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늪에서 땀방울로 건져 올린 것들

나의 추억, 구원자, 친구였던 나의 운동 연대기

by 김종명

'A sound mind in a sound body '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의미의 이 말은 오늘날 운동의 중요성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격언이다.


고대 로마의 풍자 시인 유베날리스(Juvenallis)가 쓴 시구 'Mens sana in corpore sana'에서 유래하였다고 알려진 이 문장은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에 의해 널리 알려졌으며, 이후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텡에 의해 널리 사용되면서 스포츠 정신을 상징하는 문구가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이 문장은 단순한 격언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어릴 적 나의 삶을 풍요롭게 채워준 친구였고,


삶의 궤적마다 찾아왔던 우울의 늪에서 나를 건져 올린 구원자였으며,


지금도 내 곁을 맴도는 나의 오랜 친구 '우울이'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낼 수 있게 해주는 또 다른 친구가 바로 운동이기 때문이다.


하여 오늘은 '어느 운동 유목민의 변명: 내 삶의 늪에서 땀방울로 건져 올린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나의 운동 연대기를 써보려 한다.




1. 소년의 운동, 그리고 결핍이 만든 풍요


1972년 전라남도 강진, 다산 정약용이 유배 생활을 했던 그곳에서 나는 태어났다.


2차 베이비붐 세대의 끄트머리로 태어난 나에게는 운동과 독서, 두 가지 외에는 할 게 없었다.


읍내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라 마을엔 오락실 하나 없었고, 대신 같이 뛰어놀 수 있는 친구들은 많았기 때문이다.


정적인 독서와 동적인 운동.


일견 아이러니해 보이지만 나에겐 그 두 가지가 세상의 전부였다.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운동을 조금 더 좋아하긴 했다.


놀 거리를 찾다가 없으면, 혹은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그제야 책을 꺼내 읽었기 때문이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60117%EF%BC%BF140956%EF%BC%BFNAVER.jpg?type=w966 전라남도 강진군 덕남리 기룡마을


국민학교 시절에는, 야구를 좋아했고 많이 했다.


지역 연고지 팀이었던, 해태 타이거즈가 우승을 밥 먹듯이 했던 강팀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키도 작고 삐쩍 마른 몸 때문에 그리 잘하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손끝 감각이 좋아 투수를 주로 맡았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60117%EF%BC%BF141308%EF%BC%BFNAVER.jpg?type=w966 출처 : 네이버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축구와 배구를 즐겨했다.


체격조건도 좋지 못하고 스피드도 느려, 축구는 2부 리그에서만 뛸 수 있었다.


50명이 넘는 학생수 때문에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은 대운동장에서, 나처럼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소운동장에서 해야만 했었다. ㅠㅠ


반면, 배구는 나름 잘했다.


키 때문에 주로 센터(9인제 배구에서 주로 리시브를 담당하는 포지션)를 맡았다.




이런 경험들은 교대 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교대는 학교 특성상 여러 가지 운동을 배워야 한다.


배구, 축구, 농구와 같은 기본적인 구기 운동은 물론 높이뛰기, 철봉, 허들 넘기 같은 종목도 배워야 해서, 거의 매 학기 체육 관련 과목이 필수 이수 과목으로 지정되어 있다.


여전히 작은 키에, 46kg이 채 되지 않는 몸무게 때문에 체격조건은 불리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즐겼던 운동 덕분인지 모든 운동을 평균 이상은 해 내었다.


아니, 조금 자랑을 하자면, 대학 4학년 전 과정에서 체육 관련 과목은 모두 A+를 받았다.


165cm의 키로 145cm의 높이뛰기 바를 넘어, 우리 과에서 가장 높은 기록을 작성했고, 동아리(네이게이토) 방에서 처음 배운 탁구는, 다음 해 과 대항 체육대회에 우리 과 대표로 출전할 정도로 실력이 금방 늘었다.


또한 방학이 시작되면, 전남대 형들과 오전에는 성경 공부, 오후에는 축구 경기를 하면서 체력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900%EF%BC%BF1769950114900.jpg?type=w966 파란색 체육복에 뒷짐을 지고 있는 사람이 나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첫 발령지였던 중흥초에 갔을 때, 자기소개란에 있는 특기 항목에 자신 있게 '배구'라고 적었다.


1995년 3월 25일 발령 이후, 거의 매일 배구를 한 것 같다.


5월 15일,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스승의 날 기념행사로, 학교대항 배구대회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옆 학교와 예선전을 치러야 했고, 경기가 없는 날에는 자체 연습 경기를 했다.


역시나 키 때문에 센터 자리를 맡았다.


아쉽게 우승은 못했지만, 4강까지는 올라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대 후, 정확히 말하면 영산강환경관리청에서의 공익근무요원 근무가 끝나고,


중흥초로 복직하면서 여전히 남아 계시는 선생님들과 배구를 많이 했다.


