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토의 야경과 소년의 추억

by 차현

포르토의 노을은 가을 같았다. 한낮의 더위는 온몸을 땀에 젖게 만들었고, 대서양의 태양은 숨 쉴 틈 없이 열기를 쏟아냈다. 그러나 저녁이 다가오자 태양은 서서히 힘을 거두며 도시를 금빛으로 물들였다. 뜨거운 여름이 끝나고 맞이하는 가을 같은 순간이었다.


포르토에서 노을 명소라면 단연 모로 정원이다.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으로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고, 잔디밭과 벤치가 곳곳에 놓여 있어 휴식 공간으로도 제격이다. 인근에는 ‘세라 두 필라르 수도원’이 있어, 모로 정원을 찾은 이들은 도보로 함께 둘러보곤 한다. 실제로 많은 포르토 시민들이 저녁이면 이곳에 올라 노을을 바라보고, 여행객들에게도 필수 코스로 꼽힌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노을이 저물고 야경이 도시에 내려앉은 뒤였다. 도우루강 위로 붉은빛이 사라지고, 공원의 가로등과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음악을 틀어놓고 삼삼오오 모여 있는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더해져, 모로 정원은 그 자체로 작은 축제가 되어 있었다.


정원으로 오르는 길은 쉽지 않았다. 히베이라 광장에서 출발한 나는 돌로 포장된 언덕길을 오르며, 차가 오면 길가에 서서 차례를 양보해야 했다. 그 풍경이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초등학교가 언덕 위에 있어 매일 비슷한 길을 오르내리며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 차가 오면 일렬로 서곤 했던 기억. 안전난간도, 교통지도를 하는 어른들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사고는 없었다. 지금 학생들이 들으면 믿기 힘들 법한 이야기다.


전망대에 오르자 시야는 확 트였다. S자로 흐르는 도우루강, 그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들, 그리고 도시를 감싸는 불빛. 멀리서 아라이브 다리의 아치가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1963년 완공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아치 경간을 자랑했던 콘크리트 다리, 지금도 포르토의 상징 같은 존재다. 강 좌우로는 포르토 와인 양조장과 히베이라 광장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자리하여, 서울 한강변 다리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서울의 다리가 세련됨을 강조한다면, 도우루강은 낮은 건물과 오래된 풍경이 주는 여백의 아름다움으로 시선을 붙잡는다.


야경을 바라보며 나는 고향 부산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살던 산자락 마을, 훗날 ‘이중섭 거리’라 불리게 된 곳이었다. 친구 집에서 놀다 돌아오는 길,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바라보던 마을의 야경은 어린 나에게도 늘 특별했다. 그 소년은 불빛을 보며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지만,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된 지금의 나는 같은 풍경 앞에서도 무심해지곤 한다. 그러나 포르토의 야경은 달랐다. 그 순간만큼은 나를 다시 어린 소년으로 돌려놓았다. 잊힌 줄 알았던 감정이 불빛 사이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검푸른 산자락 위로 흩뿌려진 주황빛 가로등 불빛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다. 높고 반듯한 건물들 사이에서 느낄 수 없는 따스함, 오래된 건물이 주는 편안함이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했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이런 풍경에 익숙해져서일 것이다. 세련된 스카이라인이 주는 낯섦보다, 소박한 불빛이 전해주는 정겨움이 내 마음에 더 크게 와닿았다.


아마 포르토 시민들 중에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가 있지 않을까? 어떤 이는 현대적인 스카이라인을 사랑하겠지만, 또 누군가는 오래된 불빛 속에서 위로를 찾을 것이다. 나는 후자였다. 그래서 포르토에서 마주한 이 풍경이 더욱 특별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소년이었다. 감동에 벅차 눈을 크게 뜨고, 가슴속 깊이 풍경을 새기던 그 소년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래서 포르토의 야경은 더 오래, 깊게 내 안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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