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일까 악연일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살아계신 엄마의 주변도 나의 주변도 좋은 분들이 끊임없이 계셨다.
스물다섯 살까지...
그러다 보니 우울증인 상태에서도
자존감에 영향을 끼치거나
열등감 또는 자존심이 상할 상황이 없었다.
젊어서였는지 바뀐 환경도 벅찼지만 견딜만했다.
(돌아보니 곁에 있는 친구들이 너무 많이 도와주고 있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잘 못 된 것일까..?
나의 격변의 시간과 순간들에서 곁을 지켜주던
나무같이 듬직한 사람에게 이별을 고한 벌이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사장님 이상한 고객들을 만났고
그러다 보니 더 뾰쪽하고 더 예민하며 더 업무적인 인간이 되었던 것 같다.
겨우 다시 내 안에 몽글몽글함이 살아나기 시작했는데...
그 사람이 문제였다.
성경모임에서 만나서 친해졌던 바로 그 사람.
지금의 나의 남편. 남의 편.
우리의 관계도 처음에는 나쁘지 않았다.
친한 언니가 리더로 있는 성경공부모임에 나간것이 화근이었다.
모두 결혼 적령기이다 보니 비슷한 처지였고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었다.
많은 이야기를 통해
내가 기도를 많이 하는 가정에서 자라서 종교적인 갈등이 없을 배우자를 찾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서로 수도 없이 선을 보고 다녔던 것 도 알고 있었다.
헌데 남녀 관계가 되고 결혼이 전제가 되니
부모님의 허락이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선택이 맞길 바라며 기도를 했고
엄마에게 이제 선을 그만 보고 싶다고 의사를 전했다.
엄마의 물음에 이것저것 대답을 했다.
알고 지내던 교회 오빠이고
부모님도 성실히 사신 평범한 집이다.
허세가 없고 성실하고 어른들께 잘하는 것 같다.
그 변고 없이 여태 산 것 같고
엄마가 소개해주는 집안들은
너무 재력 차이가 나서 내가 속상한 일이 있어도 이야기하기가 힘들 것 같다.라고 전했다.
그 말에 엄마의 말이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 사람이 결혼하자고 했냐?
엄마가 소개해준 분들은 어려서부터 우리를 알고
아버지를 알고 너희들의 어린 시절을 아시는 분들이시다.
그리고 이미 너를 마음에 두고 계신 분이다.
그리고 결혼을 한다는 것은 여자의 제2의 인생과 같다.
결혼을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를 봐야 하는데 너 그 부모님 만나 봤냐.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데..
나이 꽉 찬 남녀가 그만큼 지켜봤으면
믿음을 주고 만나자고 해야 결혼이 되지.
너랑 연애만 하고 헤어지면 나이도 있고
넌 지금의 소개받은 분들은 이제 못 만난다.
이게 현실이니 잘 생각해라...
단호하고 강경한 말씀에
나는 매우 당황했다.
평소에 자녀들에게 크게 왈가왈부를 하시지 않는 분이셨다.
나의 결혼을 위해 그 정도로 마음을 쓰고 있는지 몰랐다.
비혼을 외치는 시니컬한 둘째 딸이
이제 사람 좀 만나려고 하니 신이 나서
소개를 시켜주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기도하는 가정에서 자란 기도생활을 하는 남자를
정해놓고 사람을 보지 않는 어리석은 상태였다.
왠지 모든 상황을 성경말씀처럼 지혜롭게 온화하고 평온할 줄 알았다.
지금 돌이켜보니 내가 그토록 불안정한 상태였으니
제대로 된 사람이 보였을 리가 없었다.
내가 나로 온전히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을 아는 사람만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것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아마 알려줘도 무슨 말인지 몰랐을 것 같기도 하다.
뭔가 씐 사람처럼
엄마에게는 6개월 시간을 요구했다.
6개월 후에도 결혼이야기가 없다면 다시 선을 보겠다고..
그렇게 나는,
기도하는 부모님에게서 자란 기도하는 남자라고 착각한
교회 오빠와 만남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