것을 의사는 권유하였다. 기존에 먹던 약의 절반 용량을 처방받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새끼손톱 삼분의 일 크기도 안 되는 약을 먹었다. 손끝까지 저릿저릿하게 만들던 초조함이 약을 복용하고 30분이 채 되기 전에 가라앉았다.


초조와 불안이 가라앉자 또 혼란스러워졌다. 그동안 잘 버텨왔던 나는 내 본연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이 이렇게 작은 약물로 조정 가능한 것인가. 용기 내서 하루하루를 살아온 나는 나였을까. 약의 도움 없이도 나는 지난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을까. 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약물에 의존해 평화를 찾은 나는 나인가. 이 평화는 내가 주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화학작용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화학작용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이 평화는 거짓인가.


이른 아침에 비 오는 창 밖을 내다본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밤은 밤이고, 아침은 아침이다. 어김없이 지구는 돌고, 계절은 바뀐다. 이것이 명리(命理)다.


지금 나는 힘든 시간을 살고 있다. 불안한 것이 당연하다. 불안은 불안이다. 그것을 화학작용으로 덮어버리든 딴 곳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든, 내 안에 또아리를 튼 불안은 없어지지 않는다.


천천히 내 불안을 들여다보아야겠다.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명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여름은 더워야 제 맛이고,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다. 여름이 서늘하면, 열매 맺는 일에 어려움이 따른다. 겨울이 따뜻하면 병충해가 창궐하게 된다. 인생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반복된다. 아플 때는 아파야 하고, 그 아픔을 발판으로 또 성장해 나가면 된다. 아니, 성장하지 않아도 된다. 불안하면 그냥 불안해도 되고, 약을 먹어도 된다. 어쨌거나 말았거나 아침은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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