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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운 Oct 19. 2023

39, 오늘 하루를 견디는 방법

존버 인생

벌써 점심시간인데 하는 일 없이 바쁜 일들이 끝났고

드디어 키보드에 손을 올려 본다.

하는 일 없이 바쁘다.

백수가 과로사한다.

이 말을 결혼 후에 가장 공감하게 되었다.

남편이

"네가 하는 일이 뭐가 있는데?? 청소를 해? 밥을 해? 아~~~ 애 라이딩??"

이라는 소리에도 차근차근 말하기엔 우스운 일들.

그런 일 들로 나는 일어나서 등원시키고 물 한잔 마실 시간도 없이 종종거린다.

움직이고 또 움직이는데 억울하게 살은 안 빠진다.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딱~~ 죽겠는데 살이 안 빠진다.

집에서는 엉덩이 붙일 시간도 없고 밖에서는 약속을 잡지 않으면

계속 우선순위에 밀려서 나의 시간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누구 하나 이렇게 살라고 이런 융통성 없는 생활을 계속하라고 하지 않았고

나의 선택이니 억울한 마음이 들어도

커피와 함께 꿀꺽 삼키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를 찾지 못 했다.

안 하면 비난하고 하면 인정해 주지 않는 배우자와

이제는 싸울 에너지도 없으니

눈 뜨고 감을 때까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작년부터는 좋아하는 커피를 못 마시게 되었다.

커피를 7잔씩 마셔도 쿨쿨 자던 사람이었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커피를 디카페인으로 바꾸고 야식과 맥주랑 친구가 되어서

잘 생긴 배우를 보며 힐링타임을 보냈는데

이젠 그 짓도 못 하게 되었다.

해가 바뀌었다고 제 위가 야식을 소화를 못 시키기 시작했다.


스릴러 드라마로 위로 타임을 하고 있는데 그것도 맥주가 빠지니

영 볼 맛이 나지 않는다.

어제는 전국에 올림픽을 못 본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였다.

아이란 도란도란 보고 싶었는데 코 앞에 밀린 숙제를 시키느라

아이에게 숙제를 끝나고 자라고 했다.

헌데 남의 편은 본인은 올림픽을 봐야 한다며

애 밥 먹이랴 숙제 도와주랴 두 시간째 왔다 갔다 애한테 불려 가며

겨우 내 밥을 먹는 걸 보고서도 애를 자게 도와주지도 숙제를 도와주지도 않았다.


엄마 밥 마저 먹고 갈 테니 자고 있으라는 말했다.

본인의 하루를 열심히 살고 본인의 할 일을 해낸 아이는

엄마 아빠와 누워서 수다 떨다 잠드는 달콤한 시간을 보상해 주지 않자

왔다 갔다 잠을 자지 않았다.

어서 자라 빨리 자라 하다가 결국에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미친여자처럼..


항상 후회한다.

애가 무슨 죄가 있나..? 사정 사정도 해보고 설명도 해보고 달래도 보고 했는데

안 잔다고 소리 지른 것이 합리화가 될까?

그냥 제가 제 식사를 포기하고 재우고 나와서 먹으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다 식어빠진 차가운 음식였고 왔다 갔다 하느라 먹어야 하는 의무감만 남았을 뿐 입맛도 떨어졌으니까.

근데 가끔은 나도 나의 속도로 식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마무리하고 싶은 날이 있고

어제가 바로 그날이었던 것이다.


그런 날은

어차피 아이가 어떤 마음인지

어차피 남의 편이 어떻게 할지

어차피 나도 어떻게 될지

너무 예상되고 그런 예상은 벗어나 질 않는 것도 알면서

저는 굳이 식어빠진 밥그릇을 지키려고 하는 내 자신이 한심해서

후회하고 잠이 들다.


그리고 또 다짐한다.

오늘 하루 많이 버티며 가늘고 길게 에너지를 잘 배분하여

내 속의 바닥을 확인하지 않길 바라면서 하루를 또 지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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