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봉투
타령 중의 최고는 봉.투.타.령
시어머니와 봉투는 아주 끈끈한 관계이고
나에게는 지긋지긋한 관계이다.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가고 남편의 동생 부부의 예단예물도 알고 있었던 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단 이야기가 나오자 자기 주방 인테리어와 전등을 바꿔 달라는 둥 소파를 바꿔 달라는 둥
예단 이야기는 차차 하자고 하셨다.
예산을 정리해서 결혼 준비를 해야했던 나는 너무 답답했다.
그에게 빨리 어떻게 해 달라시는 건지 물어보라고 해도 답이 없으시고.
성격과 취향이 독특하시고 아무리 좋은 걸 줘도 구시렁거리는 스타일이셔서
직접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고르라고 해도 못 고르시고
이집 저집 다니며 트집을 잡으시고 어쩌고저쩌고 말이 많으셔서
칭찬도 한두 번이고 투어도 한두 번이지
나도 일이 있는 사람이라 두 손 두발 다들고 기다렸다.
가방 보고 외투 원하시는 브랜드 가서 편하게 보시라고 해도
결국은 뭣 씹은 뚱 한 표정을 하시길래
생각해서 말씀해 주시라 했더니.....
"얘! 둘째 보낼 때 다 해 봤으니까 그냥 간소하게 하자."는 어머님의 왈.
(지금 생각하면 그냥 시어머니의 뜻에 시아버지는 방치 정도??당신 맘대로 알아서 하시오였다.)
그때까지 나는 내 것만 간소하게 하자는 말인지 눈치채지 못했지...
결국에는 그와 다툼이 되었고
어디 상가 인지도 모르는 주차장에서 싸우다가 당장 전화해서 물어보라고 했다.
그래야 내가 가구도 사고 살림도 사고 스펙을 정하지 않냐고
시어머니가 말한 게 있는데 정확히 알아야 내가 계획을 하고 준비를 하지 않냐고.
그는 "니가 한번 물어보지..."라고 했다.
이 사람 생각보다 더한 멍청이였다.
"내가 물어봐도 정확하게 말 안 하시고 데려가도 트집만 잡으니까 지금 물어봐."라며
울분을 토하며 울었다.
그제서야 차에서 내려 전화를 건 그의 전화로 둘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속닥속닥 하더니
그가 나에게 전화기를 건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다 전화를 통해서
“다른 집은 가방비 모피비 한복비 예복비 전부 봉투 봉투 한다는데
너는 그냥 각 친지와 할머니, 동서네, 부모님 봉투에
예단비까지 해서 가지고 오고 예단비 신부꾸밈비로 일부 돌려주려 주잖니? 근데 안 돌려주는 걸로 하자.”
(그 다른 집이 어떤 집이신지... 매번 남을 팔아 자신은 한발 물러서는 화법... 이때는 나도 바보같이 정말인 줄 알았다.)
(살면서 저렇게 꼬아서 말하거나 없는 말인지 있는 말인지 궁금하지도 않은 말을 방패 삼아 비겁한 게 몸에 밴 사람을 볼 일도 만날 일도 없었으니..)
.
.
.
"네??????"
"작은 애 때 다 해서 뭐 할 것 없으니까 간소하게 봉투 봉투 하는 게 낫지 않겠니?"
"아... 네............. 알겠습니다."
.
이때는 왜 바보같이 그래 어차피 사줘서 맘에 안 드는 것보다
현금드리면 필요한 거 사서 쓰시는 게 좋지라고 생각했을까?
그게 내 월세집 보증금에 들어갈 줄도 모르고 멍청이같이 순진했었다.
아니 보통,
사람이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그저 어른이면 어른인 줄 지혜로운 줄 알았으니....
이때 일을 생각하면 엄마에게 미안한 일이 하나 두 개가 아니다.
저 때 때려치워야 했었는데.. 그때는 왜 꼭 이 사람이어야 했는지..
이놈의 미친 호르몬.....
엄마 말한 것처럼 선 본 남자랑 하면 더 편할 것이었는데..
그도 나도. 그의 부모도.
내가.. 아니! 우리 부모님의 소중한 현금은 봉투 봉투에 담겨 보내졌다.
일가친척 한복비와 꾸밈비 또한 봉투 봉투.
고스란히 시댁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렇게 봉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결혼 전 지방인 나는 따로 고향에서 하객 피로연을 했다.
물론 친정엄마 돈으로 했다.
