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전달하는 기쁨
백민선생님과 인터뷰 1부
(제이선생님) 반갑습니다. 하루한장 명리입니다. 오늘은 백민 선생님과 이야기를 한번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오늘 영상은 네 개 정도로 나누어서 찍을 계획입니다. 첫 번째 영상에서는 선생님 소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했으면 합니다. 선생님 약력에 대해서 좀 살펴봤는데요, 한 번 읽어봐도 되겠습니까? 선생님께서는 교육대학을 나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민 선생님) 졸업을 못 했어요. 2년 다니고 수료했는데, 아쉽지만 제적을 당했어요. 졸업했다면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모르지요.
(제이선생님) 그럴 수도 있으시겠네요. 계속 읽어보겠습니다. 동국대학에서 철학 박사 하셨고요. 1997년 동국대학 사회교육원 역학과목을 개설하시면서 한국 최초로 제도권 교육에서 역학 강의를 시작하셨다고 제가 알고 있습니다. 제가 너무 이 대단하신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백민역학연구원 이사장이시고, 경기대, 동국대 사회교육원, 대불대, 서울사회복지대학원 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지도해 오셨습니다. 또 제가 알기로는 2022년까지 서경대학교에서 강의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 추가해서 말씀해 주실 부분이 있으실까요?
(백민 선생님) 역학을 공부하고, 강의하고, 상담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강의를 한 세월은 40년이 넘었네요. 제도권 안에서 공부하고, 강의를 시작한 것이 가장 의미 있다고 봐야겠지요. 동국대에서 강의하기 전에 개인적인 강의 말고는 사단법인 한국역술인협회에서 관인 '동양 영리 학원'이라는 곳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예전에는 관인 학원이 있었어요. <사주첩경>을 쓰신 이석영 선생님이 운영하시던 '한일 영리 학원'이라는 것도 있었어요. 남영동, 청파동 그쪽 근처에 있었던 시절입니다. 관인 학원이기 때문에 그래도 그나마 인정을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92년도에 제가 그 학원에서 강의하기도 했어요. 92년도가 공적인 강의로는 처음이었어요.
(제이선생님) 네. 제가 선생님 조금 전에 저에게 주신 자료 가볍게 보았는데요, '진리라도 신비나 상술과
야합하면 미신이 된다.' 이런 말이 적혀 있더라고요. 이 분야를 '학문'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저변이 이렇게 늘어나는데 상당히 공헌을 하신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백민 선생님) 과찬이고. 조금 의미를 둔다면, 제가 처음 공부 시작하고 또 강의를 하던 시절까지만 해도 음지에 있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이제 음지에서 양지로 많이 올라왔지요. 제도권에서도 강의하고, 학위도 받을 수 있으니요.
(제이선생님) 네. 그만큼이나 끌어올려 주신 것이잖아요.
(백민 선생님) 음지에서 양지로 살짝 끌어내는 역할? 그 정도로 제 역할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제이선생님) 제가 앞서 다른 선생님들과 인터뷰하면서, 그분들이 다들 하나 같이 백민 선생님을 꼭 인터뷰를 했으면 하시더라고요.
(백민 선생님) 다행이네요. 왜냐하면, 이 역학계 또는 역술계라고 그러죠. 상담을 주업으로 했던 그런 세계에서는 서로 자기가 최고라고 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추천하고 할 수 있으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제이선생님) 좀 전에 선생님 주신 책에 이렇게 보다 보니, <하이텔 역학 동호회> 이야기가 나오던데요. 여기에 신세대 새로운 역학도들에게 강의를 하신다라고 선생님 소개가 적혀있던데요. 그 신세대 역학도들이 지금 선원 선생님과 같이 지금 대단하신 선생님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민 선생님) 저도 오랜만에 그 책을 봤습니다. 한 번 보시고, 참고 삼으시라고 발췌한 걸 보여드렸던 겁니다. <대권천명>이라고, 지금은 절판된 책이지요. 96년도에, 대통령 선거가를 앞두고 1년 여 전에 누가 대권을 쥘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지금 모 대학 학과장으로 계신 박교수님이 역술계, 역학계, 무속계까지 인터뷰를 한 책입니다. 그 책에 나오는 '신세대'라는 말은 무슨 소리일까? 96년도니까 당시 신세대면 그분들도 벌써 지금 오십 살은 다 넘었다는 얘기지요. 그때 하이텔 역학동 시대들이 지금 주요 멤버들이 돼 있죠.
(제이선생님) 네. 지금 다들 대단하신 선생님이시지요. 그 동호회에서 공부를 되게 많이 하셨나 봅니다.
(백민 선생님) 그런 모임이 없었죠. 그전에는 없었기 때문에 아주 폭발적인 인기였습니다. PC 통신이 처음 많이 퍼질 때죠.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이런 시절이지요. 그 하이텔 역학 동호회가 역학 계통에서 처음 생겼고, 학문적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었지요. 이제 그 멤버들이 각계의 주축이 되어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이선생님) 그렇군요.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이 공부랑 어떻게 인연이 닿으셨을까요?
(백민선생님) 그 이야기를 하면 좀 가슴이 짠하기도 하지만, 이제 말할 수 있지요. 앞서 소개해주신 대로 원래 교육대학으로 진학을 했습니다. 교육대학을 간 이유는 첫째, 교육에 대한 어떤 꿈이 있었지요. 아이들을 가르치고, 후학들을 이렇게 가르치는 걸 상당히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또, 개인적 사정으로는 집안 사정이 어려웠어요. 당시 교육대학은 2년으로 졸업하면 바로 교사에 투입이 돼요. 남자들 같은 경우, 병역 문제를 학교 다니면서 군사 훈련을 받아요. RNTC라는 훈련을 받으면, 바로 예비역 간부 후보로 전역이 돼요. 그러니까 좋았지요. 빨리 교육 계통에 종사해서 집안도 또 건사하고 해야겠다 결심하고 교육대학을 들어갔는데. 아무튼 대학 들어가서부터는 꼬였지요. 사주팔자 탓이겠지만. 그렇게 어렵게 대학 생활을 했어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운동을 했지요. 숨쉬기 운동부터 시작해서.
