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토는 아름다운 도시다. 과거부터 사용한 건물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고,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오래된 건물이 많은 축에 속한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세계 1, 2차 대전을 겪으며 피해를 입다 보니 포르토처럼 오래된 건물이 많은 도시가 많지 않다.
포르토의 건물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지저분하고 낡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건물 외관을 관리하고, 내부 리모델링을 통해 불편함을 해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오래된 건물이 미관상 좋지 않다고, 생활이 불편하다고 해서 새로운 건물의 필요하다고 해서 건물을 헐고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일도 적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오는 경우는 이용자의 불편이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포르토 시민들은 그 불편을 해소하기보단 받아들이고 역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공생은 1996년 포르토 일부 지역과 오래된 건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포르토 시민들은 2,000년 이상된 도시적 연속성과 로마시대 이후 다양한 시대의 건축적, 도시적 중거 보존을 위해 개발보다는 역사와 공존을 우선으로 했다.
나는 포르토에 도착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지하철을 나서자 고딕양식 건물은 오렌지빛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황홀하게 빛났다. 삼삼오오 모인 젊은 청년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은 길 위를 채웠다. 이런 풍경이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올까? 우리나라와는 다른 느낌의 이 도시는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포르토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그 공존은 불편을 주지만 포르토의 시민들은 기꺼이 그 불편함을 감수한다. 도시개발의 방향만 봐도 알 수 있다. 난개발을 지양하고, 기존 건물을 보전, 재생하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이 흐름은 URBiNAT 프로젝트나 ‘Ilhas do Porto’ 주거지 재생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간을 흘러가지만 공간은 그 흔적을 고스란히 담는다.
이런 연유로 포르토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건물 외벽의 아줄레주 타일과 돌로 포장된 길은 여전히 손쉽게 마주할 수 있다. 상벤토 역에서 돌로 포장된 인도를 걸어 올라가다 보면 달콤한 나타 향이 온 코끝을 통해 온 허기를 불러온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면 클레리구스탑이 서 있다. 맞은편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꼽히는 렐루 서점이 있다. 1906년 개점한 이후 현재까지 원형 그대로 운영 중인 이 서점은 해리포터의 마법학교 복도를 연상시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개인적으로 빨간색 중앙계단보다, 대형유리로 된 천장과 세심한 나무 장식의 벽이 더 인상 깊었다.
다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아줄레주로 장식된 카르무 성당에 다다른다. 이 길을 걷는 동안 과거 포르토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돌로 포장된 길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용된 길임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오래된 도시나 유적지를 방문하면 누구나 ‘그 시절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이런 상상은 여행을 더 활기차게 해 주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특히 과거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경우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사소한 생각은 나를 자연스럽게 과거 포르토로 옮겨 주었다. 방금까지 도로를 가득 메우던 시끄러운 자동차의 경적은 어느새 따뜻한 말발굽 소리와 일정한 박자를 내는 마차 바퀴소리로 도로 위에 잔잔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또 길을 매운 매연과 담배연기는 향긋한 나타 향으로 바뀌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으며, 자유분방한 옷차림의 사람들 대신 상벤토 역 아줄레주에서 본 옷차림의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카르무 성당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가족들과 리베르다도 광장을 방문한 사람들,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도시에 활기를 가져다준다.
광장을 지나 비토리아 전망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전망대는 좁은 골목이다. 골목길에는 2층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옆집의 저녁 메뉴를 알 정도로 붙어 있다. 골목길을 지나는 동안 2층에서 느긋하게 누워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는 검은 개와 눈이 마주친다. 가볍게 손을 흔들지만 검은 개는 부끄러움이 많은 건지 이 골목을 가득 채운 고요함이 깨져 기분이 상한 건지 터벅터벅 걸어 집안으로 들어간다.
골목의 바람은 시원하다. 도우로 강바람은 좁은 골목을 빠른 속도로 통과하며 얼굴에 맺힌 땀방울과 열기로 데워진 몸을 빠르게 식혀 준다. 골목을 벗아날 때 다시 2층 베란다에서 느긋하게 도루로 강을 바라보며 담배를 태우는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친다. 가볍게 목례를 하지만 할아버지의 시선은 여전히 도우로 강을 향하며 무심히 담배를 한 모금 길게 태우신다.
