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준비

지나쳐버린 기회들

by 몽운

나의 결혼 준비는 언제부터였을까?

커플 묵상을 시작했을 때부터였을까...


그 남자의 부모님 허락을 기다리다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나는

그를 믿을 수 없어서 정리하던 순간!!

갑지가 시작된 진행이

반갑지도 행복하지도 감사하지도 않았다.


그에게 제안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으니 우리 결혼 전에 커플 상담도 받고 예비 결혼학교도 등록하자고.

그는 매우 긍정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연륜이 있으셨던 상담 선생님을 만나서

많은 부분이 회복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착각이었던 듯하다.

사람이 쉽게 변할 리가 있나..

결혼을 준비하기에 앞서 가장 중요했던

부모로부터의 독립과 내 가정을 위한 자신의 태도에 관한 상담과 강의는 부족했다.

그는 예비 결혼 학교를 참여하는 것에 의의를 두는 듯했다.


결혼 준비를 하는 동안 예비 시부모는 조금씩 조금씩 더 적극성을 띄우시기 시작하셨다.

그때는 나도 일을 하고 있을 때인데 집을 날 더러 알아보라고 하셨다.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한심했던 나는

결혼을 하기로 했으니 한 팀이고 한 팀이 성공하려면 서로 미루지 않고 본인 할 수 있는 것을

더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자유로운 내가!!

발품을 파는 것이 이들에게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때가 매물이 너무 없을 때라 전세가 나오면 보자마자 계약을 하던 시절이었다.

전세와 매매가 1억에서 2억 차이라서 그때 산 친구들은 지금 가슴을 쓸어내리고

나처럼 놓친 사람은 이제 영원히 못 사는 지경이 된 가속도의 초입 단계였다.

그 사람은 한 번의 결혼 준비 과정이 있었던 터라 상황을 알만 한데도 일을 핑계로 전부 나에게 미뤄 놓은 상태였고 시부모도 그 전의 준비와는 달리 그 처럼 나에게 다 떠넘기는 상황이었다.

시부모는 알아 놓은 집마다 퇴짜를 놓고 담날 이야기를 해서 빼앗기는 상황을 반복했다.

너무 추운 날씨였고 한 달 내내 반복되는 상황이 혼자 결혼을 준비하는 나로서는 너무 버거웠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두 분께 나오라고 했다.

그날 내내 부동산 실정도 모르고 퇴짜를 놓으시고 차에서 다투시다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말도 안 되는 번화가 상가 빌라 위층에 월세집을 계약하라고 하셨다.

3억짜리 아파트를 알아보라고 하셔서 한 달이 넘도록

대단지가 아니라서 향이 안 좋아서 해가 안 들어서 그의 직장에서 멀어서

온갖 핑계로 퇴짜를 놓으셨던 분들이었다.

2억 7천에 월세 50짜리가 있다는 말에

"너희가 여기서 일 년은 살겠니? 적당히 있다가 아파트로 이사 가면 된다."

라고 하시면 두 번째 집은 보지도 않고 그를 불러서 계약을 했다.

그에게 전세랑 매매가 1~2억 차이니 결혼 비용을 줄이고 내 돈과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자고 이야기를 한 것을 그가 전하기도 전에 시부모는 진행을 했다.

효자였던 그는 나의 의견을 말해보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부모님의 말씀은 절대 거역 못하는 그였다.

그때 지금의 나였다면 목소리를 내었을 텐데 그때의 나는 우악스럽게 밀어붙이는 소몰이에 꼼짝없이 몰려

입도 뻥끗도 못하던 멍청이 시절이었다.

그들은 아직도 나의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 네가 더 주장을 하지 그랬냐라며 내 탓을 하기 바쁜 사람들이니.

그때 말했어도 아마 들은 척도 하지 않았을 것 같긴 하다.


나의 부모님께 병원에 투자해서 돈이 없으니 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시고는 벤츠에서 전액 현금으로 새 차를 뽑으셨다.

구한 월세집은 식 하기 전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결혼식 전날 짐이 들어가고 그 남자의 짐은 신혼여행이 끝난 후에 들어왔다.

덕분에 나는 결혼식 당일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짐 정리와 청소를 하다가 지쳐서 침대도 없어 딱딱하고 서늘한 신혼집 바닥에서 눈을 붙였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당일 바로 이삿짐이 들어와야 해서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살림도 마찬가지였다. 짐을 못 넣게 하셔서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부터 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해 전에 언니의 결혼식을 치루어서 힘들었을 엄마에게 짐을 지우기가 싫어서

상당 부분 혼자서 하다 보니 마사지와 다이어트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일과 결혼준비 그리고 시집살이로 정신이 없었지만

결혼식을 끝나면 있을 신혼여행을 꿈꾸면서 이것은 과정이다 지나간다 생각했다.

이것이 지나면 정말 둘 만의 세계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다.


