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사랑이겠지.
깨진 도자기를 본드로 이어 붙여서 지내온 십여 년의 시간.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미 강산이 변하고도 남은 시간이니
나는 얼마나 변했고 그는 얼마나 변했겠는가...
우리는 점점 자신이 편한 길을 찾아서 부부생활을 근근이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 맞겠다.
사랑에 여러 단계가 있다는데 열정과 연민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서로가
어떻게 해야 이 가정을 지킬 수 있을까.
부모라는 책임감과 의무감 만으로 앞으로 이 가정을 몇 년이나 지킬 수 있을까.
서로가 불쌍해 보이지도 가여워 보이지도 않으니 긍휼한 마음도 없고
애틋해서 가슴이 떨리고 다정해서 위로가 되는 일도 없다.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는 생활이랄까?
서로가 아닌가...
적어도 나는 눈치를 보며 손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내가 벌지 않으니 최소한으로 생계유지만 한다.
덕분에 취미생활도 꿈도 못 꾸지만 다행히 나는 책도 좋아하고 이렇게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하루 종일 침대 위에서 할 일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 돈이 많이 드는 사람은 아니라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다.
아이의 것을 주려서 나를 가꿀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에 벌어오는 뻔한 돈으로
자식에게 들어가는 돈을 줄여서 자신을 가꾸는 엄마가 몇이나 되겠는가?
이렇게 부자들이 즐비한 동네에서도 가꾸는 여자는 남편이 넘치게 벌거나 시댁이나 친정에서 계속 아이들과 며느리를 딸을 위해 금전적 서포트가 있는 집들이다.
남편이 벌어 온 외벌이의 삶은 다 똑같을 것이다. 억울하면 돈을 벌면 되는데 맞벌이 부부들처럼
마음 놓고 맡아 주실 조부모도 없으니 억울하면 이 모든 조건에서 가능하게 돈을 벌면 된다.
헌데 나는 그 능력이 없어서 계속 도전하고 찾는 중이다.
이 남자는 돈이 중요하고 십여 년 넘게 동결된 월급은 자라나는 아이를 케어하기만도 허덕이니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내가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상황에서 돈을 버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다정한 말, 스킨십, 깨끗한 집, 맛있는 요리.... 그걸 다 하며 아이를 케어할 만큼
나는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 아니며
일 년만 하고 끝나는 생활이 아니기에 나의 건강을 보살피며 조율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양육은 시기와 때가 있으니 타협이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곳에 에너지를 줄이고 에너지를 써야 할 곳을 선택했다.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곳에 사랑을 쏟았다.
우리가 서로 더 서로를 아끼는 사람들이라면
내가 선택한 사랑이 달랐을까...?
나도 어떻게 사랑하는 건지 이 세상 모든 방법을 아는 게 아닌데....
나의 사랑법은 틀렸던 것일까..
지나간 일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지금 나의 선택이 최선이듯이.
아마도 내가 예상하듯이 내가 이 모든 상황을 지키면서 수입을 창출하면
그는 사랑이라고 느낄 것이다.
너도 이 가정을 사랑하는구나.
내 돈만 쓰는 벌레가 아니구나.
그럼 좀 부드러워질 것이고 아이에게도 그것이 좋아 보일 것이고.
정답은 아닐 것이지만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가정을 사랑하는 방법은
수입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거 같다.
마음이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그게 맞는 듯하다.
아이를 잘 케어하면서 무엇을 해야 내가 생산적일 수 있을지 공부해 본다.
공부를 한 것들이 성과를 가져다주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