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한켠에 품은 꿈.
요즘 회사에서 일이 많다. 자리를 옮긴 이후, 이전보다 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통계를 내고 있으며, 새로운 프로젝트도 업무에 추가되었다. 이전에 비해 일에 쓰는 시간이 크게 늘었고, 야근 또한 잦아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과가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이전보다 두 배는 걸리는 느낌이다. 어제도 새벽 2시까지 일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팀장을 위한 보고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한낱 직장인일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나의 의문에 시원한 해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물론 나처럼 생각하면서 일을 덜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책임감과 나의 성장이라는 생각이, 언젠가는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이끌고 있다.
그렇다면 책임감과 성장이라는 생각이 언제까지 지금 하는 일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이 원동력이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책임감은 분명 지금은 좋은 동기이지만, 마음 한켠에는 불편함이 남는다. 책임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하고, 그 일이 성과도 없이 그저 ‘책임’을 위한 일이라면, 결국 보상을 바라는 심리가 생기게 된다. 순수한 책임감이라는 개념은 현실 속에서는 다소 낭만적인 표현이다.
그렇다면 성장은 어떨까? 내가 맡은 일이 성장보다는 단순한 반복업무라면, 과연 그 일을 ‘성장을 위한 과정’이라 여겨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을까? 물론 반복되는 업무에서도 배움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그 안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기를 바란다. 하지만 ‘성장을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은, 결국 내가 하는 업무가 점차 고도화되며 성취로 이어질 때 힘을 얻는다. 성취감은 책임감과 성장이라는 두 축의 결과여야 하며, 그 결과가 없다면 오히려 그 두 축은 열정을 식게 만드는 촉매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업무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좋은 직장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성공한 직장인’보다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인생은 한 번뿐이고, 주어진 시간 안에 무엇을 할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직장은 그 중간에 일부일 뿐, 인생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직장은 인생의 일부이고, 다만 그 일부가 인생의 절반을 차지할 뿐이다.
나는 과거, 직장 내 위치와 인정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믿었다. 지금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돌아봤으면 좋겠다.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직장에 바치는 일은 우둔한 선택일 수 있다. 이 말은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업무 시간에는 미친 듯이 일하되, 일 외의 시간까지 직장에 쏟지 말라는 것이다.
나 역시 주어진 시간 내에 일을 끝내기 위해 노력한다. 업무가 많은 날은 화장실 갈 시간까지 줄여가며 일한다. 그래야 퇴근 후 내 시간을 온전히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책임감이나 성장을 위해서는 그렇게까지 할 수 없다. 만약 그것만이 동기였다면 성과가 명확히 드러나는 일에만 집중했을 것이고, 그 결과 사적인 시간은 공적인 시간에 침범당했을 것이다. 원래 성과를 내는 일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성과란, 나를 제외한 나의 윗사람들이 알아보는 성과를 뜻한다.
그렇다면 좋은 직장인이란 무엇일까? 나는 아주 단순하게 생각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내는 것. 그게 가장 우선이다. 주어진 일만 잘해도 스스로가 생각하는 ‘성공한 직장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히 해낸다면, 그 외의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자신의 일을 소홀히 하면서 다른 일에 나서는 것은 스스로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이다.
특히 신입사원일수록 ‘시킨 일을 정확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시킨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직장에서 어떤 일이 주어질지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은, 실제로 업무를 경험하면서 얻게 되는 노하우다. 그런 노하우가 없다면, 언제든 어떤 일이든 대응할 수 있는 기본 준비가 필요하다. 나는 그런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을 ‘좋은 직원’이라고 생각한다.
