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선류래웅선생님과 인터뷰 3부
(제이선생님) 선생님께서는 긴 시간 후학들을 양성해 오셨습니다. 명리학을 조금 더 학문적 관점으로 이야기해 주시면, 명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공주대학교 대학원 역리학과와 동양학과에서 10년 이상 이렇게 대학원생들 지도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는 어떤 과목들을 배우나요?
(류래웅 선생님) 공주대학교에 처음에 역리학과로 했어요. 그렇게 하니 박사 과정이 개설이 안되어서 그 이름을 동양학과로 개칭한 것입니다. 2003년 무렵 학과 개설에 대한 의논을 했어요. 그러면서 커리큘럼을 짰지요. 역리학과이니 역학과 관련된 것으로만 커리큘럼을 짰더니, 그 학과를 반대하는 교수들이 많았어요. 국립대학에서 무슨 미신 학과를 만드냐고. 그래서 초창기 때는 영어나 다른 교양과목을 많이 넣어서 겨우 만들었지요.
저는 기문둔갑 내리 10년 안 빠지고 강의했지요. 그러다 보니 박사 된 사람도 있고. 내가 뒤로 물러 나야 배출된 사람들이 강의 자리가 하나라도 생길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제이선생님) 지금도 기문둔갑이나 역학 과목들이 국립대 커리큘럼에 들어가기 쉬운 일이 아닐 텐데, 10년 전에 이런 과정이 생겼다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류래웅 선생님) 제도권 대학 안에 역학과가 있는 곳은 없어요. 일본, 중국, 대만도. 그런데 몽골의 국립대학교에 역학과가 있었습니다. 세계 최초지요. 제가 몽골 역학 교재를 가지고 있거든요. 일본 역술인들이 굉장히 부러워합니다. 자기네 나라에서는 아직 못 하거든요. 우리나라는 학교에 생겼지, 석사 나오지 박사 나오지 하니까 굉장히 부러워합니다. 역학은 현재 우리가 세계 최선진국입니다.
(제이선생님)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께서 엄청나게 노력하시고 쫙 끌어주신 그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흩어져 있던 이런 공부들을 모아서, 제도권으로 연결해 주시기까지 엄청난 노력들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까 이야기 나온 <명과학 연구>의 창간 배경이 궁금합니다.
(류래웅 선생님) 백만 역학인 시대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전문 역술인은 20만이 안 넘을 거예요. 명리는 순수한 인문학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공부가 원인과 결과 사이에 합리적 논리가 없으니 비과학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이야기해요. 첨단 의료 기계나 장비가 백 년 후에도 첨단일까를 생각해 보라고요. 아마 미개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관점의 문제거든요. 오행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살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한 것을 서양의 사고로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요. 어떤 가설이 만들어졌는데 그 가설이 입증되면 그것은 정설이 됩니다. 그런데 명리는 맞습니다. 어떤 잣대로 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제이선생님) 네네 명과학 연구, 100만 역학인 이야기하면서 여기까지 이제 흘러왔는데.
(류래웅 선생님) 제가 공동 발행인이 돼서 책을 소비해 주는 담당을 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게 사실 학술지로 인정이 잘 안 돼요. 왜냐면, 적극적으로 뛰는 사람이 잘 없고요. 논문 쓰는 일은 어렵습니다. 이런 학술지에 글을 준다는 것은 희생정신이나 봉사 정신이 있어야 하지요. 사명감을 가지고 해야 되니, 조금 지지부진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석사나 박사 논문 못지않는 좋은 논문들도 많이 실려있습니다.
(제이 선생님) 학술지는 <명과학 연구>가 있고, <월간 역학> 간행물은 발행된 지 30년이 넘은 것이지요? 선생님께서는 이 <월간 역학>과도 인연이 많으신가요?
(류래웅 선생님) 사실 저도 <역학춘추>라는 간행물을 만들었는데, 잘 안되었어요. 역학계에서는 필진을 구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역학계에는 고수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고수들 중에 글을 쓰는 사람이 잘 없습니다. 지금이야 대학이 흔해 빠졌지만, 당시 역학하는 사람들이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신 분들이 몇 안 됩니다. 그래서 공부끈이 길지 않은 분들이 많아요.
(제이선생님) 이해는 풍성하신데, 글로 안 나오시는 분들이 많다는 말씀이시지요?
(류래웅 선생님) 말은 청산유수지. 사실 작업난도 있지만, 필진 확보가 안돼서 <역학춘추>는 그만뒀지요. <월간역학>이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어요. 월간역학은 34년간 꾸준히 발행되고 있지요. 발행인 전용원 사장하고 제가 친한데, 대단하신 분입니다. 34년 찍어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써주고 있어요. 제 글을 보시고 싶으신 분이 계시면 묵은 월간역학 신청해서 보세요.
(제이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명리학이 학문적으로 어떤 식의 발전을 해나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류래웅 선생님) 명리학을 이용해서 직업 적성, 건강 적성 이런 식으로 구체화해서 상담하는 분들이 늘고 있어요. 앞으로 운명 상담은 그런대로 또 유지되겠지만, 이런 구체화된 부분도 발전할 것 같습니다. 분야별로 나눠질 것 같습니다. 궁합 전문 명리가라든지. 진로 전문이라든지. 다양화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주역을 달달 외웠어요. 그 시대 사람들은 다 점을 할 줄 알았어요. 난중일기를 보시면 이순신 이야기가 점친 이야기도 많아요. 징비록의 류성룔도 한의학에 박학했습니다. 한의학은 역학과 쌍둥이 학문이니 그분도 역학에 능통하셨겠지요.
지금 여러 가지 발전 방향으로 보았을 때, 전 국민의 역학자, 역학을 교양으로 알게 되는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운전하는 것이 고도의 기술이었죠. 근데 지금은 너도 나도 다 하잖아요.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제이선생님) 인문학의 한 분야로 명리학뿐만 아니라 역학이 널리 알려져서 긍정적으로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류래웅 선생님) 그렇지요. 이 것이 비긍정적으로 쓸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니, 누군가가 중심축을 잘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제이선생님) 월간 역학에 쓰신 글의 마지막 부분에 '이제 정리 못한 학문을 정립해야겠다.' 이런 문장이 있었는데요.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십니까?
(류래웅 선생님) 책을 두 권 정도는 더 집필을 할 것 같고요. 체력이 허락하면 세 권 정도. 명리 서적을 반 정도 집필할 것이 있고, 기문둔답에서 국운을 보는 부분만 따로 집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제이선생님) 앞으로 나올 책들, 선생님 활동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NKBvTjPtMhs?si=KoOyHq_X6zrmKMH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