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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B Oct 26. 2024

변화를 공부한다는 것

중원 민영현 선생님


         

학문 같지 않은 학문을 한다는 멸시  

        

민영현 선생님과의 인연은 <삼명통회>라는 책을 통하여 시작되었습니다. <삼명통회>는 명리와 관련하여 전해지던 수많은 자료를 중국 청대에 국가 주도로 편찬한 관찬 도서입니다. 선생님께서 10년 동안 붙들고 완역하신 명리 대백과로 상, 하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엄청난 분량의 책이라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명색이 명리를 공부하는 사람인데 이 책을 구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상하권을 모두 구매하였습니다.

    

엄청난 각오로 책을 붙들고 읽기 시작하였는데, 축(丑)이라는 한자가 추(醜)로 잘못 표기된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쌀밥에 돌은 내가 씹고, 국에 들어간 머리카락도 내가 발견한다고 엄마는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무 예민해서 그냥 넘어갈 것도 다 보고 지적한다며 못마땅해하시곤 합니다. 돌이 씹히고, 머리카락이 보이는데 어쩌겠습니까. 책을 읽기 시작하면 오타나 비문이 눈에 쏙쏙 들어오는데 어쩌겠습니까. 출간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책이지만 알려드려서 다음 인쇄 때는 수정하셨으면 하는 마음에 연락을 드려야겠다 결심했습니다. 출판사 연락처를 찾으려 책의 앞뒷면을 열어보니 저자이신 선생님의 연락처가 떡하니 적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문자로 연락을 드리고 오타와 책,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책의 서문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철학 박사로 여러 술수 관련 연구 논문들을 발표하면서 학문도 아닌 학문을 한다는 멸시 속에 대학 사회의 삶을 견디고 있다.’ 사실 명리학을 제대로 공부하기 전까지는 나 역시도 이 공부가 학문의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명리학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학문의 영역 안에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학문적 외로움이 ‘멸시’라는 단어에서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이 공부를 제대로 접하기 전까지는 명리학은 미신의 영역 그 언저리에 있는 듯 보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부산대, 부경대, 경성대, 동의대 등 대학 강단에서 오랜 세월 동양철학을 강의해 오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이 공부를 놓지 않으셨을지, 또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어떤 다짐으로 이 책을 완역하셨을지를 생각하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 전해졌습니다. ‘저물어 가는 인생의 한 자락에서 실제로 인생을 도울 수 있는 학문은 저 너머 상아탑의 고고한 이론이 아님을 깨닫는다.’ 명리학을 아끼시는 선생님 마음이 전해져서 꼭 한 번 뵙고 싶어 졌습니다.    

 

한 번 뵙고 책에 서명도 받고 싶고, 공부에 관한 조언도 듣고 싶다고 연락드려 말씀드렸더니 연구실로 초대를 해주셨습니다. 벽돌 이상으로 무거운 두 권의 책을 들고 수영만을 가로지르는 광안대교를 지나 부산 남구 용호동에 있는 선생님의 연구실로 향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서울 여행 이전이니, 선생님들을 인터뷰하는 일에 대하여 생각조차 하지 못할 때입니다.     


선생님 연구실은 규모가 상당했는데, 많은 책으로 작은 도서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삼명통회> 책을 완역하시기까지의 우여곡절과 부산대에서의 명리 강의에 대한 말씀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대학 강단에서 겪으신 어려움과 명리 공부의 매력에 대해서도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런저런 책들을 선물로 주셔서, 서명해 주신 삼명통회 두 권과 선물 받은 책들로 두 손이 무거워져서 선생님과 헤어졌습니다.     


2022년 7월, 서울 여행을 통해 여러 선생님과 인터뷰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인터뷰를 진짜로 하게 되면, 민영현 선생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뷰 요청을 드렸고,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심지어, 마음을 먹었으면 실천에 옮겨야 한다며 빨리 하자셨고, 인터뷰 날짜를 정해버리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인터뷰 날짜가 정해지고 나서야 촬영 장비를 구매했습니다. 혼자 간단히 작업해야 한다는 생각에 화소가 가장 높은 노트북과 무선마이크를 구매했습니다. 모바일용과 PC용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구매하고 간단하게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명리 인터뷰에 대한 채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번갯불에 콩은 이런 속도로 볶나 봅니다.    

 

학문 같지도 않은 학문을 한다는 멸시. 그러한 시련 속에서도 이어오셨던 이 공부를 생각하며, 명리학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극복하는 데 조금이나마 노력하고 싶다는 나름의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짐을 싸고 풀며 긴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번갯불에 콩 볶듯 말입니다.     


