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빠꾸가 없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by 차현

나이: 사람이나 생물이 나서 살아온 햇수.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는다. 시간은 뒤로 가는 법이 없고, 오로지 앞을 향해 나아간다. 반복되는 날씨의 변화를 ‘계절’이라 하고, 그 계절의 반복을 ‘년’이라는 단위로 센다. 그 ‘년’이라는 단위는 다시 ‘월’, ‘일’, ‘시’, ‘분’, ‘초’로 세분화된다. 그리고 이 단위를 살아 있는 생물에게 적용하면 ‘나이’가 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있지만, 사회는 나이를 단순한 숫자로 여기지 않는다. 개인이 살아온 시간을 바탕으로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어른’의 역할, ‘선배’의 역할, ‘연장자’의 역할 등. 더 많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자신보다 어린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시간은 우리가 ‘어른’이 될 수 있는 별도의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기대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어른아이’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압박이 된다. 이런 압박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거나, 개인의 사고와 행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압박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내가 30살이 되던 해 많은 고민에 빠졌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다. 20대는 영원할 줄 알았던 어른아이였던 나 자신에게 30이라는 숫자는 기존의 생각과 가치관을 무너뜨려 놓았다.

‘내가 뭘 하며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과 비교해서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 없는 현실은 나를 깊은 우울감으로 밀어 넣었다. 20대의 마지막 자신에게 던진 질문과 주변과 비교하며 찾은 해답은 30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대적 박탈감으로 끝을 맺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의 경우, 시간의 유한함과 그 속에서 어떤 ‘방점’을 찍고 싶다는 조바심이 두려움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 두려움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으로 표현되었다.

“시간은 가는데, 저 사람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생각은 불안감을 더욱 키웠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런 생각은 내가 유한한 시간을 어떻게 잘 쓸 수 있을지 고민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절망에 빠지고 서른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스스로 20대의 마지막을 끝내지 못한 억울함과 같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20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설정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서른을 조금 더 쉽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대신 앞으로 ‘어떻게 시간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겼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그 계획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고민의 주제는 그렇게 바뀌었다.
(마흔이 된 지금도 그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만 이제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경험할 수 있을 때 많이 경험하라고. 경험은 ‘내가 어떻게 남은 시간을 채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큰 도움이 된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은 ‘시간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생긴다. 이러한 불안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고 있다.


‘스탠퍼드 대학 장수센터’의 로라 카스텐슨 교수는 “시간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것은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심리적 전환점이 된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유한한 시간 앞에서 ‘많이 이루는 삶’보다 ‘의미 있게 사는 삶’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 준비 과정을 통해 서서히 유한한 시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그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동시에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유한한 시간을 받아들이며 불안을 느끼게 되었을까?


하이데거는 “인간은 유일하게 자신의 죽음을 인식하는 존재이며, 그 인식이 삶의 태도를 규정한다”라고 했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이자 교수인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고통과 유한성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20대의 나는 아무런 계획 없이 인생의 시간이 무한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인식한 뒤로,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나중에 하면 된다’고 생각해 많은 기회를 흘려보냈다. 더 우스운 것은, 그 기회가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낼까?”라는 질문이 모든 시작이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수 있고, 이런 순간들이 모여 나의 삶을 채운다고 생각하니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도전하려 한다.
이런 생각은 수동적인 사고를 능동적으로 바꿔주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인생에 풍부한 소재를 제공했다.


우리는 시간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리고 나이를 통해, 남은 시간보다 살아온 시간을 세며 살아간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길을 조심스레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을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시간은 직진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우리 역시 순응하며 그 시간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었다고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기보다, ‘나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를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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