체육관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뙤약볕 아래에서도 매주 한 번씩은 배구를 했다.


또한, 학교운동부였던 사이클부 감독으로, 의정부에 있던 벨로드롬 경기장에서 사이클을 타보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요즘 안전상의 이유로 문제가 되고 있는 픽시 자전거(브레이크가 없는 자전거)를 그때 나는 이미 타 보았던 것이다.


물론 연습장에서만.




2002년 이천 지역으로 옮기면서, 사물놀이에 빠져 한동안은 운동을 거의 할 수 없었다.


연구부장 업무에, 매일 아침 사물놀이 지도, 방학중엔 계절제 대학원 수강과 아이들 사물놀이 캠프까지.


거기에 미운 다섯 살, 딸아이를 키우는 아빠 역할까지, 도무지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었다.


2006년, 승진을 위해 학교를 김포로 옮기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2년 동안 주말부부 생활을 하게 되었다.


사우동에서 혼자 원룸을 얻어 생활했다.


퇴근 후, 남는 시간을 이용해 고촌에서 테니스 레슨을 받았다.


대학 때 선택과목으로 잠깐 배웠던 테니스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 정도 테니스를 배우면서, 복식 파트너에게 민폐는 끼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




2년 후, 새로 부임하신 교장선생님은 탁구와 배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분이셨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엔 배구를, 비가 오는 날이면 탁구를 쳤다.


탁구는 교내에 적수가 없었다.


근데, 다음 해에 윤00 선생님이 새로이 부임해 오셨다.


이런! 나보다 한 수 위였다.


곧바로 사우동에 있는 탁구 클럽에 등록해 레슨을 받았다.


라켓도 펜홀더에서 셰이크핸드로 바꿨다.


그 후에는 승패를 주고받는 라이벌로, 1년 정도를 보냈다.




2009년, 김포 외곽에 있는 석정 초등학교로 전근을 갔다.


미니 강당 위에 설치되어 있는, 그러나 방치되어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미니 골프 연습장이 눈에 띄었다.


나와 같이 석정초로 부임하신 이00 교장선생님께서 '돌아오는 농촌학교' 공모사업을 신청하셨다.


나는 근처에 있는 김포 CC와 연계된 전교생 골프 지도를 특색사업으로 포함시키자고 주장했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공모학교로 선정되었고, 미니 강당 위에 있던 골프연습장을 정비한 후 코치를 모셔와 고학년 대상 방과 후 골프 수업이 진행되었다.


참고로 그때 골프 수업을 받았던 박00학생은 지금 KPGA 2부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코치님께서 학생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들 대상으로 저렴하게 레슨을 해 주시겠다고 제안을 해 주셨다.


나와 교장선생님을 포함한 여섯 분이 신청해, 1년 반 정도 레슨을 받았다.


그때 처음으로 파주 CC에서 머리도 올리고 틈나는 대로 라운딩을 다녔다.


900%EF%BC%BFScreenshot%EF%BC%BF20260117%EF%BC%BF142340%EF%BC%BFNAVER.jpg?type=w966 파주 CC 출처 : 네이버


그러다 2011년 애 엄마와 이혼을 했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딸아이 뒷바라지와 경제적 부담으로 인해 한동안은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혼, 딸아이의 반복되는 정신과 입퇴원은 나에게 닥친 첫 시련이었다.


대단한 도전을 해 본 적은 없지만 대학 입시, 임용 고시, 대학원 입학, 하다 못해 운전면허 시험까지, 모든 시험을 한 번에 패스하며 탄탄대로를 걷던 내게, 삶의 첫 실패는 생각 이상의 내상을 입혔다.




그때 내가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준 건 운동이었다.


이혼 후 만난, 학부모이자 동료 교사였고 이후 연인으로 발전했던 이의 자녀들이 배드민턴 레슨을 받기 시작하면서, 나와 딸아이도 같이 집 근처에 있던 호수초 배드민턴 클럽에 등록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배드민턴은 약수터에서 할아버지들이나 치는 운동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A조 회원님들의 멋진 게임을 보면서, 나도 제대로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레슨을 신청했다.


그렇게 2년간의 배드민턴 활동을 통해 나와 딸아이의 몸과 마음도 조금씩 회복되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행 끝, 행복 시작'은 드라마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 끝에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고, 이후 통진초로 학교를 옮겼다.




2. 삶의 고비마다 나를 일으킨 '운동 유목민'의 여정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기력하게 보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딸아이는 다시 정신과 입퇴원을 반복하였고,


나 역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채 하루하루 의미 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마음이 무너지자 몸도 함께 무너져갔다.


이석증과 구안와사 치료를 받아야 했고,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이 심해져 승진의 길을 포기하면서 결국 일산 백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무능력한 아버지였고,


두 여자에게 연이어 버림받은(?) 남자였으며,


교사로서도 실패한, 총체적인 루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나를 다시 일으켜 준 건 운동이었다.