          

동양철학과 명리학      


    

(제이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부경대, 동의대, 부산대 등 대학 강단에서 동양철학 강의를 해오셨습니다. 대구한의대학에 현재 출강하고 계시고, 동명대학에서 강의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올해 2022년 4월, <삼명통회>라는 엄청난 책을 출간하셨습니다. 3년 전에 1차 마무리하셨고, 교열 교정하는 것만도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은 이 책 덕분이었습니다. 책의 서문에서 ‘학문도 아닌 학문을 한다는 멸시 속에 대학사회의 삶을 견디고 있다. 하지만 저물어 가는 인생의 한 자락에서 실제로 인생을 도울 수 있는 학문은 저 너머 상아탑의 고고한 이론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이 문장이 상당히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이 공부에 대한 외로움에 대해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 이 학문은 외로운 공부인가요?      


(민영현 선생님) 이 학문은 사람 속에 있습니다. 학문이란 무엇인가 이런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바깥에서는 사주팔자 명리를 미신처럼 여기고 폄훼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반적인 학문을 하는 학자분들 사이에서도 그런 경향은 있습니다. 대학에서 대학교수들도 그렇습니다. 자기 전공의 학문이나 자기 영역의 학문은 굉장히 중요하고 좋은 것으로 이야기하지만, 그 경계 밖의 것들은 조금 낮춰보는 경향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동양철학 내에서 명리학이 차지하는 영역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철학적 이론보다도 훨씬 더 대중들에게 친숙하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 이해되고 있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공학을 전공한 과학의 입장에서 명리학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제가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철학과 내에서도 서양철학이나 사회철학 전공자들은 동양철학을 이상한 학문인 것으로 폄훼하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의 외로움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제이선생님) 사람들은 자신만의 경계를 분명하게 하고 싶어 하는 모양입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선생님께서는 이 공부가 사람 속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대학의 테두리 안에서 학문으로 명리를 주로 접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선생님, 실관을 많이 하셔서 사주팔자에 대한 해석이 아주 능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의 깊이나 내공은 상당하십니다. 인정된 학위가 없더라도 20년, 30년, 40년 상담을 통한 내공 역시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규교육 과정뿐 아니라 재야에 자기 삶을 다 녹여내어 공부를 이루어가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민영현 선생님) 당연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학벌사회이고 학위와 같은 공식적인 결과물을 좋아하니 계속해서 교수가 어떻고 학위가 어떻고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배우는 과정이고 익혀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굳이 정규 과정을 밟지 않았다 하더라도 평생을 통해 연구하시고 추적하셨다면 그 성취나 학문적 깊이에 대해 당연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이선생님) 제가 이제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나러 다닐 계획입니다. 명리학의 매력에 이끌려 다양하게 그 이치를 탐구한 선생님들의 생각과 삶이 궁금합니다. 선생님의 책에 ‘결정이 된 것과 결정이 되지 않은 것 사이에서 인간은 살아간다. 예측은 불확실한데 미래는 실재한다. 불확실함의 혼돈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라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문장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공부인 것 같습니다. 이 명리학이라는 것이.     


(민영현 선생님) 명리학을 철학적 관점에서 고민해 보면, 인간이 과연 무엇을 바라고 원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철학적 논문이나 저서로 설명한다면 또 어떨 것인가. 저에게는 전공을 삼아 공부했던 동양철학이 있으니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명리학에 개입되는 동양적 세계관이나 동양적 인간관, 동양적 인생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측하는 방식이 어떠한 세계관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잘 이해를 못 합니다. 동양적 학문성은 기(氣)의 세계관에서 출발합니다. 우주의 모든 것은 기(氣)에 의해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생 상극하며 일어나고 전개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인체, 정신, 삶의 주위 환경들도 모두 기의 작용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이해할 것인가. 그 방식의 문제가 남는 것입니다.      


(제이선생님) 인문학을 사람의 무늬를 알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명리학만큼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해가 확연하게 와닿게 하는 공부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민영현 선생님) 우리는 명리학을 통해 세상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윤리 도덕적 측면들도 보게 되고, 세상에 대한 일련의 대응으로서의 철학적 관점을 형성해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이선생님) 선생님께서는 ‘관찰과 예측에 따른 새로운 학문 정립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이야기하시며, 과학과 역학의 만남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저는 김상욱 교수님의 <떨림과 울림>이라는 물리 관련 책을 읽고 명리학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에 관심이 많은데요, 짧게나마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민영현 선생님) 양자 역학과 양자 물리학과 같은 과학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과학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미래 예측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로켓을 발사한다고 할 때도, 데이터를 추론하고 수학적 모델링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과학에서도 백 퍼센트 정확한 그 무엇은 없습니다. 양자 물리학의 ‘끈 이론’이라는 것은 검증하기가 굉장히 힘든 이론입니다. 하지만 끈 이론과 관련된 이론은 오늘날 공상 과학 영화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평행우주, 다중우주 등 온갖 기기묘묘한 것들이 모두 가능하다는 식으로 설명합니다.      

