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고생했어요.

내가 더 고마워!!!

by 몽운

아침부터 아이의 아침을 챙기고 옷을 챙긴다.

아침 할 일을 알려주고 체크하고

나는 설거지와 어수선한 물건을 대충 정리하며

남의 편이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내리라는 오더를 받고

마저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물을 끓인다.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난 이제 여행이 싫다.

나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면...

설거지와 빨래는 계속되니까 나의 손목도 계속 아프니까.

고무장갑을 못 챙겼더니 손톱 옆이 갈라지고 뜨기 시작했다.

피가 나니 움찔움찔 계속 아프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빨래 못 할 거면 여행 내내 입을 옷을 다 챙기겠다고 선언 했고

남의 편은 짐 가방이 큰 것을 지독하게 싫어하므로 울며 겨자 먹기로 5일 치만 챙기라고 했다.

너무나 다행이지... 와우.

신혼여행 때 빨래방 간다는 말에 짐 뺐다가 한 달 내내 이 핑계 저 핑계로 안 가서

매일 울며 손 빨래한 기억은 완전 최악의 트라우마다.

그 이후에는 호텔방에서 설거지도 하고

이제는 샌드위치까지 싼다.

계란 으깨서 넣어라 아보카도 으깨서 넣어라 요구 사항도 다양하다.

햄도 잘게 썰러 섞으란다. 뭐라고 하면

"그거 뭐 설거지 얼마나 나온다고 그거 으깨는데 뭔 힘이 든다고!" 하며 오히려 큰소리다.

남의 편의 입장에서는 여행 데려와서 한 끼 잘 사 먹었으면 호사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나는 여행 왔으면 추억을 만들고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거 보고 쉬고 하하 호호 웃고 즐기다가 오는 것이니 서로 입장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래서 연애시절에는 어린 시절이야기나 가족이야기를 많이 물어보고 나누어야 한다.

가족문화가 곧 결혼생활인 것이다.

사 먹는 게 아까우면 간단한 걸 마트에서 사 와서 먹으면 좋으련만

매끼 다른 걸 사 먹는 것도 아니고 여행 중에 호텔방에서 어떻게 해내냐는 것이다.

햇반에 김만 줘도 잘 먹으면 좋으련만....

마트에서 지퍼팩 하나도 필요해서 사야 한다고 하면

너무 크다 작다 많다 입을 대니 그냥 내가 꿀꺽 삼키지 않으면 사사건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말로 해서 알아 들었으면 했는데 10년 넘게 살다 보니 그래봤자 사람은 안 달라지니

피해자는 내가 아닌 함께 여행 온 아이니라.

애가 뭔 죄인가.

그냥 내가 후루룩 넘기면 애도 모르고 지나는 게 낫다.

점점 아는 게 많아지니 부부사이가 안 좋은 것은 아이가 애즈녁적에 알고 있으니

노력이라도 해보는 거다.

이번 에는 호텔 리조트가 아닌 가정집 리조트로 잡은 걸 보니

오늘 저녁은 고기 굽고 밥을 차려내라고 할 것 같은데

무거운 설거지 정말 싫은데 해야지 남은 여행의 평화를 위하여...

세탁기도 있고 식세기도 있지만 찌든 때 가득하고 냉장고도 곰팡이 냄새? 온 집에 환기 안 한지 오래된 곰팡이 냄새 가득하고 샤워커튼에도 곰팡이 2층 변기에도 곰팡이......

좀 갈아 달라고 말하라고 했더니

그냥 쓰란다... 그래그랬지 저 사람은 최고급 호텔에서도 컴플레인을 못하는 사람이었지....

나는 코스모스처럼 하늘하늘했지만 이제는 나라와 국적을 따지지 않고 할 말은 하는 여자가 되었지.

비싼 돈 내고 내가 방을 바꾸라는 것도 아니고 곰팡이만 좀 닦아 달라는 게

국제 진상인 건가...???????


나의 기분을 감지하고 아이가 부엌으로 찾아온다.

"엄마 뽀뽀!!"

쪽~!!!

"엄마 고생 많았어. 준비하느라 입냄새 나는데 양치질도 못 하고 계속 일하느라고 고생했어!"

"엄마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나 아빠랑 놀러 나갈 테니까 엄마는 좀 쉬어."

.....

"고마워. 비꼬는 거 아닌 거 알고 있어. 고마워~."


커피 한 모금에 화를 삭이고 다시 이너피스를 찾아본다.

외국에서 숙박 사업이나 할까...

진짜 이거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감사를 찾으라고 했다.

이 불만을 누를 수 있는 감사.

디카페인 커피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마법이 찾아와서 긴 여행 중에 혼자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너무나 이쁜 하늘과 날씨와 풍경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상비약을 잘 챙겨 와서 많이 아프지 않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 시간과 재정을 준비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쯤 감사하다 보니 지긋지긋한 성정의 남의 편이 열심히 벌어와서 내 새끼가 행복하니 그걸로 되었다 하고 마음이 한결 누그러진다.

커피 한잔 더 마시면서 이 여유를 즐겨야지.

곧 밥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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