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보건실로 뛰어오자마자 침대 위로 쓰러지며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나더니 죽고 싶다고 한다. 긴급 상황이다. 아이의 흥분된 감정을 안정시켜야 한다. 비상으로 대책 논의를 위해 교감, 상담 교사 담임교사가 모두 모였다.
별은 1학기 때 반장이었다. 수업 중에 엎드려 자는 아이를 교과 교사가 깨우자 그 아이가 교사에게 폭언을 했다. 상황을 모면하기는 했으나 해당 교과 교사는 처참한 심정으로 교실 문을 나서야 했다. 그때 별이 뛰어 와서
“선생님, 기분 나쁘셨지요? 죄송해요. 제가 대신 사과 드립니다. 그 아이가 원래 나쁜 애는 아닌데 지금 힘든 일이 있어서 그러니 이해 부탁드려요”
라고 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죽고 싶다며 머리를 움켜 잡고 울었다. 상처 입은 짐승의 울부짖음이었다.
별이 부모님은 이혼을 하셨다 했다. 엄마 아빠 중 한 분을 선택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엄청 큰 공포였고 두려움이었다고 했다. 더구나 엄마와 살고 싶은 데 애착이 없는 아빠랑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별에게는 가슴을 짓누르는 부담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빠가 저한테 뭐라 한 줄 아세요? 너는 아무 걱정 없이 건강하게 잘 지내래요.
말이 되지 않아요. 자기네는 맘대로 이혼해 놓고 이제 와서 저한테 공부는 신경 쓰지 말고 맘 편하게 살라니 말이 되는 소리예요? 부모라면 자식의 앞날을 위해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지 않나요?”
분노로 격앙된 목소리로 별이 울먹였다. 아이의 맘 속에 아빠란 존재가 자신을 해치는 적이 되어 있는 모양새였다. 그 어떤 좋은 말도 아이에게는 비수로 꽂힌 셈이다.
정작 만나 본 별 아버지는 보통의 아버지였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사춘기 아이가 감당해야 할 두려움이 안쓰러워서 건넨 위로의 말이었다고 했다.
심리극을 통해 별의 생각을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들이 별을 관찰자로 하고 상황을 만들었다. 부모에게 경계심과 분노를 갖고 있는 딸에게 엄마가 사과와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는 장면을 연출했다
극이 시작되자 별이 똑바로 상황을 쳐다보지 못했다.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상황을 종료하고 별에게 물었다.
“ 엄마가 딸에게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엄마와 딸을 번갈아 보았다. 여전히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지만 눈동자에는 조금의 안도감이 비쳤다. 잠시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의 진심이 느껴져요.”
단단히 걸어 잠갔던 문이 살짝 열린 듯 별의 눈가가 축촉해졌다, 그리고 작은 미소를 띤다.
일단은 급한 불은 끈 셈이었다. 상담교사는 심리 상담에 들어갔다.
상담 교사는 성장통을 거치며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된 성공한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말썽을 피우며 일진이었던 학생이 경찰관이 된 이야기, 친구 한 명도 없이 왕따로 지냈던 아이가 유라시라 대륙울 자전거로 횡단한 이야기, 성적이 하위이던 아이가 윤리 교과 전교 1등을 목표로 시작하여 변호사가 된 이야기 등을 들려주었다.
“별은 무엇을 하고 싶지?”
가늘게 눈을 뜨며 별은 생각에 잠겼다.
“어릴 때부터 저는 글 쓰기를 좋아했어요. 글을 쓰는 순간은 긴장감이 조금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아요. 친구를 바라볼 때도 부모님을 바라볼 때도 왠지 너그러워지는 것 같아요.”
“ 그래 그럼 지금부터 네 마음을 글로 옮겨 보자. 모아지면 책을 만들어 볼까?”
아이의 눈이 반짝 빛나는 순간이었다.
곧바로 별이 글을 써 왔다. 맨 앞페이지에 ‘이 글을 쓰도록 용기를 주신 000 선생님에게 바칩니다.”로 시작한 글이었다. 별이 글을 쓰는 이유는 마음의 상처로 인해 고통받은 자기의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기처럼 고민을 풀지 못해 병이 될 만큼, 삶의 존재를 부정할 만큼 힘들어하는 또래 친구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이 고통이 자신들만의 것이 아님을, 자신들의 잘못이 아님을, 손 내밀어 보면 그래도 잡아줄 어른들이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다고 했다. 용기와 격려를 주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현재 별의 심리 상태는 많이 호전이 되었다. 지각을 하지도 않고 예전처럼 반 친구들과 담소하며 배시시 웃기도 한다. 수업 중에 교과 선생님과 눈 맞춤도 하면서....... 한 차례 폭풍은 지나간 듯 하지만 수면 위의 잔잔함을 위해서 별이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우리는 잘 안다.
그러니 이 시기 또한 지나갈 것이다. 지금은 잠시 물에 젖은 날개의 무게로 잠시 쉬어 가지만 툭툭 털고 날개를 정비하여 활짝 펴서 푸른 하늘을 향해 비상할 것임을 우린 모두 반드시 믿는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무엇이 될지 모르는 잠시 길을 잃은 빛나는 날개를 가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