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선택이다.

이 또한 선택이다.

by 몽운

결혼생활을 선택하고 죄 없는 아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내가 스스로 일어나야만 했다.

밖을 보면 시간은 아름답고 평화롭게 흘러가고

나는 시커멓게 썩은 속을 웃음으로 가리고서는

오리가 헤엄치듯 쉴 틈 없이 발버둥을 치는 이 시간들.

내가 더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한탄하고 분노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세월이 너무 오래 걸렸다.

지혜로웠으면 좋으련만

그때는 기대가 있었으리라.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과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

상담은 벌써 반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결혼생활을 선택하고

홀로서기 위해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운동도 취미생활도 공부도 아닌 상담이었다.

이미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닐 만큼

심신은 망가져 있었다.

약을 먹고 상담을 하며 쉽지 않은 순간들을 직면하고 고민하고 인정하고 흘려보내는 시간들.

쉽지 않았다.

선생님의 날카로운 질문은 나의 고통이 가볍게 치부되는 듯 뒤틀리는 감정으로 다가오는 순간들과 마주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가 않았다.

문을 열고 억울한 눈물만 흘린 날도 있었다.

그래서 내 고통은 사라지고 그의 잘못은 옅어지는 건가? 다 나의 잘못이라는 건가? 그럼 그 순간순간마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했어야 했냐고 따지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냥 나하나만 사라지면 다 해결인데 이대로 죽었으면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구차하고 비굴해져 버린 삶을 붙잡고 있는 걸까.. 이대로 밟고 다리밖으로 떨어지면 순간 끝나는 삶인데..

온갖 유혹과 번뇌에서 이성을 붙들고 나를 찾는 시간들이 지났고 지나가고 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생각하고 있던 용서의 정의를 다시 썼다.

나에게 용서란 진심을 다 해서 상대가 잘못을 나에게 고백하고 나의 마음을 구하는 것이었다.

상대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내가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상대가 몸과 마음으로 성의를 표현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게 비록 의도치 않았거나 실수였더라도 진심을 다해서 사과를 전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오랜 시간 괴로웠었다.

내가 용서를 구하길 원하는데 용서를 빌지 않아서.

내가 느낄 수 있게 용서를 빌지 않아서.

나의 고통과 그들의 잘못을 그냥 오물을 변기에 내리듯이 가벼이 여기는 그 행태가 용서가 되지 않아서.


그러던 중 누군가의 말이 내 마음에 꽂혔다.

용서는 상대를 이해하고 잘못을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고. 용서는 내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 잘못과 고통을 치워버리는 거라고. 내가 잘못하지도 않은 일로 내가 내 발목에 무게를 채워서 나아가지 못하면 나만 손해니까 달라지지 않을 그것들을 똥치 우듯이 치워버리고 나를 더 빛나게 나아가는 방법을 생각해서 행동하는 거라고.


그냥 '지워버려, 잊어버려, 무시해'

이 말들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은데...

그동안 저렇게 짧은 말은 아무런 위로도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본인이 당하지 않아서 하는 소리지 억한 심정까지 들었었는데.

아... 나는 용서의 칼자루를 그들에게 넘기고 있었구나.. 내가 자를 수 있는 것이었구나..

내가 치우고 무시하고 잘라낼 수 있는 것이었구나.

그들의 자리는 내가 정리할 수 있었구나..

여러 가지 생각이 밀려왔다.


그와 그들을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으로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왜 인정할 수 없었을까..

왜 밀양이라는 영화의 전도연처럼 내가 너를 용서 안 했는데 네가 내 허락 없이 누구에게 용서를 받는다는 건지 타락으로 복수를 선택하는 전도연처럼.

나는 나를 파괴하고 괴롭히며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그 시간이 있었기에 이제야

용서는 나를 위하여 치워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라는 말이 마음에 닿았을지도 모르겠다.

선택이었다.

모든 순간이 그러하였듯이.

용서도 내가 선택하기로 했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하기로 했다.

나는 나를 성장시키기로 선택했다.

감정을 분리하고 일단 나 먼저 홀로 서자.

그래야 아이도 건강할 수 있고

내가 선택한 결혼생활이 건강해질 테니.

나는 그러기로 했다.


치워버리고 나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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