예물 예단은 간소하게 하자고 하시며

나에게 어디 냉장고 어디 세탁기 어디 김치냉장고 사이즈까지 말씀하셨고

다른 집은 가방값 옷 값 한복 값 다 돈으로 받았다더라~

근데 너는 그냥 아버지 어머니 예비 아주버니 동서 할머니 봉투에 등등 다 돈 봉투로 준비하렴.

그리고 답례비는 안 돌려주련다. 하셨다.


친정엄마는 시어머니가 되게 행세를 부리고 싶으신가 보다

필요하면 몇천만 원인데 내가 줄 테니 그와 다투지 말고 잘 지내라고 했다.

준비하면서 피곤한데 안 할 결혼도 아닌데 그런 일로 얼굴 붉히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다.


결혼식 당일에 동서네의 한복을 보고 너무 놀랐다.

동서네 결혼사진 속의 한복이었다. 새색시한복....

내가 분명 보낸 한복 값과 꾸밈비가 있는데.. 왜 메이컵도 없이 새댁한복 차림으로..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돈이 가긴 갔을까 싶다.

10년이 된 지금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리고 당신 아들은 로렉스를 사주고 너는 오메가에서 시계를 가서 사라 하셨다.

본인들도 시계를 그렇게 했다 하셨다.

본인 아들이 오메가를 사니 나 더러 사 오라는 말은 사라지고 매장에도 데려가시지는 않았다.

본인 아들에게도 아들 카드로 사라는 식이라서

어차피 살면서 내가 갚을 카드값이라 사지 않았다.

그때는 한 팀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제대로 된 시계가 없다.


집에 있던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오셔서 반지 하나 종로에서 맞추고 커플링을 하나 샀다.

가게에서 보통 아드님 직업군에서는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순금, 진주, 에메랄드 세트로 진행하는데

생략하시면 다른 데일리 액세서리로도 많이 한다고 설명을 하셨다.

시어머님은

"다이아랑 커플링이면 된 거지 커플링에도 다이아 필요 없어요.

다른 보석은 안 해요.

결혼하면 애 키우고 하는데 주렁주렁 액세서리도 필요 없습니다."

거절했다. 서비스 진주는 받았다.

10년 뒤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본인의 금 팔지를 하셨다고 했다.

그 금 팔지를 관계가 다 어그러지고 10년의 세월이 지나 생일쯤이었을까 아이 생일쯤이었을까.. 겸사겸사 만난 자리에서 내가 얼마나 사시겠냐 하시며 어울리지도 않아 하고 다닐 수도 없는 그것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소름이 돋았다.


여러모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미 선택한 결혼이고 그 남자가 마음에 들었으니 앞으로 만들어갈 그와 나의 가정에

그런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간소화를 주장하시며 인심 좋은 부모님인 듯 표현했지만

폐백은 안 할 거지만 폐백음식은 해서 집으로 보내라 하셨고

(아마도 목사님께서 언급하셨던 적도 있어서 교인들 눈이 불편하셨을 것이다.)

이바지 음식 또한 하나하나 신경 쓰라고 하셨다.

떡도 동서가 맞춘 것처럼 하나하나 포장된 걸 원하셨다.

전국 각지에서 공부한 폐백 음식과 이바지 음식을 구성에 맞추어 두 군데서 골라서 진행했다.

시어머니가 요구한 사항에 따라.

그렇게 천만 원이 날아갔다.

(이 부분은 10년 후인 지금까지도 남편에게 "그게 천이라고? 웃기고 있네."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잘 처먹었고 맛있는 그것이 그만한 값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이 남자는 착하고 성실하고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니

우리는 기도하는 가정으로 나아갈 것이며

우리의 자녀들에게 행복한 가정과 기도로 사랑하고 섬기며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런 걸들로 싸워 봤자 가족이 될 사람들과

무슨 의미가 있나 했다.

대단한 착각이였다.


내가 저렇게 이상한 부모밑에서 자란 사람인 그와 저런 꿈을 꿀만도 했던 것이

2년 동안 성경공부의 리더를 섬기고

또 리더가 되기 위한 과정을 통해 1년 동안 성경말씀을 공부했고

나와 함께 배우자 기도를 위해 몇 개월을 함께 새벽 기도를 다녔고

만나는 내내 한 주도 빠지지 않고 함께 성경 말씀으로 묵상을 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차에서는 2년 동안 항상 찬송가가 잔잔히 흘렀고

힘든 일이 있어도 크게 흥분하거나 크게 내색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자신을 늘 말씀 속에서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할 만한 것들이

만나는 내내 깔려있었다.


그의 집에 처음 초대받은 날 그가 화장실을 간 사이

소파와 부엌을 바꿔 달라고 했을 때 도망쳤어야 하는데..

도망쳐야 하는 그 많은 순간을 나는 설마설마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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