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가 같으면 같은 삶을 사는가? 사주명리학을 불신과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이다. 나 역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이런 질문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름 확고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사주가 같아도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단연코 없다. 이 말은 사주명리학의 오류를 인정함도 아니고, 한계를 고백함도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주가 같아도 삶이 다르다는 것은 명리를 공부함에 있어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년주에 의해 월주가 결정되고, 일주에 의해 시주가 결정된다. 년주에 주어질 간지는 60갑자 중 하나이다. 1년은 12개월이므로 하나의 년주에 12개의 월주가 배치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일주에 주어질 간지는 60갑자 중 하나이다. 하지만 하루 24시간을 12개의 지지로 표현하므로 하나의 일주에 12개의 시주가 배치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주의 모든 경우의 수는 60×12×60×12로 518,400가지가 된다. 518,400분의 1의 확률로 사주가 같은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들의 삶은 동일할까?
사주가 같아도 삶이 다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사주팔자의 글자들이 어디서 기원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주는 년주, 월주, 일주, 시주로 구성되어 있다. 년주는 목성의 공전과 관련이 있고, 월주는 지구의 공전과 관련이 있다. 일주는 달의 공전과 관련이 있고, 시주는 지구의 자전과 관련이 있다. 시지의 에너지 변화는 확인이 가능하다. 낮은 밝고 밤은 어둡다. 월지의 에너지 변화 또한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영역이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영역에 있지만 목성이 놓인 위치와 달의 위치에 따라 년지 및 일지가 가지는 에너지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각각의 글자들은 특정 에너지를 함축하고 있다.
년월일시는 아무 의미 없는 글자의 나열처럼 보이나 우주와 지구가 정확하게 그 시공간에 놓인 시점을 기록해 놓은 에너지의 지도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주가 같은 사람은 존재할 수 있지만 그 에너지 고유의 진동수까지 동일한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시간과 공간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지점, 그 지점에는 결코 중복된 인간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인간은 지구의 위치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좌표를 사용한다. 위도와 경도가 그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인 위도와 경도가 교차하는 수많은 지점들로 지구는 뒤덮여 면을 이룬다. 어떤 인간도 위도와 경도가 일치하는 어느 지점에서 동일한 시간에 탄생할 수 없다. 동경시를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출생 시를 30분 뒤로 계산하는 것과 몇몇 만세력 어플에서 태어난 지역까지 입력하게 하여 시간을 다시 세분하는 것을 보면 여덟 개의 글자 하나하나가 가지는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지구는 1시간에 15도씩 자전하는데, 명리에서는 2시간 단위로 출생 시를 표시한다. 예를 들어 사주가 똑같은 사람이 있고, 둘 다 오(午)시에 태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명리에서 오(午)시는 오전 11시 30분에서 오후 1시 30분 사이로 정의한다. 한 사람은 울릉도에서 오후 1시 25분에 태어났고, 다른 한 사람은 인천 강화도에서 오전 11시 45분에 태어났다. 둘 다 오(午)시에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독도에서 태어난 사람은 태양이 머리 위를 지나 서쪽으로 훌쩍 가버린 때에 태어났고, 다른 한 사람은 아직 태양이 동쪽에 머물러 내 머리 위를 지나지도 않은 때에 태어났다. 두 사람의 오(午)시 에너지는 같을 수 있을까?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조선시대 나와 똑같은 사주의 여성이 태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그 여자와 나의 사주가 동일하여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면, 틀림없이 그 여자는 스물일곱이 되던 해에 사망했을 것이다. 스물일곱에 나는 맹장 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 보겠다. 똑같은 사주의 사람이 태어났다. 한 사람은 우리나라 가장 남쪽 섬인 마라도에서 태어났고, 한 사람은 한반도의 가장 북쪽인 온성군에서 태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이러한 위도 차이는 태양의 입사각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이 두 위치 사이에 에너지의 파장이 같을 수 있을까?
사주가 같다면 그 성향이나 삶의 패턴이 유사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너지가 정확하게 일치하는 시간과 공간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공간이 일치하는 한 지점에는 유일한 시간과 공간의 에너지가 존재한다. 그 지점의 에너지는 그 순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과 인연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에너지의 흔적은 한 인간에게 고스란히 내려앉아 오로지 '나'로 살아가게 한다.
사주팔자는 인간 삶을 유추하는 예리한 도구이기는 하나, 정확한 잣대가 될 수는 없다. 하나의 글자 안에서도 촘촘한 시간의 변화가 담겨 있다. 촘촘한 시간의 변화는 촘촘한 에너지의 변화를 야기한다. 동일한 오(午)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사주의 글자와 다른 누군가의 사주 글자가 동일하다고 해서 그것을 동일하게 생각하면 곤란하다. 왜냐하면 해당 글자는 에너지의스펙트럼이 매우 넓게 펼쳐져있고 그 가운데 한지점에는 오로지 하나만 존재한다. 하나의 존재가 있기까지 수많은 인연과 우주가 함께하는 것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惟我獨尊), 시공간을 초월하여 유일한 '나'인 것이다. 유일한 '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