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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운 Jun 01. 2024

내일 또 도전하자

내가 잘못일까 내가 핑계덩어리일까

상담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를 곱씹으며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홈트를 마음먹은 날 저녁이었다.

' 그래! 홈트는 돈이 들지 않지! 난 운동을 싫어하고 온몸이 젖은 이불 같고 시작하기 전에 천만 개의 핑곗거리를 찾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살아남기 위해 나를 위해 해야만 해!!'


내적 갈등을 하루 종일하는 중에 밤이 찾아왔다.


매년 그렇듯이 시부모는 어버이날을 핑계 삼아 그를 불렀다.

'그래 이젠 나도 싫다. 너네랑 골프 안 쳐.....'

우리집은 차가 한 대인데 그는 차를 가지고 골프를 나갔다.

주말도 아니고 평일에 잡은 약속 덕분에 나는 이른 아침부터 아이를 재촉하고 빨리빨리를 오백번 정도 외치는 하루를 시작했더랬다. 양쪽 어깨는 하루종일 다닐 학원 가방과 노트북을 들고 하루종일 집 밖을 전전하는 하루를 보내게 되었었다.

아이는 왜 이사를 와서 아침부터 택시를 타게 하냐고 냄새나고 난폭운전으로 멀미가 나서 토할 것 같다고 잔뜩 울상을 하고 등교를 하였다.

부글부글 화가 나고 나의 분노가 들끓었지만

'그래 내가 선택한 결혼이고 나는 가정을 지키기로 결단한 이상 나의 마음은 내가 해결해야 한다. 그들은 바뀌지 않는다. 내가 나의 힘을 키워야 한다.' 주문을 걸면서 커피를 맥주처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런 하루 끝에 마주친 그가 말했다.

"엄마가 애기 보고 싶다는데? 이번 주 예배 끝나고 보자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왜 나는 싫다고 말을 못 했을까...?

아마도 그 후, 한 집에서 있는 그가 표출할 이유 없는 짜증과 시비, 카드값 지불 날 쏟아질 비난과 폭언이 두려워서겠지......


홈트를 다짐한 그날.

난 홈트를 포기하고 이불속을 선택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그들끼리 이미 정해 놓은 통보였다.

나의 승낙은 없었지만 시모에게 주라고 여행 시 쓸 마스크 팩과 돈봉투를 행여나 잊을까 현관 문고리에 걸어 놓은 걸 보니 통보라는 나의 짐작이 허황된 상상이 아닌 것이다.

나의 모든 의욕은 꺾이고 죽고 싶다는 생각만 뇌 속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었다.

그는 왜 본인도 없이 나를 매번 그들에게 방치할까. .

그래그래 그는 날 지키는 자가 아니었지... 또 배우자라고 착각할 뻔했군.

밥 한 그릇 사주기도 아까운 며느리를 왜 자꾸 불러 낼까...

아.. 그렇지.. 시부가 아이를 보고 싶어 하지.. 시모는 돈을 받아야 할 거고.

왜 그는 아직도 그들을 인정하지 않을까 만난 날 돈을 줬다면

아이를 보고 싶다는 핑계를 그들을 만나러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을. 멍청하기도 하지.

아... 본인은 안 가니 상관이 없구나... 그는 진심으로 아이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걸테지.

 갖 생각의 회오리로 만나러 가는 그날까지 나를 계속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드디어 그날이다.

왜 나의 생명을 살리는 주일이 지옥 같은 주일이 되었을까...

지옥 같은 크리스마스... 지옥 같은 새해... 지옥 같은 명절......

나의 최근 10년은 30년간의 행복한 날이 무색하게 지옥으로 변한 날로 차곡차곡 채워졌다.

아... 눈 뜨기 싫은데 눈이 뜨여졌다.

꾸역꾸역 챙기고 아이를 보챘다.