(제이선생님) 학생 운동 하셨지요.
(백민선생님) 그러다 보니, 2년 공부를 다 마치고 제적을 당했어요. 그 당시 제적 당하면 1주일 내로 군대 입영 영장이 나와서 끌려가다시피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지요. 3년 군대 생활을 다 채우고 만기 전역하고 나와서 보니, 복학도 안되고요. 취직도 안 되더라고요. 당시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고시 공부 한답시고 전북 김제 금산사 뒷산 모악산에 있는 작은 암자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이 계통의 공부를 접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시작했죠.
(제이선생님) 그렇게 인연을 맺으셨네요. 그런데 제가 선생님 동영상 강의를 좀 많이 들었는데요, 들으면서 보니 커리큘럼이나 수업하고 판서하는 방식들이 교육학을 공부하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는 조금 들었습니다. 교대 수료까지 하셨다지만, 결국에 공부는 다 하신 것이니. 그런 배움이 선생님의 교육 방식에 이렇게 다 젖어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백민선생님) 당연하죠. 우리 선생님도 교육계에 종사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교안 다 짜야 되고, 자료 준비도 해야 돼요. 그다음에 무엇보다도 제가 처음 이 공부하면서 많이 아쉽게 느꼈던 것이 체계적인 공부가 안 되었어요. 체계적인 공부라는 것은 기초 과정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스텝 바이 스텝으로 공부를 하는 것인데. 지금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백일 완성'이나 '몇 달 안에 비법 전수'와 같은 식으로 공부를 하다 보니, 기본적인 이론의 기초가 안 되지요.
저 같은 경우는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부터 체계적인 강의를 하자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음양, 오행, 간지. 그다음에 오행의 변화인 상생상극, 그다음에 간지의 변화인 합형충, 그다음에 사주를 작성하는 법. 요즘은 만세력 앱이 있어서 그냥 툭툭 치면 나오지만 당시에는 만세력을 찾아가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절기라는 것이 아주 중요하죠. 그래서 절기에 관한 것, 그다음에 육신, 그다음에 육신의 변화, 그다음에 신살, 격국, 조후 이런 식으로 나가야 합니다.
사주를 대충 뽑아 놓고, 풀이 다시 말해 통변부터 하려고 하다 보니까 공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강의 방식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초부터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러한 교육 방식이 아무래도 제가 예전에 학교 때 배운 것과 연결이 되었겠지요.
(제이선생님) 네. 강의 커리큘럼이 방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체계적인 것도 있지만. 수업 하나하나에서도 보면, 학습 목표 제시하시고 그 내용을 또 알뜰하게 탁 마무리하시고, 그다음 시간에 또 정리하시고 하는 것. 그 수업 과정들을 보고서는 '선생님'이시구나, 짐작을 했습니다.
(백민 선생님) 딱 초등학교 선생님 스타일이죠. 저는 항상 강의를 할 때, 반드시 전 시간에 배웠던 핵심을 짧게 정리하고 그날 수업에 연장하려 하지요. 그것이 습관이라면 습관이지요. 그다음에 또 제가 제일 중요시 여겼던 것은 질문입니다. 저는 꼭 질문 시간을 줍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선생님들이 질문을 제대로 안 받아줬다는 거예요. 우리 때는 또 질문하는 그러한 문화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저도 이 공부하면서 예습도 하고, 복습도 하고, 질문도 당연히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질문을 하게 되면은 건방지다는 느낌을 선생님들이 받으시는 것 같았어요. 너무 앞서간다고 대답을 잘 안 해 주시는 것 같았어요. 또 모르죠 잘 모르셔서 대답을 안 해주신 건지도. (웃음)
(제이선생님) 그럴 수도 있겠어요. (웃음)
(백민 선생님) 그래서 저는 질문을 꼭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수업과 관련 없는 질문은 또 안 받아줍니다. 이런 것을 적절하게 조율할 수 있어야 해요. 항상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하고 있습니다.
(제이선생님) 선생님께서는 개인적으로는 교육대학 제적당하시고 많이 힘드셨지만, 명리학이 이렇게 제도권으로 나오고 학문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셨다는 맥락에서 보았을 때는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선생님 그 배움이 이렇게 연결되어서, 다시 많은 후학들을 길러내셨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백민 선생님) 과찬이시고요. 다만 이런 이야기는 가끔 들었어요. 낭월 스님이 제 첫 제자인데 그 첫 강의부터 체계적으로 하는 것을 중요하게 했지요. 다른 데서 공부를 많이 했어도 뭔가 체계가 엉켜서 꿰지를 못했는데, 하나씩 차근차근 꿰어진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또, 백민 선생님한테 공부하신 분들은 또 교육 쪽 교수 쪽 가르치는 쪽에 많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 선생의 제자, 그 코치에 선수 아니겠냐고 농담을 하지요. 강의나 저술하는 쪽으로 제 제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저부터도 그렇습니다만, 직접 상담하면 돈도 좀 많이 벌고 할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고 그렇습니다.
(제이선생님) 네. 선생님. 제가 더 여쭤보고 싶은 것이 많은데요. 선생님 국내활동 및 국제활동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영상에서 조금 더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