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즐겁다
공자는 천명(天命)을 알지 못하면 군자(君子)가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달리 이해하자면, 천명(天命)이라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그 무엇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공자가 말하는 천명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하늘이 품부 한 명령일 텐데, 이것은 그냥 추상적이고 막연한 그 무엇일까요?
공자는 주나라의 주공을 따랐던 인물입니다. 주나라는 그 이전 왕조인 은나라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은나라는 그 이전 왕조인 하나라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사람의 관점과 이해는 어느 날 갑자기 발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가 언급하는 천명(天命) 역시 이어지고 전해진 개념일 것입니다.
은나라 유적인 갑골문자에는 60 갑자가 쓰여 있습니다. 『상서』의 홍범구주에는 오행을 목(木)은 곡직(曲直), 화(火)는 염상(炎上), 토(土)는 가색(稼穡), 금(金)은 종혁(從革), 수(水)는 윤하(潤下)로 설명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10개 천간의 속성과 특성 순환의 논리를 함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음양이나 오행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더라도, 60 갑자를 사용하던 은나라에서는 이미 4계절을 비롯한 순환의 법칙을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경』에는 '하늘이 만민을 낳으시니 모든 사물에 법칙이 있게 하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서』에는 '하늘의 역수(曆數)가 너에게 있어 너는 마침내 제위에 오른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천하의 대권을 넘겨주며 한 이야기입니다. 역수(曆數)의 해석 역시 추상적으로 접근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역(曆)은 60 갑자를 의미로 나타낼 수 있는 하늘의 이치 즉 천리(天理) 혹은 하늘의 길 즉 (乾道)이지 않을까요?
천명(天命)은 천리(天理)의 한 지점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않을까요? 동양의 사상가들이 곳곳에서 이야기하는 천리, 건도, 천명을 60 갑자로 표현하는 년월일시로 이해하는 것은 어리석고 맹목적인 시선일까요? 동양철학을 깊이 전공하신 분들이나 명리학을 혐오하는 이들이 들으면, 대노할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번의 인터뷰가 그랬지만, 류래웅 선생님과의 인터뷰 역시 많이 긴장되었습니다. 마치 도인 같은 이미지로 느껴지시는 분이시라 암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것도 아니고, 사전 대화가 길었던 것도 아니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는 선생님의 울산댁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분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인터뷰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까지, 가벼운 인사를 제외하고 류래웅 선생님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생님의 침묵이 내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더운 날씨 탓인지, 긴장 탓인지 등에 땀이 흘렀습니다.
인터뷰가 시작되어 선생님 소개를 마치고, 선생님께서 말할 순서가 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목소리를 가다듬으시고, “자. 그러면... 하루한장명리 유튜브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명리학의 한국 최고 방송을 운영하시는 송민정 선생님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궁금하신 것 물어보시면, 아는 데 한해 성실하게 응답을 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씀 하시며 활짝 웃으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침묵으로 포장되어 더욱 깜짝 놀랐던 선물과도 같은 멘트였습니다. 준비하신 말씀을 하시며 웃으시는 선생님의 장난스러운 표정에 긴장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았습니다.
진정한 자유를 삶으로 증명해주신 선생님께서 읽어주신 ‘낙천’이라는 시는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운명이 즐겁다.’ 이 시는 하늘과 그 가운데 존재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명리학을 비롯한 동양의 공부들은 유일무이한 하나의 존재인 인간을 빛나게 만듭니다.
천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운명에 굴복당하는 일이 아닙니다.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또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의 근원입니다. ‘운명이 즐겁다.’라는 말씀은 나에 대한 위로이고, 서로에 대한 위로입니다. 삶이며 사랑입니다. 천명(天命)을 아는 것, 운명이 즐겁다는 것을 아는 것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마음의 시작점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