"나 할머니랑 밥 먹기 싫어.. 계속 빨리 먹으라고 해서 체하고 토할 것 같아..."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 밥은 천천히 편하게 먹는 게 맞아. 바쁠 때는 빨리 먹어야 할 때도 있지만 주말이나 저녁같이 시간이 여유로울 때는 천천히 편하게 먹는 게 맞아. 엄마가 있으니까 편하게 먹어. 엄마가 그러지 말라고 할 거야. 걱정하지 마."

" 꼭이야. 꼭 말해줘야 해. 할아버지는 안 그러는데 할머니는 맨날 그래. 같이 밥 먹기 싫어."

.....


무거운 마음으로 교회 앞 서점에서 책을 샀다.

이거라도 들고 있어야 심신이 안정될 것 같았다.

그들은 그들이 늘 가던 갈비탕 집으로 이미 정해놓고 우리에게 무엇을 먹겠냐고 물었다. 우리의 대답은 필요가 없었다. 질문 뒤에 바로 갈비탕집을 가자는 말이 딸려 나왔다.

아이의 의견은 거절당했다.

나는 뭘 먹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뭘 먹든 체하는 상황이라 어딜 가도 똑같았다.


가는 길,

차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비난하고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르며 싸우기 시작했다.

갈비탕집 가는 길을 서로의 길이 맞다고 언성을 높이고 갈비탕집의 이름을 내비에 입력하면서도 닥치라며 소리를 질러댔다.

아이와 나는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도망칠 수도 없고 끼어들기도 싫어서 침묵을 선택했다. 아이는 놀라고 황당해했고 나는 달리는 차에서 내리고 싶고 소리치는 그 입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왜 내 자식과 내 귀가 썩게 여기서 이 난리법석을 떠는지 궁금했다.

조용히 계좌로 돈만 받는 걸로 부족해서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것도 모자랐던 것일까.

부모의 부부싸움도 기가 막힌 판국에

내 아이는 무슨 죄로 주일에 저 꼴을 보아야 하는 것인가.. 가슴이 조여왔다.

예배를 드린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건만 70세가 훌쩍 넘은 노인들이 손주 앞에서 보이는 꼴이라니.

내가 이 꼴을 보자고 믿음 있는 가정에 목을 매고 이 결혼을 선택한 것일까..


짧은 순간 생각했다.

'아... 천륜을 거스르는 죄책감이고 나발이고 더 이상 이 시간 이후로 내 아이의 아빠, 당신들의 아들 없이 당신들과 내 아이가 만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내 아이에게 미안했다.

내가 이 취급을 당하기 때문에 내 아이도 같은 취급을 당했다..아들이 무서워 그 앞에서는 착한 척을 하기 여념없는 그들은 내 앞에서 내가 들으라는 듯이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하며 폭언을 했다.


이미 나의 영혼은 식당에 도착하기 전에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이게 끝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른 셋 어린이 하나..

늘 그러했듯이 시모의 도돌이표 노래가 시작되었다.

" 야!!  뭐 시킬까? 어떻게 시킬래? "

오늘도 내 밥을 시키지 않기 위한 눈치게임.

당신들의 아들도 없으니 잘 보일 사람도 없겠다 서너 번이 넘도록 듣기 싫은 알람소리처럼 반복했다.

네네.. 듣기 좋은 소리로 입을 닫아드려야 만족하실 테니 내 욕심으로 시켜서 남겨 음식물 쓰레기를 늘리느니 당신도 좋고 환경에도 좋게 아주 흡족한 답변을 드릴게요.

 " 전 아이랑 나눠 먹을게요."

나의 말이 아주 흡족한지 함박미소를 지으면서

" 그럴래~~~??? 나 다이어트하느라 밥 많이 안 먹으니 그거 먹어라"

"아닙니다. 괜찮아요. "

그렇게 메뉴선정이 끝이 났다.