교내 남교사들의 야구 모임인 '통진 블레이더스'가 만들어진 것이다.


투수와 외야수로 활약했다.


어렸을 적 야구를 즐겨했던 게 도움이 되었던지, 사회인 야구 첫 시즌에는, 타격 전 부분에 걸쳐 상위권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무너진 자존감이 조금씩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2018년, 두 번째 연인과의 다툼이 빌미가 돼 교육청 징계를 받으며 부천에 있는 솔안초로 옮기게 되었다.


원치 않는 발령과, 그즈음 발생한 반려견 '땡이'의 죽음 때문에, 다시 우울의 늪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솔안초에는 '솔배모'라는 교사 배드민턴 모임이 있었다.


교감선생님께서 골프를 즐기시는 분이라, 함께 골프 연수도 받고 라운딩도 가끔 나갔다.


관리자분들의 배려 덕분에 첫해를 제외하고, 나머지 4년을 체육부장 및 체육전담을 맡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뛰고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솔안초에서 5년 동안 골프와 배드민턴을 치면서,


아이들과 같이 운동하면서,


다시 내 몸과 마음은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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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안초에서의 5년 근무가 끝나고서, 학교를 옮겨야 했다.


제일 먼저 고려했던 사항은 '운동할 수 있는, 그리고 운동을 가르칠 수 있는 학교인가'였다.


'솔배모' 때문에 김포로 돌아가는 것은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체육전담 자리를 보장해 준다는 제안에 따라, 중동초로 학교를 옮겼다.


결과적으로 체육전담 자리는 맡을 수 없었지만, 체육부장을 맡으면서 아이들과 배드민턴, 티볼, 풋살 등의 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운동 장소를 부천초로 옮기면서, '슬배모'로 이름이 바뀐, 교사 배드민턴 모임에도 꾸준히 나가고 있다.


900%EF%BC%BFTimePhoto%EF%BC%BF20231121%EF%BC%BF152259.jpg?type=w966 중동초 티볼부 아이들
900%EF%BC%BF20250827%EF%BC%BF073837.jpg?type=w966 중동초 배드민턴부 선수반
KakaoTalk_20250612_085208580_26.jpg?type=w966 중동초 풋살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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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최근에는 지인의 소개로 옆 학교에 탁구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월 2회 정도 탁구 모임에도 나가고 있다.




눈치채셨겠지만, 나는 한 가지 운동을 진득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운동 유목민처럼 이 운동, 저 운동 기웃거리면서 흉내만 내는 수준이다.


그래서 골프는 18년 구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보기 플레이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언더파는 언감생심, 싱글 타수를 친 것도 딱 한 번뿐이다.


배드민턴은 6년 전, 초심부 4위 입상(?) 이후 대회 출전을 하지 않아 여전히 초심부이다.


탁구, 야구, 테니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굳이 변명을 해 보자면, 배우고 있던 운동에 싫증이 났다기보다는, 배우고 싶은 운동이 새로이, 자꾸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심각한 '장비병'도 문제다.


장비가 완전히 갖춰져야만 운동을 시작한다.


신상이 나오면 무조건 구입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것 때문에 전처에게 엄청 구박받았었다.


최근 스노클링을 몇 번 경험하면서 스킨 스쿠버에 관심이 생겼다.


사이클에도 조금 관심이 있다.


근데 장비 구입 예산을 뽑아봤더니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요즘은 안 사던 로또를 매주 만 원씩 산다.


당첨만 되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이 장비병을 빨리 고쳐야 할 텐데.




3. 여전히 나는 움직인다.


나이가 들면서 운동 중 다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재작년에는 팔꿈치 부상(배드민턴 엘보), 작년에는 종아리 근육 파열 때문에 몇 달간 운동을 쉬어야만 했다.


그 때문인지 몸놀림도 예전만 못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운동은 내 어린 시절을 추억으로 가득 채워주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내 살을 풍성하게 채워주고 있는 여러 취미 생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질곡진 나의 삶에서 내가 힘들어 쓰러지려 할 때, 나를 다시 일으켜 준 건 운동이었다.


'A sound mind in a sound body '


이 말은 박제된 격언이 아니라, 나의 치열했던 삶이 증명해 낸 진실이다.


삶의 굴곡진 고비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건 거창한 위로보다 정직하게 흐르는 땀방울이었으니까.


그래서 오늘도 난 스쿼트와 팔 굽혀 펴기, AB 슬라이드로 내 몸과 마음의 근육을 1mm 더 키울 것이다.


로또 당첨이라는 요행보다는 오늘 흘린 100cc의 땀방울이 내 삶을 더 정직하게 구원할 것임을 알기에.


자, 이제 다시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


JUST DO IT


900%EF%BC%BFse%EF%BC%BFone%EF%BC%BF20260117%EF%BC%BF142738%EF%BC%BFa.jpg?type=w966 AB 슬라이드, 복근 운동에 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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