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정체성

나는 나를 무엇으로 정의하였나.

by 몽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십여 년의 기간 동안 나는 나를 무엇으로 정의하고 있었나...

오늘은 한국에서 온 택배에 내가 좋아하는 커피가 담겨 있었다.

행복했다. 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상황이 이렇게 사람을 바꾸는구나..

커피 하나에도 기쁜 마음이 들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내가 좋아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틀었다.

호로록 커피를 들이키며 말씀을 들었다.


말씀을 듣고 나는 하루 종일 무엇인가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안 하던 운동을 하여서 온 근육통 때문인지

그 기분 탓인지 몸이 노곤해서 움직이고 싶은 마음보다 시끄러운 생각을 꼬리를 끊어 내고

멀리서 보려는 노력을 해야 했다.


누군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그것을 나쁜 짓이라고 할 수도 없다.

나의 행동을 감사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인연이 되었다면 서로 더 사랑이 깊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 내가 그린 어머니와 아내의 모습으로 나의 정체성을 정했던 것 같다.

난 일하러 나갈 때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출근길에 음식물 봉투를 넘기지 않아야지 난 그런 아내가 되어야지 다짐했고 행동했다.

엄마가 아빠를 위해 우리를 위해 매일 아침 녹즙을 내려 주신 기억이 나는 행복했다.

나도 그런 엄마가 아내가 되어야지 다짐했고 행동했다.

아빠가 외할머니께 친 자식처럼 잘하고 엄마가 사촌들에게 친자식처럼 아낌없이 베푸는 모습이 좋았다.

나도 그런 가족이 되어야지 다짐했고 행동했다.


그 정체성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있었다.

어머니 기도회도 하고 새벽 기도도 가고 때로 울부짖고 원망하며 하나님 앞에서 생떼를 썼다.

나 죽겠다고..

나를 언제까지 이렇게 고난 속에 두실 거냐고..

내가 뭘 잘못했냐고..

내가 뭘 틀리게 했냐고..

왜 나만 희생하고 나만 책임지냐고...


나는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며느리

그 이전에 나는 나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나는 귀하고 어여쁜 주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었다.

나는 나라는 정체성을 잊은 채

그저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모습으로 살았고 힘들었고 포기하고 아프고 억울해했다.

거기에 내가 없었다...

내가 나를 먼저 사랑했어야 했다.

내가 나를 챙기고 돌보고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한다고 아낌없이 표현했어야 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는 누구보다 박하게

내가 정한 정체성에는 너무나도 후하게 하며 스스로 점점 곪아갔던 것이다.


사랑하라. 인내해라.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켜라.

화 내지 말라. 분내게 하지 말라. 절제하라........

그 많은 말씀 중에 내가 가장 기억해야 할 것은


너는 나의 자녀라
너는 어느 보석보다 귀하고 어여쁜 나의 자녀라
네가 사랑스럽지 않을 때도 사계절을 변함없이 너를 사랑하는
너는 참 어여쁘고 귀한 나의 자녀라


내가 사랑받고 있는 귀한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린 채

그 모든 것들을 감당했으니

나는 그저 분냄과 절규에 뒤섞인 심신을 이끌고

모든 것이 괜찮은 척 그 시간을 버텼던 것 같다.


참 이상하다...

그동안 나는 왜 깨닫지 못했을까...

아니 어쩌면 외면하고 있었던 것일까?

내 선택이 맞다고 맞는데 왜 다 엉망진창인 것이냐고 억지를 부리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 시간을 통해 나의 간장 종지만 한 그릇이 조금 더 넓어져서

들릴 수 있는 받아들일 수 있는 귀가 열린 것일까?


내가 생각했던 희생의 정의도 다시 써 내려갔다.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희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를 아껴야 누군가를 아낄 수 있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나라는 정체성에 나를 빼면 그 무엇도 흠이 없이 어여쁠 수 없는 것이었다.


오늘 내가 묵상한 하루를 꼭 기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약간은 허무하고 약간은 센티하고 약간은 평화롭고 약간은 덤덤하고....

하지만 마음이 단단해졌다.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 상황이 변하진 않았겠지만

내가 덜 아팠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그때는 너무 치열하게 견디느라 그 감정이 뭔지도 몰랐을 내가 안타까웠다.


또 하루가 밝았고

감사하게도 새로운 오늘을 선물 받았으니

나는 이제 나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잊지도 않고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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