한심하게도 이것이 그들과 그의 폭언과 회유에서 2년을 넘게 버티면서 찾은 용기의 아주 초라한 방어였다. 그전에는 어른에게 맞춰주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하고 그들이 옳을 것이다 꾸역꾸역 참았으니...나도 참 멍청하게 날 갉아먹었던 지난 날들이였다.


이제 아이 밥만 챙겨주면 갈 수 있다는 희망!!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혼란하여 예배를 드리지 않은 탓인 걸까..

식탁 앞에서 시작된 시모의 입방정은 밥 먹는 내내 쉬지 않고 쏟아지길 시작했다.

내 아이에게는 옆에서 밥 먹는 아이들과 비교하며 너는 왜 팍팍 안 뜯어먹냐고 빨리 먹으라고 강요와 타박을 하였고, 나에게는 본인이 먹다 남은 밥을 먹지 않는다고 왜 너는 밥을 먹지 않냐고 식사가 끝이 날 때까지 강요하며 말을 했다.

나는 정신줄을 부여잡고 아이에게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라고 괜찮다고 말하며 고기를 잘라 주었고 시모는 고기를 왜 이렇게 조사(??!!) 주냐며 핀잔을 주었다. 나는 아이가 이 부분을 먹는 것을 싫어해서 갈비탕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 여러 번 말하였지만 다시 말했다. 나의 인내심은 바닥에 바닥을 찍고 있었다.

 

그때, 시모와 시부의 불길한 대화에 귀에 꽂히고 말았다.

시모 왈,

" 옆에 김치를 하나도 안 먹었네. 왜 손도 안 댔지? 김치를 하나도 안 먹었네.~"

시부 왈,

"외국인들이라 메인만 먹고 갔나 보네. 중국인들이라 안 먹고 갔나 보네 본인들 입맛 아니라서."

시모 왈,

" 그러게. 손도 안 되었네~"


그때 종업원이 테이블을 치우러 왔다.

그 옆에서 계속 김치를 하나도 안 먹었다며 아깝다고 종업원과 말하던 시모는 나를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 저거 너 먹어라.
손도 안 대던데 아깝잖아."


내 귀를 의심했다..

??

내가 지금 뭘 들은 걸까..?

시모는 집에서 식사를 차릴 때도 갓 지은 밥 대신 남고 오래된 밥을 아까우니 먹어치우자며 나에게 섞어 주곤 했다. 남은 음식들을 항상 아까우니 먹어치우라며 이거 남았는데 누가 먹냐며 울상을 지으며 먹으라 강요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순간에

" 저는 괜찮습니다.  어머니 드세요."라는 말을 웃으며 했어야 했다.

왜 저 말이 생각이 나질 않은 걸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나에게 화가 난다.

난 왜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례함 앞에 무기력하게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걸까.

나의 순발력은 왜 이것 조차도 생각하지 못하고 당혹감에 백지화 된 뇌구조를 원망하고 다짐하고를 반복하는 걸까.

늘 긴장과 준비를 하고 만나는데 그들은 늘 그 이상을 보여주고 나는 그들의 행실 앞에서 백지화가 되어서 어버버거리는 만남 후 무기력과 예민함으로 일주일을 나도 죽이고 아이에게도 날카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걸까..


자존감을 위한 나의 다짐은

하찮고 하찮게. 무너졌다.


나는 또 다시 나의 무기력함과 다투는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내었, 다시 나의 목표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쯤 되면 매번 드는 생각이 있다.

그의 말처럼 내가 하는 일 하나 없이 잠만 처 자고 아이 라이드나 하는 쓸모없고 게으르고 핑계가 많은 인간인 걸까..?

그럴 수도...


지금 내가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해야하는 것은 다짐만 한 채 시도도 못 ,  돈이 한 푼도 안 들어야 하는 자존감 되찾기 프로젝트이다.

그래서 나는 또 다짐을 한다.

내일 눈을 감기 전 30분의 홈트 시간을 말이다.

비록 작심 3일을 3일마다 반복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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