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무대로, 국제역학대회

백민선생님과 인터뷰 2부

by 몽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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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선생님) 선생님 다음 영상 이어가 보겠습니다. 선생님 몸이 좀 안 좋으시죠. 제가 너무 뜬금없이 이야기를 꺼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백민 선생님) 제가 암 투병 주위에 있어요. 그래서 컨디션에 따라서 많이 달라져요. 지금은 컨디션이 많이 살아났지만 완벽한 상태는 아닙니다. 그래도 암 환자 같지는 않잖아요. 금방 죽을 것 같지는 않고요. 그런데 저는 아프다가도 강의를 하면은 나아요. 한 40여 년 동안 과음을 했다든지 과로를 했다든지 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꾸역꾸역 나가서 막상 강단에 서면은 힘이 난다고 그럴까. 이게 무속인들이 굿할 때 기분 아닌가, 신명 나는 것처럼. 그래서 저는 천상 선생님이구나 강의를 해야 되는구나 생각합니다. 요즘 몸이 안 좋습니다만 며칠 전,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한 번 연습해 봤습니다. 그런데 만만치 않더라고요.


(제이선생님) 그런데 선생님 입력 장치 쓰시는 것도 미리 연습하셔가지고 하셨지요.

(백민 선생님) 입력 장치로 컴퓨터에 판서하는 것이 가능하니 저는 좋았어요. 제가 판서 세대라. 제가 어디서나 분필과 지우개를 쓰는 칠판을 활용했어요. 그것과 비슷한 프로그램이 나오니 좋더라고요. 유튜브 보니 이렇게 칠판을 쓰는 사람도 있고, 젊은 분들은 타자를 치는데 저는 그러면 정신이 없으니까. 멀티플레이를 못하니요. 입력 장치 쓰는 것을 몇 주간 연습했어요.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이제 노력만 가지고 안 되는구나 생각했답니다.


저희 집이 조금 외곽에 있다 보니 인터넷 속도가 느려요. 실시간 방송인데 제가 방송하는 것과 보는 사람 사이에 1분 30초 차이가 난다고 그러더라고요. 모니터링하는 우리 제자가 이야기해 줘서 알았지요. 컴퓨터 사양도 안 좋고... 노력만 가지고 안되는구나 생각했어요. 근데 선생님 이렇게 하시는 것 보니 간단하군요. 저는 인터뷰한다길래 녹화 장비가 엄청난 줄 알았어요.


(제이선생님) 노트북 하나만 있어요.


(백민선생님) 그렇죠. 노트북 하나 가지고도 이렇게 되는구나 싶으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호기심이 많아서 이런 것을 참 좋아해요. 하나씩 또 유튜브 찾아가면서 공부하고요. 해보고 안 되면 하나 가지고 해결하기 위해 몇 날 며칠 고민하지요. 그렇게 해서 공부하면 남지요. 절대 잊어버리지 않아요. 습득하게 되지요. 이럴 때 누가, 어느 선생님이 하나 탁 알려주고 찍어주면은 빠르게 습득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하지요. 이런 생각을 하면 명리 공부도 마찬가지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이선생님) 네. 앞서 공부한 사람들이 내어 놓은 길을 보면서 뒤 사람들이 따라가지요.


(백민선생님) 모르는 부분을 정확하게 누군가 이야기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명리 역학 공부하면서 가장 마음속에 새겼던 게 뭐냐면, '만약 내가 강의를 하면, 나는 이렇게 하고 싶다'였어요. 선생님 강의를 들으면서 이 부분에는 이런 표현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에 이 설명을 덧붙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항상 했지요.


(제이선생님) 저도 공부할 때 늘 그런 마음인데요... (웃음)


(백민선생님) 그게 선생님들 스타일이지요. 그래야 더 나은 강의가 되지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강의면서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게 있어요. 내가 강의한 대로, 가르친 대로 그대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더 스스로의 자기의 경험이나, 봤던 책들,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내용들을 첨가해야 발전한다고 이야기를 하지요. 그런 자세가 중요하지요.