업무 준비는 관심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고 이 준비라는 것은 생각보다 막막하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고,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무 준비는 의외로 단순하다. 예를 들어, 사무실에서 자주 사용하는 프로그램의 기본 사용법을 익히는 것, 자료를 일관성 있게 정리하는 것, 서류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이상의 관심은 욕심일 수 있다. 내가 조직을 이끌 입장이 아니라면, 기본적인 준비에 충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내 상사는 인사발령을 받은 지 세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사무실 전화 사용법을 몰라 전화를 돌리지 못한다. 자신의 컴퓨터에 어떤 자료가 있는지도 몰라 일이 생길 때마다 나에게 자료를 달라고 요청한다. 속으로는 ‘당신이 나보다 더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잖소’라고 말하고 싶지만, 상사이기에 참고 도와드린다. 아무리 직급이 높더라도 기본적인 업무 준비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하기 싫은 일에는 관심이 적다. 그래서 관심 있는 일보다 하기 싫은 일을 더 등한시하게 된다. 하지만 생업으로 직장을 선택했다면, 그 마음가짐은 바꿔야 한다. 관심 있는 일을 생업으로 삼으면 더할 나위 없지만, 반대로 생업이 된 순간 그 관심이 사라질 수도 있다. 생업은 내가 좋아하지 않아도 성과를 내야 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업 안에서 ‘관심’을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압박을 이겨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일을 잘하기 위한 준비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기회를 잡을 수 없다. 기회는 내가 준비되어 있는지에 관심 없다. 직장에서 주어지는 업무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우기의 소나기와 같다. 그래서 항상 준비해야 한다. 시킨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준비가 필요하다.
복사기를 예로 들어보자. 상사가 문서를 주며 “이거 10부 복사해줘”라고 지시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우선 복사기의 위치를 알아야 하고, 작동법을 익혀야 한다. 복사용지가 충분한지도 확인해야 하며, 없다면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준비’다. 만약 복사기 사용법을 모르고, 용지 위치도 모른다면 복사를 시작조차 못 할 수도 있다. 상황에 따라 복사가 중단될 수도 있다.
복사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복사기 위치와 모델은 사무실마다 다르다. 그런데 내가 일하는 사무실의 복사기 사용법조차 몰라서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협업을 통해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된다. 특히 협업에서는 상대방의 역량이 쉽게 드러난다. 우리는 한 팀으로 일하지만, 결국 각자 다른 개인과 협업을 하는 셈이다.
협업은 양쪽 모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일이 더디게 진행된다. 어떤 과제에 대해 수행을 요청했을 때,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준비하는 시간과 실행하는 시간이 겹쳐져 결과가 늦어진다. 반면, 준비된 상대는 요청만으로 빠르게 결과를 준다. 예를 들어, 나는 전국 10개 지사와 지출 관련 협업을 한다. 준비된 지사는 내가 어떤 자료를 요청하면 즉시 통계자료를 준다. 필요한 자료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어디서 구해야 할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지사는 어떤 자료를 줘야 하는지도 몰라 엉뚱한 결과물을 준다. 나 역시 요청을 할 때 필요한 자료에 대해 명확히 준비하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한다. 이런 상황은 업무의 질을 떨어뜨린다.
“이게 과연 훌륭한 직장인이 되는 과정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래서 유명인의 사례를 하나 들어본다. 유재석 씨는 전 국민이 사랑하는 MC다. 그는 작년에만 대상 10관왕을 차지했다. 지난 10년간 방송 3사의 연예대상 중 최소 하나는 항상 그가 받았다는 뜻이다.
그는 어떻게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그의 직업은 방송인이다. 그는 항상 사람을 웃게 만들고, 방송의 흐름을 읽으며, 게스트의 특징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매일 아침 운동을 하고 신문을 읽는다. 방송 전에는 게스트에 대한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고, 진행할 이야기들을 준비한다. 유재석 씨조차도 자신의 일을 이렇게까지 준비하는데, 복사기 위치나 사용법이 하찮게 느껴질까?
우리는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특히 직장에서 받는 인정은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로 여겨진다. 문제는 우리는 결과는 상상하지만 그 과정은 잊곤 한다. 과정 없이 결과는 없다. 때로는 그 과정을 무시한 채, 엉뚱한 기준으로 일 잘하는 사람을 판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 결국 직장인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술 잘 마시는 게 중요하다고도 말하지만, 나는 공적인 자리가 이어지는 술자리도 업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술 잘 마시는 것은 직장인을 평가하는 기준 중 가장 낮은 항목일 뿐이다.
직장에서 인정받고 싶다면, 성과보다 먼저 ‘주어진 일’을 정확히 수행하는 연습부터 시작해야 한다. 작은 일이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