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던 나의 마지막 시절
시작은 좋았다.
건강도 좋아지니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새로운 일도 즐거웠고
새로운 만남도 즐거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봄과 같은 싱그러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감사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던 때였다.
교회에서 잘 지냈던 언니와 안부를 주고받고
본인의 성경공부모임에 제안을 받았다.
청년부 모임이라는 어색함이 먼저 들긴 했지만
함께 말씀을 나누고 공부하는 것이 목마르긴 했다.
그쯤에 갤러리를 통해 만났던 인연이 있었다.
나보다 한 살이 어리긴 했지만
아픔도 슬픔도 힘겨움도 굉장히 지혜롭게 겪는 모습이 참 인상이 깊었다.
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런 부분이 참 닮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쑥스러운 듯이 말을 꺼냈다.
본인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기도를 정말 열심히 하시는데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그분들의 기도가 자신을 만들고 다듬어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 친구가 참 이뻐서 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도가 쌓였다는 말이 머리에 맴맴 돌았다.
내가 만약 기도하는 가정이었다면 나도 역경을 헤쳐나가는 방법이 달랐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중학교 때부터 여태까지 만났던 많은 교회 친구들을
곱씹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자녀가 생긴다면 나의 기도를 쌓아주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종교적인 이야기가 좀 거북할 수 있겠지만 이 생각은 너무 중요한 인생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가 계기가 되어서 성경모임을 나가게 되었고
거기서 그를 만났다.
우리 모임은 다들 비슷한 결혼 적령기의 사람들이었다.
주말이면 소개팅을 하고 평일에는 일을 하는 여느 삼십 대와 다를 것이 없었다.
예배 후의 성경모임은 그런 일상을 벗어나 온전히 나를 보는 시간이 되었다.
매주 예배 후 모임을 하고 다들 일상을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을 때쯤
성경공부를 도와줄 리더들을 섬기는 일을 제안받았다.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봉사를 섬긴다고 표현한다.)
내가 성경을 더 공부할 수 있는 욕구가 있었던 때라
큰 고민 없이 승낙을 하게 되었다.
그때 성경모임에서 친해졌던 그도 성경모임을 이끄는 리더로 제안을 받아서
성경공부를 위해 매주 토일을 봉사에 쏟게 되었다.
매주 보다 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밥을 먹는 일도
이야기를 하는 일도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