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결혼식 준비가 진행되었고
나는 호출을 갈 때마다 폭격을 맞았지만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지혜롭지 못한 착한 사람 콤플렉스와 사랑호르몬의 노예인
나는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야! 냉장고는 그걸로 해야지?
세탁기는 그게 낫지 않니?
김치냉장고는 큰 거로 해라.
에어컨도 네가 사 올래?
살림 샀다고 했지? 칼세트도 샀니?
미용실은 작은 애 했던 데가 나는 좋더라.
한복은 어디서 하니?
작은애가 한 데는 연예인 안ㅇㅇ씨 엄마가 소개해줘서 했는데 난 거기 좋던데.
신혼집은 월세집이고 도배도 깨끗하니까 그냥 쓰면 되겠더라.
너희가 일 년이나 살겠니? 그때까지 대충 써라."
등등 수많은 요구들이 쏟아졌다.
나도 지인들이 있었다.
감사했던 분들은 내 상황에 버거워 시절 인연으로 만든 것은 다 나의 불찰이다.
나의 결혼을 누구보다 축하해 주고 도와줬던 언니가 있었다.
청담 유명한 터줏대감 미용실의 대표 원장님에게
나를 비롯하여 혼주까지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예약해 주신 언니.
원장님도 나를 이뻐라 하셔서 직접 전지현 님의 시할머님이시고 지금은 고인되신 이영희 선생님께 대신 예약까지 넣어주셨고 이영희선생님께서도 상황을 들으시고는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옷을 지어주신다고 하셨다. 얼마나 감사한지.
나 같이 평범한 사람에게 이토록 호사를 베풀어주시는 어른들이 계시다니..
너무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대단한 집안도 아닌 내가 헛살지 않은 인생 얻은 사람들 덕분에 일생 단 한 번이라도
우리 엄마에게 좋은 관리와 좋은 옷을 해드린다는 생각에 정말 감사가 절로 나왔다.
고 이영희 선생님의 한복집을 예약방문한 날이었다.
앞에 분의 핏팅이 길어진 관계로 시어머니와 나는 샵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잠시뒤 너무나 포스 있는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눈이 마주쳤다.
"아이고 아기네 아기. 곱다. 이야기는 들었고 옷감부터 골라보자." 하시며 호탕하게 반겨주셨다.
시어머니는 본인이 말한 곳이 아니라서 온갖 짜증 섞인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선생님께서는 보조선생님을 통해 이 옷감 저 옷감을 골라서 피팅해 주셨고
"고와서 이쁘게 나오겠다 옷이."라고 하시며 나를 더 칭찬해 주시는 듯했다.
아마도 나의 상황을 알아서 더 그러 신듯 했다.
이제 어머니 차례였다. 혼주 옷감을 추천하는 족족 거절하셨다.
그러고는 본인 고르시는데 붉은 계열과 핑크계열을 고르셨다.
몇 시간의 실랑이 끝에 이영희 선생님께서는
"아니 시어머니가 시집갈라 하네. 시댁은 푸른 계열을 골라야지! 하고싶은 다 하려고 하네. 결혼식이라서 그렇게는 안되고 정 하고 싶으면 결혼식 외에 입을 옷으로 해야지."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연세와 포스에 밀린 시어머니는 입이 댓 발 나온 상태로
"그러면 이거 이거 하든가 해요!"라고 쏘아붙이고는 비스듬히 앉아서
"애 배자는 안 해요. 폐백도 안 할 거니까 옷 안 빌려요."라고 앙갚음을 하듯 말했다.
그러시면서 아들의 옷은 배자까지 잘도 고르셨다.
시어머니가 옷을 갈아입으시러 들어가자 선생님께서 나를 쳐다보셨다.
"네가 양반이네. 네가 고상해서 다행이다. 친정엄마 데려 오너라 내가 제일 이쁜 걸로 만들어 줄게."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연륜 있는 선생님의 위로가 그날 진상의 끝을 보여준 시어머니 때문에 불편하고 죄송한 마음에
위로와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예약금을 걸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단락되는 줄 알았던 한복은 끝이 아니었다.
다음 날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가 재벌도 아니고 뭐 그리 대단한 집에서 할 필요 있니? 나 거기 마음에 안 든다. 내 맘대로 하지도 못 하고. 내가 저번에 말한 작은 애 결혼 할 때 한 집에 가보게 거기 돈 환불해라."
"........................."
너무 화가 났다. 그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부모님이 말씀이 성전이신 그는 별거 아닌데 환불하면 되지 아무 데서나 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는 나를 지키지 못 했고 나는 나의 사람들을 지키지 못 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쓴 일이었다.
결국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챙기지 못했다.
작은 쿠키와 함께 찾아가서 고개를 숙이고 죄송한 마음을 전하였다.
그들은 괜찮다고 이쁘게 해주려고 했는데 아쉽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좋은 마음 썼다가 되돌아온 마음에 이해는 하지만 서운 했을 것이다.
나도 너무 죄송해서 바쁘고 정신없다는 핑계로 다시 한번을 찾아뵙지 못하고 인연을 잃었다.
시어머니에게 이끌려간 한복집은 청담 뒷골목에 빌라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여기가 아니었는데 왜 이런데로 옮겼나 모르겠네."
시어머니는 본인이 주장한 곳이 면이 서지 않으셨는지 꿍얼거렸다.
거기서도 어머니는 똑같이 붉은색과 핑크색을 외쳤다.
그곳에 선생님도 듣다 듣다 지치셨는지 웃으면서
"시집은 며느리가 가는데 시엄마 치마가 제일 야하네~ 젤 야해~."라고 하셨다.
나는 좋아하지도 않는 스타일의 한복을 짓는데 800만 원이 육박하는 돈을 써야 했다.
시어머니는 본인이 주장한 곳이니 훨씬 비싼 가격에도 그곳을 선택했다.
날 도와준 지인을 통해 계획했다면 미용실과 한복을 다해도 한참을 훌쩍 넘어가는 예산이었다.
우리 엄마도 시어머니 덕분에 야한 와인색의 치마를 입어야 했다.
그것도 성에 안 찼는지 피팅 갈때마다 친정엄마 옷을 체크했고
옷이 자기보다 더 이쁘네마네 훈수를 뒀다.
한번 입는 거 렌털하면 되는 일이었다. 폐백 활복도 입을 것도 아닌데.
그 돈이면 많은 걸 할 수 있었다.
간소하게 하자더니 그렇게 내 것만 간소해진 결혼을 나는 하고 있었다.
시어머니의 진상에 뼈가 녹을 것 같아서
그 진상이 무서워서 갓난아기 비위 맞추듯이
빨리 해치워 버리고 싶은 마음에 현실과 미래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어차피 하는 결혼 작은 것들로 감정싸움하지 말자 했던 것들이 쌓여서
집채만 한 눈덩이가 될지를 모르고 나는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