머쓱함도 잠시, 골목을 벗어나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왜 할아버지의 시선이 도우로 강을 향했는지 짐작하게 해 준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중 처음 시선을 빼앗아간 주인공은 동 루이스 3세 다리다. 도우로 강을 가로질러 포르토 시내와 빌라 노바 드 가이아를 잇는 이 철제다리는 포르토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또 그 강 위로 청새치 주둥이처럼 좁은 선미를 가진 배가 큰 원형오크통을 싣고 상류에서 하류로 흘러 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다음 저 멀리 두 개의 기둥이 문을 끼고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은 포르토 대성당이다. 포르토 시민들의 굳은 신앙심과 비례하듯, 대 성당이라는 이름이 가르쳐주듯 그 위엄을 멀리서도 자랑하고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플로레스 거리를 지나 포르토의 자랑인 트램을 구경하기 위해 이동했다. 플로레스 거리는 여전히 포르토의 번영기를 간직하고 있다. 16세기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들, 그리고 그 거리를 가득 채운 상점들과 사람들과 시대를 지나며 쌓인 흔적들. 거리를 지나는 동안 시선을 사로잡지 않는 곳이 없었다. 특히 다양한 분야의 버스킹 공연은 순식간에 이 거리를 노상 공연장으로 만들어버렸는데 아마 과거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며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플로레스 거리는 도우로 강과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변한다. 1층의 상점은 잡화에서 레스토랑으로, 거리는 요리의 연기와 음식 향으로 서서히 물들어 간다.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의 테이블이 거리 한편을 차지하고 테이블마다 식사나 커피를 즐기는 사람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활기찬 플로레스 거리를 벗어나 상 프란시스쿠 대성당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여정과도 같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한 손을 높이 들어 대서양을 가리키는 위풍당당한 동상을 마주하게 된다. 이 동상의 주인공은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의 선구자, ‘항해왕 엔히크 왕자’다. 그의 강렬한 시선은 끝없는 바다를 향해 있으며, 이는 미지의 세계로 향한 많은 포르투갈인의 꿈과 도전 정신을 상징한다. 그는 직접 항해하지 않았지만, 탐험을 기획하고 후원하며 아프리카 서해안과 마데이라, 아조레스 제도의 개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동상을 지나 도우로 강 하구로 향하면, 인판테 역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서는 포르토의 오랜 역사와 함께한 트램을 탈 수 있다. 트램은 1895년 처음 도입된 이래로 여전히 포르토의 거리 위를 달리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전기 트램의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도우로 강과 대서양의 경치를 감상하는 순간, 여행자는 포르토의 숨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트램을 기다리는 순간조차도 이곳의 매력은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의 질서를 유지하는 정비공의 부드러운 손짓, 그리고 트램을 타기 위해 모여든 다양한 표정의 사람들. 이 모든 풍경은 포르토의 따뜻한 일상과 역사의 깊이를 담고 있다. 트램의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도우로 강의 반짝이는 물결과, 바다를 향해 뻗어 있는 길들은 마치 과거의 항해자들이 느꼈을 설렘과 기대를 전해주는 듯하다.
포르토는 시간을 머금은 공간이다. 돌포장, 건물 외벽의 아줄레주 타일, 덜컹거리며 운행하는 트램, 밤거리를 밝혀 주는 주광등의 불빛. 모든 것들이 감성을 자극한다. 하지만 포르토 시민들의 불편은 이로 말로 표현하기 힘들 수 있다. 우리는 불편을 해소며 발전하지만 포르토 시민들은 그런 불편을 감수하고 여전히 시간이 공간에 스며들 수 있게 기다리고 있다. 과거의 공존을 위해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했고 그 대가로 현재를 얻었다. 그 덕분에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은 영속성을 담는 예술이라는 표현을 즐겨 썼는데 이 표현에 딱 맞아떨어지는 도시는 포르토가 아닐까, 또 포르토를 보며 우리나라 역시 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고민을 한 번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