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 고독과 마주하며 뚜벅뚜벅
시대적 배경과 공간적 제약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일까를 고민한 성인들의 이야기가 종교이며 철학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행복'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나 성인이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삶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흔들림을 견뎌내라는 응원의 메시지일 수 있습니다. 개개인의 상황과 처지, 역량이 상이한데 어떻게 누구나 성인이나 부처가 된다는 말일까요. 하지만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면, 누구나 성인이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매우 일리 있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는 말로 접근하면 '부처'나 '성인'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고압적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다만, 행복의 개념을 사사로운 개인의 욕망으로 확정 해서는 안됩니다. 관계 속에서의 행복, 사회 속에서의 행복, 자연 속에서의 행복, 우주 만물 순환 속에서의 행복을 포괄하는 단어일 때 이야기를 계속 전개해 나갈 수 있습니다. 생로병사 역시 그러합니다. 생로병사는 인간 개체가 반드시 혼자 감내해야 하는 고독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관계, 사회, 자연, 우주 속에서 생로병사를 바라보면 이것은 하나의 순환이고 자연스러움인 것입니다.
생로병사의 과정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이며, 나라는 실체와 함께 공존합니다. 생로병사의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이 그것에 대한 외면이나 회피여서는 안 됩니다. 성인이나 부처의 자세로 생로병사를 대하면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성인이나 부처의 자세로 생로병사를 대한다는 것이 고통에의 직면을 거부하는 것이 가능한 특권층이 된다는 의미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 어떤 누구도 생로 병사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려움에 직면하면 하늘을 원망하며 좌절하거나, 신에게 의탁하며 상황을 외면하려 합니다. 원망과 좌절, 의탁하는 삶은 행복과 거리가 멉니다. 생로병사는 자연의 과정이며, 고통은 우리 삶과 함께 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하면 죽음이 삶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생로병사를 수행하는 인간의 고독은 자연이며 순환임을 알게 됩니다. 생노병사를 피할 수 없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고독합니다. 그 고독 속에서 자신을 마주해야 하고, 고독한 타인들과 관계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 내 사주팔자, 인연과업, 지천명. 이 모든 것이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닐까요? 성인들이 하나의 진리를 설명하여 함께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에서 다양한 개념들을 만들어내고 논리를 설파한 것은 아닐까요. 나 자신과의 소통, 가족과의 소통, 사회와의 소통, 윗 세대와의 소통, 미래 세대와의 소통, 시간과 공간으로 드러나는 자연과의 소통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필연적 고독을 마주하며 뚜벅뚜벅 나아가는 발걸음 걸음이 행복의 도(道) 안에 있기를 바래봅니다.
민영현 선생님은 말씀을 매우 유쾌하고 재미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야말로 소통과 행복이라는 키워드와 어울리시는 분이십니다. 원서를 번역하시고 대학 강단에 오래 계셨던 분이라 매우 어려운 분이실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선생님의 유쾌함과 추진력이 저를 움직이게 하셨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항상 머릿속으로는 재미있는 구상을 많이 해보지만, 워킹맘이라는 현실과 내향적인 성향으로 인하여 무언가를 실천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선생님을 만나 인터뷰하는 것 역시 주저하는 마음이 많았습니다. 인터뷰를 기약하기는 했지만, 장비며 편집이며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어떻게 그걸 해나갈지 막막했습니다.
그런데 민영현 선생님과 인터뷰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선생님은 날짜부터 잡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과의 인터뷰 날짜가 잡히고 나서야 나는 장비를 구매하고 편집을 배웠습니다. 선생님은 내 머릿속의 구상을 용기 내어 실천할 수 있도록 물길을 내어주신 분입니다.
동양철학의 전반과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명리학을 공부하고 계시는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며 이해와 사고의 폭이 확장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학문 같지도 않은 학문을 한다는 멸시 속에서 대학 강단에 오랜 세월 계셨다는 말씀에서는 울컥한 마음이 생겨나기도 하였습니다.
명리학을 학문적으로 더 깊게 연구하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숱한 상담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역량을 키워가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강단과 강호’라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강단의 영역에 있든, 강호의 영역에 있든 명리학을 사랑하는 마음은 일관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과 그러한 이야기를 나누며, 강단과 강호가 상호 소통하며 더 논리적이고, 더 대중적인 명리로 발전해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명리학 역시 다양하고 소통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부가 되면 좋겠습니다. 학문은 이론에 그치지 않고 현실과 맞물려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을 깊이 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