(제이 선생님) 네네. ‘인터스텔라’와 같은 영화가 그렇습니다.  

    

(민영현 선생님) 저는 기(氣)의 세계를 항상 생각합니다. 물리학자 파인만은 세상에 양자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양자라는 것은 동양에서 이야기하는 기(氣)에 훨씬 더 가깝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기(氣)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러한 측면에서 양자를 이해해 보려는 생각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3, 4년 전부터 한국연구재단에 <동양의 기학과 서구 양자론의 개념적 상동상이>라는 주제로 지속적으로 연구 지원요청을 해왔습니다. 몇 번의 지원도 받아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예측과 예언은 다른 것입니다. 예언이라는 것은 밑도 끝도 없이 그냥 하는 말입니다. 사주명리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예언이 아니라 예측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데이터가 추출되는 과정의 정당성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더 명리학의 세계관과 역학적 구조에 대해 유의 깊게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양자가 기(氣)이고 기(氣)가 양자라고 말하는 것까지는 사실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굉장한 상호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사주팔자로 다른 사람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氣)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합니다. 제이 선생님도 기(氣)입니다. 나도 기(氣)입니다. 그리고 바깥의 외부도 기(氣)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기운이 따로 또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氣)와 저것이 가지고 있는 기(氣)가 상호작용을 일으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상호작용의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명리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단칠정 이기론과 같은 세계관이 그렇게 틀리지 않다는 생각까지 이어집니다.      


(제이선생님) 명리학은 기(氣)를 읽어가는 공부인 것 같습니다. 단순한 암기로 다른 사람의 삶을 호도하는 공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명리학을 정규 교육 과정을 거쳐 배우는 것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민영현선생님) 정규 교육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지요. 대학에서 공식적으로 명리학은 학문이 아니라고 폄훼한 부분 때문에 여전히 진입하고 발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관상감과 같은 정규교육기관이 있었습니다. 교육은 권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동양에서 해왔던 이런 것들이 서구 학문을 받아들이면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학문은 가능하다면 모든 것을 오픈하고, 가능하다면 더 넓고 깊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접근이 가능하도록 제도적으로 정비를 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지방 사립대의 경우, 상황들이 워낙 어려운데 오히려 동양문화학과와 같은 학문은 대중의 수요가 있습니다. 꼭 술업을 하거나 하지 않더라도, 이 세계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요구가 있는 것입니다.      


(제이 선생님) 앞서도 이야기했다시피, 재야의 고수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좋은 선생님들이 곳곳에 숨어 계십니다. 이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좋은 선생님을 알아보기도 힘들뿐더러, 만날 기회가 잘 없기도 합니다. 누가 좋은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잘 배워가면 괜찮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정규 과정으로 공부해 나가는 것이 위험도를 낮추는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민영현 선생님) 제가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하다 보니, 제 개인적인 입장일 수도 있습니다만. 동양철학 즉 유교, 불교, 도교와 같은 베이스를 갖춘 뒤에 명리학을 접하면 속도도 빨라질 것이고 적용도 역시 높아질 것입니다. 나아가 세계관이나 인생관에 관하여 이해하는 폭이 넓어질 것 같습니다. 학생부군신위. 공부하려고 세상에 태어났고, 공부하다가 떠나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삼명통회명리 대백과   


            

(제이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한글로 된 것을 읽기도 힘든 방대한 분량의 <삼명통회> 원서를 모두 번역해 주셨습니다. 상권과 하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삼명통회는 500년이 다 되어가는 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국가에서 편찬한 관찬의 책이라고 얘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판매량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민영현 선생님) (한숨) 아, 참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책 가격이 너무 비싼 건지, 출판사로부터 좋은 소식은 못 듣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제가 받아온 책들은 아는 사람들에게 강제로 구매를 권하는 중입니다. 어떤 경우는 그냥 줘도 너무 무거워서 못 가져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어찌 되었건, 제 개인적으로는 중요한 일을 하나 한 것이니 만족합니다. 명리학의 5대 명서라고 하는 책들이 이렇게 저렇게 번역이 많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삼명통회>는 번역본이 제대로 된 것이 없었습니다. 저로서는 단 한 글자도 빼지 않고 번역해 보겠다는, 이상한 종류의 사명감을 가지고 진행한 일입니다. 아마 빨리 번역하시는 분들은 저보다 훨씬 짧게 하실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이 선생님) 제가 서문에서 읽기를 ‘금자탑과도 같은 자료이다. 이 자료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나름의 절박한 심정으로 이것을 번역하였다.’ 이렇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삼명통회>는 명리 대백과라고 이야기합니다. 일종의 바이블이라 봐도 될까요?     