(제이선생님) 건강이 좀 빨리 더 좋아지시셔서 강의 활발하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백민선생님) 그렇데 또 이렇게 인터뷰를 하다 보니까, 지금 더 살아나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이게 하다 보면, 이렇게 살아납니다. 좀 신명이 나야죠. 공부든 뭐든. 아무튼 고맙습니다.


(제이선생님) 선생님 그런데 국제 역학 대회라는 것이 있더라고요. 저는 역학이 국제적으로 이렇게 큰 무대가 있다는 것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한 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백민선생님) 제가 이 공부를 하고, <사단법인 한국 영리 학회> 또 <사단법인 한국역술인협회>라는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를 잘 아는 선배님께서 가입을 권유를 하시더라고요. 제가 이런 단체 가입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가입을 하면 훌륭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니 너에게 도움을 많이 줄 거다'라고 권유하셨어요. 그때 가입을 권유했던 분이 이 한국역술협회 한국 영리 학회 사무총장을 했었어요. 그분이 제 직계 중고등학교 선배님이셨어요. 80년대 초에 이 젊은 나이에 이런 일을 후배가 한다는 것에 대해 선배는 아주 자랑스러워했어요. 졸업은 안 했지만 교육대학을 다녔고, 반듯하고 그러니 이 공부했다 하니 반가워하시면서 권유를 하셨지요. 그러면서 그 당시의 전설 같은 선생님들을 소개해주셨어요. 그 덕분에 많은 덕을 봤죠.


당시 초대 회장님이 청옥 지창룡 회장님이라는 분이 계세요. 그분이 1984년도에 한국, 일본, 대만의 역술인들과 모여 교류를 하자고 약속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논문도 발표하고 친목도 도모하자고 시작한 것이 국제 역학 대회입니다. 84년도에 시작했으니 40년이 되었지요. 우리나라가 종주국가예요. 저는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그 당시 <한국 역술인 협회>가 국가에서 인정해 주는 문화관광부 산하에 법인체로는 유일했어요. 일본에는 <고도엽단>이라고 하는 단체가 있어요. 신사까지 있는 단체인데 진기(眞氣) 학교라는 학회에 두 단체가 참여를 했어요. 대만에는 <사단법인 자유중국 역경학회>가 참여했지요. 그다음에 <노장학회>부터 시작해서 한 두 단체가 더 참여했습니다. 그 이후에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서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오스트리아, 캐나다에서도 참석을 했는데 거의 화교 아니면 우리 교포와 같은 동양사람이었어요. 84년에 우리나라에서 시작을 했고, 88년 올림픽 당시 또 우리나라에서 개최했지요.


우리나라에서 개최할 때 외국에서 백몇 십 명이 참가를 했는데 초청식으로 했어요. 숙박비부터 다 제공해 줬어요. 엄청난 비용이 들었죠. 정부 지원은 없었고요. 역술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그 많은 사람들을 호텔에 묵게 했지요.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서 순차적으로 했어요. 그러니까 88년도부터 제가 참석을 한 거죠.


그다음 해인 89년도에는 일본에서 했어요. 일본 고도역단이 주최해서 일본 시지오카시에서 열렸지요. 한국 대표로 제가 참석을 했지요. 다음에 대만, 싱가포르 이런 식으로 나라마다 돌아가며 주최를 맡았지요. 교육계통이나 학계에 있는 선생님들도 계시기는 했지만 주로 참가하시는 분들이 현업을 하시는 분들이었지요. 매년 돌아가면서 나라별로 개최하고 교류하며 학문을 나누었지요. 상담 내용을 기술한 것도 많았지만 아주 훌륭한 논문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이어지던 것이 근래 3년 동안은 코로나 때문에 개최되지 못했지요. 34회까지 개최했습니다. 지금 현재 대만분이 대의장을 하시고 제가 사무총장 격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 2024년 하반기에 말레이시아에서 할 예정입니다.