그런데 결혼식 음식값을 본인들이 다 하겠다고 선심 쓰듯이 말씀하시는데
그는 뇌 없이 우리 부모님 자애로운 부모님 이러고 앉아 있었다.
그때 칼같이 30인분 계산했어야 하는데 아직도 남편은 결혼식에 내가 돈을 안 쓴 사람 마냥 말한다.
부부의 돈싸움에 아직도 등장하는 이야기들 중 하나인 시시한 사실.
야 이 멍청한 놈아........
폐백도 교회 분들 보는 눈 있다고 밖에서 못하겠으면 안 하는 거지
몰래 하시려고 집에서 하신다고 해서
폐백이랑 이바지 음식값만 천만 원이 넘었다!!!
이 말도 그때 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렇게 시어머니가 사랑하는 봉투봉투를 드렸고.
그는 맞춤 수트외에 맞춤 셔츠 맞춤 구두까지 풀세트와 시계등등 다 요구해서 해 드렸다.
그리고 내가 받은 건??
파혼 때 썼던 다이아반지와 금열쇠.
루이비통 엄마 서류 가방.
루이비통 장지갑.
그의 카드로 산 아웃렛에서 신행 촬영용 여름 원피스 두 장.
아웃렛에서 시슬리 로션 하나.
.............
아~ 그가 강렬하게 어필하는 프로포즈 반지 .
예단 준비중에 따로 호출이 있었다.
조용히 불러서 한다는 소리가
" 얘! 시계는 적어도 롤렉스 사고 너는 오메가 가서 사라. 엄마 때도 그랬다."
소 오름.... 우리 집은 안 그랬는데요. 아버님 너무 하셨다~!라고
말 못 한 그때의 나를 패고 싶다.ㅡ.ㅡ
브랜드를 다른 데를 하라는 건 뭔 심보인지
그리고... 엄마라니..........
지금도 제일 어이없는 본인 편할 때는 엄. 마.
아무도 안 볼 때는 얘! 또는 야!
우리 엄마 나한테 안 이러거든요. 그리고 이름있는데 야라니... 태어나서 야라고 듣을 일이 없었는데...
여하튼!
하도 어이없는 일이 많아서 괜찮아요~했더니
"오빠한테 카드 다라고 해서 적당한거 사라."
아... 내 돈으로 결혼하고 내가 갚으라는 거구나..
딱 이해가 되었다.
그때는 멍청이처럼 그럼 필요없는데 안 사고 돈 모아야지였다.
지금이였으면 인생 마지막 쇼핑인데 제일 좋은 걸로 샀을텐데.
근데 왜 난 그때 멈추지 못했을까..?
더 큰 충격은
결혼식장에서 내가 분명히 한복 값 봉투 줬는데
동서네도 일가친척도 5년 전에 동서네 결혼식에 입은 옷 결혼 때 한복을 입고 있었고
동서는 심지어 새색시 한복을 입고 있었다. 렌탈이라도 했어야하지 않나....
할머니는 아프셔서 오시지도 않았다.
그쯤 되니 내 돈의 행방이 궁금했다.
그놈의 봉투 봉투...
결혼 후에 매달 드리는 용돈도
“이거 얼마 안 되잖아~ 오십만 원 밖에 안 되니까. 오십만원으로 뭘 사니 이거 얼마 안되잖니?”
“참 그리고 루테인 그저 하나 인터넷에 시켜봐라 그거 한 3개월은 먹어야 한다더라~”
"야! 콜라겐 하나 시켜봐라 피쉬콜라겐으로 그거 한 3개월은 먹어야하지 않니??"
늘 이런 식이였다.
봉투와 함께 백만 원 채워 받기.... 매달...
심지어 그때는 메르스로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망하는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고 있었다.
친정엄마는 빨리 돈 모아서 이사하라고 우리집에 화장실 티슈에 치약 삼푸 비누까지 보내고 계셨다.
10년이 된 지금도 그것들이 남아있으니 얼마나 틈틈히 보낸 것인지...
그마음을 헤아리 수 조차 없어서 죄스럽다.
입이 아프네... 봉투 타령...
저한테 돈 맡기셨나요?
그 얼마 안 되는 오십만 원.. 저한테 한 번이라도 주신 적 있을까요?
결혼하고 첫 설이였는지 두번째 설이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시부모로부터 받은 첫 용돈은 오만원이였다.
얼마 되지도 않는데! 꼭 받으셔야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