(민영현 선생님) 이게 워낙 볼륨이 크다 보니. 청나라 만민영 선생이 당대에 굴러다니는 거의 모든 자료를 엮었다고 봅니다. 이런 작업은 관찬이라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제이 선생님) 이 두꺼운 책을 읽는 방법이 있을까요? 인내하는 것 이외에 어떤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민영현 선생님) 글쎄요. <삼명통회>는 백과사전식으로 진행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순서대로 완독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차를 보시고, 궁금한 것과 관련된 내용들을 찾아가며 공부하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만약 실전을 빨리 습득하고 싶다면 월의 일간, 일의 시간에 대한 예제 형태의 설명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찾아보시면서 확인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필요한 것들을 그때그때 확인하며 읽어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떤 학문이든지 그 핵심은 개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이나 뜻에 대한 설명과 이해를 공부해야 합니다.     


(제이 선생님) 선생님. 명리학의 5대 명서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민영현 선생님) 시기적으로 <연해자평>, <삼명통회>, <적천수>, <궁통보감>, <자평진전>을 5대 명서로 많이 봅니다. <삼명통회>를 빼고 <명리약언>을 넣기도 합니다. <궁통보감>은 조후를 중심으로 한다든지, <적천수>는 좀 더 깊이 있는 원리를 다룬다든지, <삼명통회>는 다양한 내용을 다룬다든지, <자평진전>은 격국 용신의 논리를 다룬다든지. 책마다 각각의 특성이 있지요.     


(제이 선생님) 선생님. 제가 유튜브에서 <자평진전> 강의를 시작했는데요, 이 책이 초보들이 공부를 다져나갈 때 괜찮다고 보실까요?     


(민영현 선생님) <연해자평>이 송대라면, <자평진전>은 청대의 책입니다. 어느 한 권의 책을 보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여러 책을 보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초보자들 배울 때는 <자평진전>이 간결하게 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이 선생님) 요즘에는 기초부터 다져가는 현대 명리서가 많습니다. 이런 책들을 통해서도 기본적인 명리 용어들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고전을 공부해야 할까요?     


(민영현 선생님) 공부의 측면에서는... (웃음) 공부니까, 보시는 것이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단행본으로도 충분히 간지 정도는 배울 수 있겠지요. 하지만 조금 더 큰 틀에서 보면 좋겠습니다. 명리 고전을 넘어서서 동양철학의 전체 토대에서 공부해 나가시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제이 선생님)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서문의 내용 또 보자면,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고자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인지 모른다. 세계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한 시간적인 미래의 방향과 삶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말 공감합니다. 이 공부가 한 번 손을 대면 정말 손을 떼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공부가 너무 재미있습니다. 이 공부는 인간에 관한 공부이며 관계에 관한 공부임과 동시에 네트워크에 관한 공부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도 이 공부가 즐거우신가요?     


(민영현 선생님) 내가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경우 판단이 안 서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인간 실존적 상황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틀리지 않고 결단 내려야 하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인간은 지적 생명체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자기 생명을 이어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명리 공부는 최선의 공부라 생각합니다. 길흉은 서로 뒤섞입니다. 인생의 과정 중에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상당히 좋은 공부가 될 수 있습니다.      


(제이 선생님) 지금 말씀 너무 와닿습니다. 제가 이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언제 좋지, 언제 좋아질까 이런 시각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좋으면 나쁜 것이 있고 나쁘면 또 좋은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늘 반복됩니다. 그러니 어떠한 상황과 마주하더라도 지금은 그러한 ‘때’ 임을 이해하는 것은 삶의 큰 무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민영현 선생님) 학문은 이론에서 그치지 않고 현실과 맞물려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적으로도 유용한 우리의 공부는 참 좋은 공부입니다.      


(제이 선생님) 네. 그러면 선생님. 아무리 공부해도 사주가 안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주를 보면 깜깜한 사람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십시오.     


(민영현 선생님) 수학 방정식의 공식은 외우는데, 문제를 풀려면 적용이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수학이 이야기하는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식만 외우면 문제가 어렵습니다. 충이 있어서 이러하다. 살이 있어서 이러하다. 이러한 단편적 이해는 한계가 있습니다. 공식처럼 외운 명리 공부로 사주를 푸는 것은 이 공부의 핵심을 빗나간 것입니다.      


우리가 다루는 명리는 변화의 법칙입니다.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합니다. 글자 자체들의 상관관계에서 작용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차분하게 이론적 구조를 살펴야 합니다. 명리는 윤리적 부분을 가집니다. 내가 글자를 보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를 판단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 경험상으로는 계단 올라가듯이 터득되는 것 같습니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공부를 꾸준히 하시다 보면 어느 순간 열리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부하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 세상에는 언제든지 도움을 주실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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