대만과의 관계 때문에 중국은 처음부터 함께하지는 않았어요. 중국은 그 이후에 2000년대 들어와서 가담을 했어요. 중국 측에서 대표단도 많이 옵니다. 연변 지역학회 같은 경우는 우리 조선족들이 많습니다. 중국은 워낙 인구도 많고 땅이 넓으니 학회가 많아요. 각 성별로도 참여를 하고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이선생님) 명리학이 우리나라 같은 경우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양지로 많이 드러났다고 봐지는데요. 물론 여기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그게 학문이냐 이렇게 치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중국이나 대만, 일본에서 명리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백민 선생님) 얼마 전 모대학 교수님과 연말 모임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일본에서 역학 세미나가 있다고 저에게 자문을 구하셨는데요. 우리나라 명리학계의 시작이나 현장 근황에 대해서 물어오셨지요. 일본 쪽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권 강의입니다. 예를 들면 원광디지털대학교 동양학과 같은 경우 풍수지리도 강의하고 그러지요.


(제이선생님) 일본에는 그런 교육과정이 없나요?


(백민 선생님) 없지요. 일본에는 현재 학위 과정이 없어요. 학사, 석사, 박사의 학위 과정이 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대만에도 없고요. 일반대학에서 물론 풍수 등을 할 수는 있지만요. 중국은 더욱이 그런 부분이 어렵지요. 그래서 일본 선생님들 호기심을 가지고 또 부러워하신다고도 합니다. 이번에 코로나로 인해 화상으로 세미나를 하셨다고 하는데, 동국대학교 제 강의부터 시작해서 여러 단계를 거쳐왔다는 이야기를 쭉 했었지요. 다들 많이 부러워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중국의 경우는 사회주의 국가이다 보니 출판을 아무 데나 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물론 상담은 마음껏 하지요. 제가 볼 때 중국의 역학계는 우리나라 10년 전, 20년 전 상황을 보는 것 같아요. 행사, 자격증 위주이지요. 우리도 20년 전만 해도 자격증 걸어 놓고 했지요. 제가 중국에 세미나나 국제대회에 참석하면, 한국 대표와 사진을 찍겠다고 줄을 서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식이 공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이런 교육이 없어요. 예전에 동국대학교 강의에서 중국이 큰 시장이니 우리가 이 학문을 역수출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지요. 지금 중국에서는 이 공부에 대한 붐이 일어났어요. 학계에서 학위나 이런 것은 아직 생각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요. 중국에서는 유튜브 활동도 자유롭지는 않지요. 그러니 상당히 조심스럽지요.


중국에 복희 씨 제전에 초대받아서 가는 등 6번 정도 세미나에 참석을 했습니다. 환경 풍수, 생태 쪽과 연결시켜 세미나에 참석을 해서 정부 관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중국에서 이 공부를 한 번 정리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폭발적 인기로 자칫하면 혹세무민 하는 쪽으로 가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지요. 중국은 그런 게 있어요. 명리 같은 경우는 절대 혹세무민 하는 공부가 아니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만, 상황은 조심스럽습니다.


대만에는 명리학이 상당히 발전되어 있어요. 물론 우리나라와 같은 교육과정은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광복 이후 대만 책과 홍콩 책을 많이 가져와서 공부를 했지요. 대만은 상당히 많이 발전되어 있어요. 그런데 가장 활성화된 것이 우리나라입니다. 명리학 쪽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술수의 영역도 말입니다.


(제이선생님) 제가 볼 때, 80년대 90년대 하이텔 역학 동호회뿐 아니라 여러 루트를 통해서 역량이 뛰어나신 분들이 이 공부에 많이 참여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 공부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시고 여기까지 끌어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백민 선생님) 그런 것들이 대중화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지요. 통신 기술 발달과 더불어, 그 당시 젊은 분들이 활동할 수 있는 그러한 시대였지요. 이것이 대중화 보급화하는 데 있어 하나의 분명한 계기가 되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이선생님) 선생님 말씀이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3gVPB6xPB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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